[책 감상/책 추천] 무라타 사야카, <소멸세계>
성(性)과 재생산, 연애가 완전히 분리된 세계를 상상해 그린 일종의 소프트 SF 소설. 저자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은 나도 리뷰를 쓴 적 있다. 이 책은 이미 국내에 2017년 9월에 출간됐는데 나는 최근에야 가디언지 기사(이 소설이 2025년 4월에야 <Vanishing World>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 기념으로 저자와 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고,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찾아서 읽었다. 2015년(원서가 출간된 해)에 이미 이런 것을 상상하다니… ‘초식남’이 2006년, ‘건어물녀’가 2007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임을(참고 기사) 상기해 보면, 그때 이미 앞으로 여자들이 보기에 괜찮은 남자, 평생을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제정신이 박힌 남자가 흔치 않아질 것을 예측하고 남성도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게 아닐까, 궁예질을 해 볼 수 있다. 내가 위에 언급한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 그냥 저자 본인이 ‘정상적인 여성’이라는 느낌을 (그게 무엇이든 간에) 느끼지 못하며 자란 개인적 경험에다가 일본 사회의 여성 혐오까지 결합되어 이런 소설이 나온 듯.
<소멸세계> 속 세계관은 이렇다. 인공수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사람들은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대부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책 등 가상 캐릭터를 통해 성욕을 해소한다. 인간과 연인이 되어도 실제로 성관계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결혼은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위한 수단이 되었고, 부부의 성관계조차 ‘근친상간’에 비할 정도로 역겨운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인 아마네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신이 전통적인 방식,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의 성관계(’교미’라고 표현된다)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마네는 엄마가 이 사실을 알려 줌으로써 자신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여기고, 평생 ‘정상적’이지 못한 존재라고 여긴다.
종이책 기준 292쪽이나 되니까 딱히 짧은 소설은 아니지만, 내 이북 리더 보기 설정으로는 그 절반인 150쪽 정도였다. 게다가 솔직히 이 책이 문장력이라든지 기발한 표현이라든지 캐릭터성 같은 것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성과 출산, 연애가 분리된 세계’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계속 추구해 나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무언가 잘 가다듬어진 아름다운 문학, 글 자체가 아름답고 명료하고 인상 깊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대신 ‘이 설정을 쭉 끌고 나가면 어떨까?’ 이거 하나만 붙잡고 연구한 글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글 자체의 아름다움?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이 있나요?’라는 느낌. 다만 저자가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를 풀어나가는 걸 보고 나는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읽었다. 특히 몇몇 등장인물들의 발언은 굉장히 덕후스러워서 감탄스러웠다.
예를 들어서 이런 부분을 보시라. 주인공 아마네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인 ‘라피스’라는 남자아이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이 강렬한 느낌!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너무나 머글의 그것이다ㅋㅋㅋㅋ큐ㅠㅠ 덕후 살려!).
“엄마, 나 라피스와 만나고 싶어.”
나는 엄마에게 애원했다.
“못 만나. 아무 데도 없으니까.”
빨래를 개던 엄마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엄마는 나를 바보 취급하며 실망감을 안겨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못 만나’라는 말이 나의 내장 깊숙한 곳에서 더욱더 뜨거운 열정의 덩어리를 끄집어냈다.
나는 곧 알아챘다.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그 사람은 그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까지 포함해 내가 그 소년을 좋아한다는 걸. 온몸에 불가사의한 아픔과 강렬하게 순환하는 혈액의 감촉은 계속되었다. 사랑이란 이런 욱신거림과 아픔을 온몸에 각인시키는 것임을 알았다.
이때 나는 내가 이야기 속 사람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음을 깨달았다.
주리도 굉장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인데 아마 아래 인용문이 상머글이 ‘뫄뫄쨩과 결혼하는 덕후’ 같은 걸 보면 보이는 반응일 듯.
주리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정말 섹스 맞아?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너도 알 거야. 당시에 엄청 유행했거든. 이름은 라피스, 은발에 파란 눈을 한 7,000살의 불로불사 소년이야.”
