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벤 타노프, 모이라 와이글, <실리콘 밸리의 목소리>
[책 감상/책 추천] 벤 타노프, 모이라 와이글, <실리콘 밸리의 목소리>
내가 저번에 읽고 서평을 썼던 애나 위너의 <언캐니 밸리>와 비슷하게, 실리콘 밸리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인터뷰 모음집인데, 특이하게도 실리콘 밸리의 ‘당사자’라고 할 만한 창업자, 엔지니어, 데이터 과학자, 테크니컬 라이터 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주변에서 보고 관찰할 수 있는 요리사와 마사지 치료사까지 인터뷰했다. 이런 기가 막힌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해 내셨나요? 진심으로 감탄했다.
실리콘 밸리를 차지하는 IT 또는 테크 기업은 아무래도 남초인 경향이 많다 보니 성차별이 심하다. 이건 테크니컬 라이터와의 인터뷰 섹션 시작 전에도 분명히 밝혀 놓았다.
소위 말하는 ‘비非기술’ 직군을 보면 실리콘 밸리의 성차별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남자직원 비율은 각각 70%와 63%에 육박하며, 애플의 경우 67%를 차지한다. 기술직군만 놓고 보면 수치는 더욱 심각해진다. 세 곳 모두 남자직원의 비율이 무려 77%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업계 내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데, 테크 업계에서는 기술직군에서 멀다고 여겨질수록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직군’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고객이 코드를 디버깅할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돕는 고객 지원 담당자는 정말 기술직군이라고 할 수 없을까? 우리는 직함에 ‘기술적technical’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서 기술직군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다는 것에 대해 한 테크니컬 라이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업계의 젠더 정치학에 대하여 심도 있게 따지고, 그로 인해 자신이 왜 업계를 떠나려고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머무를 방법을 찾았는지 털어놓았다.
인터뷰 본문에서도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에게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한다. ‘글쓰기’를 (이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분야에서) 대부분 여성이 하기 때문에 이 직업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엔지니어와 경영진들은 그러한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요? 어떤 엔지니어 혹은 경영진과 일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대체로 그다지 높게 평가해주지는 않아요. 그들은 테크니컬 라이터가 방에서 뭘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해요. 글 쓰는 걸 소프트 스킬로 취급하기 때문에 제 말을 중간에 끊고 다른 얘기를 하거나 깔보듯 얘기할 때도 있죠. 완전히 인문학도로 보는 거예요. 이름에 ‘기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거의 유일한 직함인데도 기술 인력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죠. 심지어 테크니컬 라이터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엄연히 성적인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상황 같군요. 다수의 테크니컬 라이터가 여성이에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팀 전체가 여성이고요. 그리고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은 그들이 기술 인력이 아니라는 인식과 맞서고 있어요. 다시 말해 돈을 덜 받고 있다는 뜻이죠. 이건 특히나 형평성에 대한 문제에요. 테크 업계에서 사람의 순수가치는 일반적으로 얼마나 기술 인력으로 여겨지느냐에 따라 좌우되거든요.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 중 70%가량이 여성이어서 의사의 지위가 낮다고 여겨진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트위터에서도 이런 스레드를 본 적 있는데(아래 트위터 짤들 참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노동자 연대에 따르면 소련 시절부터 의사의 75% 정도가 여성이었다고.
이 인터뷰이는 원격 근무가 가능했기에 아이 두 명을 키우는 동시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모두 잘 알듯이, 원격 근무 (그리고 여기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유연 근무제는)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남녀) 노동자에게 환영받는 근무 환경이다. 따라서 원격 근무가 인재를 불러들이거나 유지하는 데 큰 인센티브가 된다 하겠다. 특히 여성은 더욱더.
원격 근무가 선택지에 없다면 많은 여성이 방금 언급하신 이유로 테크 업계를 완전히 떠나게 될 것 같군요. 이 또한 업계 내 성 불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어요. 정확해요. 많은 여성이 아이 때문에 업계를 떠나야 했죠. 아이가 커서 일터로 복귀하려고 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요? 그들이 변화에 금방 적응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어떤 자원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문제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은 절망스러워요.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문제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세상은 아직도 여성들이 가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고, 남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가 될 거라는 기대를 품어요.
성별에 따른 그런 식의 배제는 채용 초기 단계에서부터 일어날 거 같아요. 아이를 키우느라 이력서에 공백이 생긴다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처럼요. 네. 취업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급여를 얼마나 받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해요. 업계를 몇 달 떠난 사람은 이미 뒤쳐졌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기술은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놓쳐버리면 자격 미달이 된다고 생각해요. 테크 업계에서 여성들은 이미 엄청난 임금 격차를 마주하고 있고, 이런 상황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에요. 아까 제 첫 회사에 관해 이야기했었죠. 거기서 만난 상사가 제가 절대 잊지 못할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여자들이 아기를 낳느라 회사를 쉬게 되면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하더군요. 한두 달 일터를 떠나있으면 돌아왔을 때 가치가 떨어져 있다면서요. 그래서 급여를 깎아야 한대요. 이러한 태도는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남자들 사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흔해요. 그들은 여자들이 놀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이유로 출산 휴가를 낸다고 생각한다니까요. 말 그대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말이에요. 그럼 왜 여자가 남자만큼 돈을 받아야 하냐는 거죠.
출산 휴가를 놀기 위해 내는 사람이 어딨냐… 말 그대로 갓 태어난 애를 돌보고 여자면 본인 몸도 회복시키려고 하는 거지… 하, 이래서 출산 휴가를 애 엄마아빠 모두 공평하게 사용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니까.
어쨌거나, 실리콘 밸리의 ‘이너 서클’을 바깥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위에서 언급했듯 이 책의 특장점은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을 돕는 다른 이들을 인터뷰했다는 점인데, 일단 요리사 인터뷰이는 ‘테크 업계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참고로 ‘실리콘 밸리에 요리사가 왜?’라고 생각한다면, 요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음식 및 음료 등을 직원 복지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테크 업계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어요? 그 회사에서 일하는 건 어땠나요? 정말… 별로였어요. 사람들은… 좀 별났고요. 그다지 멋진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테크 업계 종사자들은 자기들이 그야말로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모든 특전과 보너스를 쓸어 담고 있었죠. 그들의 회사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풋내기였고,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에게 화내려는 건 아니지만, 정말 속물들이 따로 없었죠. 주차장엔 벤츠, 람보르기니, 포르쉐, 페라리, 벤틀리가 흔해 빠졌었어요. 요새는 사람들이 좀 더 분별력 있어요. 그때는 좀 달랐죠. 많은 이들이 돈을 좀 벌고 나면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케이터링 회사로 이직했다가 다시 테크 업계에 돌아왔을 때 ”즐거운 마인드로 돈을 벌고자” 한다고, 분위기가 꽤 달라져서 멋지다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이는 직장 내 노조를 결성하는 데 참여했다고 한다.
당신은 계약직이니까 테크 기업과 직접 협상하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테크 기업이 용역업체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분명해요. 협상을 진행하면서, 노조의 뜻을 지지하는 정규직 기술인력을 만난 적이 있나요? 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엄청나게 쿨한 양반들이었죠. 그 왜, 좀 괴짜 같은데 멋있는 거 있잖아요. 컴퓨터라면 빠삭한 해커 같이요. 그 양반들은 여기 나와 자리에 서서 말을 꺼냈어요. 회의에도 참석했고 심지어 일부는 협상에도 나왔죠. 우릴 위해 기대 이상으로 나서준 거예요. 정말로 멋졌어요. 테크 업계 노동자 연합Tech Workers Coalition26)은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곳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결성되었어요. 아시다시피 테크 기업들은 단순 노동 인력을 직접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차라리 그들을 고용할 또 다른 인력을 고용하길 택하죠. 무엇보다 기업은 그런 인력들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길 원치 않아요. 저와 같은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인력 리스트 중에서도 맨 밑바닥에 있어요. 맨 밑바닥에 있다는 이유로 그 어떤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고요. 회사로선 어찌 되든 신경도 쓰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죠.