주리는 안도한 듯 말했다.
“뭐야, 애니메이션 캐릭터잖아.”
“육체관계도 맺었는데? 라피스가 너무 좋아서 어느 날 열쇠고리를 입에 넣은 적도 있어.”
“그게 성행위라고? 설령 거기서 더 진전이 있었더라도 그건 그냥 자위행위야.”
“그런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결국 보는 사람에게 발정을 일으켜서 유사연애를 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야. 넌 그 도구를 이용해 유사연애와 자위를 한 거고.”
첫사랑이 도구라고 불리자 약간 발끈한 난 입을 꾹 다물었다.
내 기분을 알아챈 주리가 달래듯 말했다.
“미안해. 너한테는 중요한 일인데.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 소리는 안 하는 게 좋아. 남들이 보기엔 섹스가 아니라 마스터베이션이니까.”
“알았어…….”
주리는 미즈우치와 같은 충고를 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리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주리는 여기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결국 보는 사람에게 발정을 일으켜서 유사연애를 하게 하는 도구”라고 표현했는데, 바로 뒤에 “인간과 연애하고 번식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성욕 처리를 위해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낸 거야. 그것들은 우리의 성욕을 처리하기 위한 소모품이지. 다들 그걸로 만족하고 있고. 조만간 섹스 같은 걸 굳이 찾아서 하는 사람도 사라질 거야. 비위생적이잖아.”라는 대사도 나온다. 후에는 인간의 성욕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데이터도 판매한다는 언급이 있다(일종의 포르노그래피인 듯). 여기에서 덕후는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성욕 처리를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과연 인간에게 진정한 애정(aka 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세계관에서 애니메이션, 만화, 책, 영화 등의 미디어는 지금 우리의 것과 어떻게 다를까? 성욕 처리를 목표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을 담은 미디어에 어떤 철학이라든지, 깊은 생각이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이런 산업을 혹시 정부가 후원하고 지지하는 걸까? 이것들을 검열하는 기관이 있을까?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읽으면서도 이야기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 세계의 모습이 너무 흥미롭고 또 궁금했는데(물론, <나를 보내지 마>가 이 책보다 훨씬 문학적으로 느껴진다는 게 큰 차이이지만), 이 세계도 궁금했다.
내가 제일 궁금한 건 이거다. 이 세계관에서는 그렇다면 성범죄가 전혀 없을까? 이런 궁금증이 나온 맥락은 이러하다. 아마네가 성인이 되어 조건이 맞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결혼한 부부도 따로 애인을 두고 사는 게 흔하다(바람피우는 게 흔한 문화인 일본답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아내인 아마네의 몸을 주무르며 성관계를 시도한다. 아마네는 “설마 ‘가족’에게 욕정을 느낄 줄이야.”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입에 토사물을 쏟아”내고, 그를 밀치고 화장실로 달겨가 토하고 또 토한다. “그 길로 경찰서에 달려가 남편이 날 덮쳤다고 말하자 경찰도 놀란 눈치였다.”라는 표현을 보면 이게 흔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남편’이 ‘아내’에게 성욕을 느껴서 성관계를 하려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성욕을 타인에게 보였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한 건지는 불분명하다. 이 세상은 성범죄가 전혀 없을까? 성욕이란 게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면, 기술의 발전과 제도 변화를 통해 이렇게나 쉽게 통제될 수 있는 거라면, 아마네가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처럼 ‘가족’을 꾸리려는 것도 본능은 아닌 걸까? 그냥 트라우마를 가진 아마네라는 인물의 개인적 종교? 흠…
어쨌거나 아마네는 그 첫 남편과는 이혼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데, 이 남자는 아마네에게 그런 성욕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애인도 있고. 그 애인은 자기 손목을 그을 정도로 남편과 불행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아마네가 그를 위로하면 “나도 이렇게 당신하고 있을 때는 사랑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내에게 성욕을 못 느끼는 것이나, 드라마틱한 걸 좋아하는 것이나, 또 극 중에서 ‘인공 자궁’을 통해 아기를 인공 수정으로 임신하게 된다는 점까지, 이 모든 점을 다 합쳐서 이 남편이 게이처럼 느껴졌다. “나도 이렇게 당신하고 있을 때는 사랑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니까.” 이게 남편이 아내에게 할 말이냐며… 이 세계관 정말 미쳤다.
리뷰가 여기에서 더 길어지면 내 블로그 인기가 더 없어질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줄여야겠다. 이 외에, 남자도 인공 자궁으로 임신할 수 있는 세계관임에도 불구하고 동성혼은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고(!), 여자가 육아 휴직을 내는 게 여전히 어렵다는 점도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성, 연애, 출산 이런 게 다 분리되어 있는데도 일부 여자들은 여전히 ‘그냥 뜻 맞는 동성 친구랑 같이 사는 게 낫겠다’ 생각한다는 게… 역시 여성은 이런 세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말이 나왔으니 몇 가지 덧붙이자면, 아마네의 남편이 인공 수정을 해서 아기를 가졌는데도 ‘아빠’라고는 불리지 않는다. ‘(남자) 엄마’라고만 불린다. 아마네와 남편이 이사 가는 지바(우리가 흔히 ’치바’라고 하는 일본의 도시. 책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지바’로 표기됐다)는 실험 도시로 선정되어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남녀가 인공 수정의 대상이 되는데,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공동 양육 센터에서 길러지는 ‘아가’가 되고, 도시 사람들은 모두 ‘엄마’가 된다. 진짜 디스토피아 같은 이 도시의 묘사가 아주 으스스한데 이것은 직접 읽어 보며 느끼시기를 권한다.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쪽이라 더욱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대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파트너의 아이를 원하는 거지, 그 아기를 시(市)에서 운영하는 기관에 넘겨서 공동으로 양육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 이 도시가 디스토피아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까.
결국 저자가 낸 결론은 극 중 주리가 하는 이 대사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안전한 발정 같은 건 없다니까. 인간은 점점 진화를 거듭해서 영혼의 형태며 본능도 바뀌어가잖아. 완성된 동물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으니 완성된 본능도 존재하지 않지. 누구나 진화의 과정에 있는 동물일 뿐이야. 그러니까 세상의 상식과 부합하든 하지 않든 그건 우연에 불과하고, 다음 순간에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어지는 거지.”
“…….”
“우리는 진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언제나 그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잘…… 모르겠어. 그럼 인간은 언제 완성되는데?”
“완성은 없어. 크로마뇽인이었을 때는 그게 완성형이라 여겼을 테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던 시절에도 그랬겠지. 두개골과 장기의 형태도 손발의 길이도 계속 바뀌었잖아. 그에 수반하는 영혼이나 뇌 같은 건 그보다 더 쉽게 변화한다고. 올바르다는 개념 자체가 환영이야. 끝없이 추구해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걸.”
정말 그럴까? 한 천 년쯤 더 지나면 이 성욕이란 게 본능인지 아닌지 확실히 판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쯤엔 내가 살아 있지 않을 테니 결국 알 수 없겠군.
마지막으로, 솔직히 저자가 일본인이어서 한국인이 보기에 눈살 찌푸려지는 포인트들이 몇 군데 있다. SF적인 세계관이야 물론 순수 창작물이니까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 세계관 속에서도 고등학생이던 아마네랑 사귀는 교사는 제정신인가? 그리고 인간이든 캐릭터이든 “어떤 사랑이든 상대를 떠올리면 자궁이 욱신거렸다.” 아니 이게 남성향 야망가도 아니고 정식 출간된 문학 작품에서 이런 표현을 보다니? 그리고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는 행위도 따지고 보면… 수갑 철컹철컹할 일이 아닌가? 뭘 나타내고자 했는지는 알겠는데 현실에서 그런 일을 하면 큰일 납니다… 같은 소재라도 한국인 작가가 상상해서 썼으면 이런 포인트는 없었을 것 같아서, 역시 작가도 자신이 속한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성과 출산에서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세상은 존재할까, 상상해 보기에는 도움이 되는 책이다. 관심이 있는 분은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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