요즘 플랫폼 기업들이 참 많은데, 테크 기업이든 플랫폼 기업이든 기존 전통적인 업계의 기업이든 전반전으로 직접 고용을 줄이는 추세라 노동자가 기업에게 받는 실질적 혜택이 줄어들었다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예전에는 회사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나 수위도 그 회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라 똑같이 다른 노동자들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웬만해서는 비용 절감 또는 책임 회피를 위해 다 용역으로 돌려 버리니, 그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건 국가가 어느 정도 제한을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튼, 인터뷰이 말로는 노조 결성 이후로 기류가 좀 바뀌었단다. 다행. 역시 단합이 힘이다.
모든 부분을 다 인용할 수는 없지만 실리콘 밸리 안의 ‘전문가’들이 보는 테크 업계의 민낯에 대해 읽는 것도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플랫폼의 일부’라는, 들어가기에 해당하는 꼭지에 있는 이 말을 나누고 싶다.
테크 업계는 소위 ‘전문적인’ 기술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러나 앞으로 소개될 대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한 가지 주제는 ‘모든’ 일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을 위해 스테이크를 준비하는 일이든,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코딩을 하느라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몸을 마사지하는 일이든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계약직 사원들은 테크 업계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실리콘밸리가 있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 가장 깊게 뿌리를 내린 자들이다. 이들은 마지막 부동산 버블 당시 주위 풍경과 이웃에게 생긴 변화를, 갑자기 생겨난 백만장자들이 깔아놓은 풍성한 잔디밭을, 그리고 컨퍼런스 호텔을 짓기 위한 철거 탓에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친구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 실리콘 밸리의 문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곳에서 경험한 이의 관점에서 읽어 보고 싶으시다면 앞에서 언급한 애나 위너의 <언캐니 밸리>도 한번 살펴보시라.
실리콘 밸리를 차지하는 IT 또는 테크 기업은 아무래도 남초인 경향이 많다 보니 성차별이 심하다. 이건 테크니컬 라이터와의 인터뷰 섹션 시작 전에도 분명히 밝혀 놓았다.
소위 말하는 ‘비非기술’ 직군을 보면 실리콘 밸리의 성차별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남자직원 비율은 각각 70%와 63%에 육박하며, 애플의 경우 67%를 차지한다. 기술직군만 놓고 보면 수치는 더욱 심각해진다. 세 곳 모두 남자직원의 비율이 무려 77%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균형은 업계 내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데, 테크 업계에서는 기술직군에서 멀다고 여겨질수록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직군’이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 고객이 코드를 디버깅할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돕는 고객 지원 담당자는 정말 기술직군이라고 할 수 없을까? 우리는 직함에 ‘기술적technical’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서 기술직군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진다는 것에 대해 한 테크니컬 라이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업계의 젠더 정치학에 대하여 심도 있게 따지고, 그로 인해 자신이 왜 업계를 떠나려고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머무를 방법을 찾았는지 털어놓았다.
인터뷰 본문에서도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에게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한다. ‘글쓰기’를 (이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분야에서) 대부분 여성이 하기 때문에 이 직업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엔지니어와 경영진들은 그러한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요? 어떤 엔지니어 혹은 경영진과 일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요. 대체로 그다지 높게 평가해주지는 않아요. 그들은 테크니컬 라이터가 방에서 뭘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해요. 글 쓰는 걸 소프트 스킬로 취급하기 때문에 제 말을 중간에 끊고 다른 얘기를 하거나 깔보듯 얘기할 때도 있죠. 완전히 인문학도로 보는 거예요. 이름에 ‘기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거의 유일한 직함인데도 기술 인력으로 여겨지지 않는 거죠. 심지어 테크니컬 라이터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엄연히 성적인 역학관계에서 비롯된 상황 같군요. 다수의 테크니컬 라이터가 여성이에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팀 전체가 여성이고요. 그리고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모든 여성은 그들이 기술 인력이 아니라는 인식과 맞서고 있어요. 다시 말해 돈을 덜 받고 있다는 뜻이죠. 이건 특히나 형평성에 대한 문제에요. 테크 업계에서 사람의 순수가치는 일반적으로 얼마나 기술 인력으로 여겨지느냐에 따라 좌우되거든요.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 중 70%가량이 여성이어서 의사의 지위가 낮다고 여겨진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트위터에서도 이런 스레드를 본 적 있는데(아래 트위터 짤들 참고), 궁금해서 찾아보니 노동자 연대에 따르면 소련 시절부터 의사의 75% 정도가 여성이었다고.
이 인터뷰이는 원격 근무가 가능했기에 아이 두 명을 키우는 동시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모두 잘 알듯이, 원격 근무 (그리고 여기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유연 근무제는)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남녀) 노동자에게 환영받는 근무 환경이다. 따라서 원격 근무가 인재를 불러들이거나 유지하는 데 큰 인센티브가 된다 하겠다. 특히 여성은 더욱더.
원격 근무가 선택지에 없다면 많은 여성이 방금 언급하신 이유로 테크 업계를 완전히 떠나게 될 것 같군요. 이 또한 업계 내 성 불평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겠어요. 정확해요. 많은 여성이 아이 때문에 업계를 떠나야 했죠. 아이가 커서 일터로 복귀하려고 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요? 그들이 변화에 금방 적응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어떤 자원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문제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은 절망스러워요.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문제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세상은 아직도 여성들이 가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고, 남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모가 될 거라는 기대를 품어요.
성별에 따른 그런 식의 배제는 채용 초기 단계에서부터 일어날 거 같아요. 아이를 키우느라 이력서에 공백이 생긴다면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처럼요. 네. 취업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급여를 얼마나 받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해요. 업계를 몇 달 떠난 사람은 이미 뒤쳐졌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기술은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놓쳐버리면 자격 미달이 된다고 생각해요. 테크 업계에서 여성들은 이미 엄청난 임금 격차를 마주하고 있고, 이런 상황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에요. 아까 제 첫 회사에 관해 이야기했었죠. 거기서 만난 상사가 제가 절대 잊지 못할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여자들이 아기를 낳느라 회사를 쉬게 되면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하더군요. 한두 달 일터를 떠나있으면 돌아왔을 때 가치가 떨어져 있다면서요. 그래서 급여를 깎아야 한대요. 이러한 태도는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남자들 사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흔해요. 그들은 여자들이 놀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이유로 출산 휴가를 낸다고 생각한다니까요. 말 그대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말이에요. 그럼 왜 여자가 남자만큼 돈을 받아야 하냐는 거죠.
출산 휴가를 놀기 위해 내는 사람이 어딨냐… 말 그대로 갓 태어난 애를 돌보고 여자면 본인 몸도 회복시키려고 하는 거지… 하, 이래서 출산 휴가를 애 엄마아빠 모두 공평하게 사용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니까.
어쨌거나, 실리콘 밸리의 ‘이너 서클’을 바깥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위에서 언급했듯 이 책의 특장점은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을 돕는 다른 이들을 인터뷰했다는 점인데, 일단 요리사 인터뷰이는 ‘테크 업계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참고로 ‘실리콘 밸리에 요리사가 왜?’라고 생각한다면, 요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음식 및 음료 등을 직원 복지로 제공하는 곳이 많다).
테크 업계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어요? 그 회사에서 일하는 건 어땠나요? 정말… 별로였어요. 사람들은… 좀 별났고요. 그다지 멋진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테크 업계 종사자들은 자기들이 그야말로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모든 특전과 보너스를 쓸어 담고 있었죠. 그들의 회사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풋내기였고,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에게 화내려는 건 아니지만, 정말 속물들이 따로 없었죠. 주차장엔 벤츠, 람보르기니, 포르쉐, 페라리, 벤틀리가 흔해 빠졌었어요. 요새는 사람들이 좀 더 분별력 있어요. 그때는 좀 달랐죠. 많은 이들이 돈을 좀 벌고 나면 자신들이 어디서 왔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케이터링 회사로 이직했다가 다시 테크 업계에 돌아왔을 때 ”즐거운 마인드로 돈을 벌고자” 한다고, 분위기가 꽤 달라져서 멋지다고 대답했다. 이 인터뷰이는 직장 내 노조를 결성하는 데 참여했다고 한다.
당신은 계약직이니까 테크 기업과 직접 협상하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테크 기업이 용역업체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분명해요. 협상을 진행하면서, 노조의 뜻을 지지하는 정규직 기술인력을 만난 적이 있나요? 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엄청나게 쿨한 양반들이었죠. 그 왜, 좀 괴짜 같은데 멋있는 거 있잖아요. 컴퓨터라면 빠삭한 해커 같이요. 그 양반들은 여기 나와 자리에 서서 말을 꺼냈어요. 회의에도 참석했고 심지어 일부는 협상에도 나왔죠. 우릴 위해 기대 이상으로 나서준 거예요. 정말로 멋졌어요. 테크 업계 노동자 연합Tech Workers Coalition26)은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곳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결성되었어요. 아시다시피 테크 기업들은 단순 노동 인력을 직접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차라리 그들을 고용할 또 다른 인력을 고용하길 택하죠. 무엇보다 기업은 그런 인력들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길 원치 않아요. 저와 같은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인력 리스트 중에서도 맨 밑바닥에 있어요. 맨 밑바닥에 있다는 이유로 그 어떤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았고요. 회사로선 어찌 되든 신경도 쓰지 않고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죠.
요즘 플랫폼 기업들이 참 많은데, 테크 기업이든 플랫폼 기업이든 기존 전통적인 업계의 기업이든 전반전으로 직접 고용을 줄이는 추세라 노동자가 기업에게 받는 실질적 혜택이 줄어들었다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예전에는 회사 건물을 관리하는 경비나 수위도 그 회사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라 똑같이 다른 노동자들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웬만해서는 비용 절감 또는 책임 회피를 위해 다 용역으로 돌려 버리니, 그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건 국가가 어느 정도 제한을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튼, 인터뷰이 말로는 노조 결성 이후로 기류가 좀 바뀌었단다. 다행. 역시 단합이 힘이다.
모든 부분을 다 인용할 수는 없지만 실리콘 밸리 안의 ‘전문가’들이 보는 테크 업계의 민낯에 대해 읽는 것도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플랫폼의 일부’라는, 들어가기에 해당하는 꼭지에 있는 이 말을 나누고 싶다.
테크 업계는 소위 ‘전문적인’ 기술을 매우 중요시한다. 그러나 앞으로 소개될 대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한 가지 주제는 ‘모든’ 일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을 위해 스테이크를 준비하는 일이든,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코딩을 하느라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몸을 마사지하는 일이든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계약직 사원들은 테크 업계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실리콘밸리가 있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에 가장 깊게 뿌리를 내린 자들이다. 이들은 마지막 부동산 버블 당시 주위 풍경과 이웃에게 생긴 변화를, 갑자기 생겨난 백만장자들이 깔아놓은 풍성한 잔디밭을, 그리고 컨퍼런스 호텔을 짓기 위한 철거 탓에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친구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 실리콘 밸리의 문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곳에서 경험한 이의 관점에서 읽어 보고 싶으시다면 앞에서 언급한 애나 위너의 <언캐니 밸리>도 한번 살펴보시라.
2022.11.14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애나 위너, <언캐니 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