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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헤더 라드케, <엉덩이즘>

by Jaime Chung 2024.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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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헤더 라드케, <엉덩이즘>

 

 

제목처럼 오직 ‘엉덩이’에만 집중한 책. 엉덩이를 진화학﹒사회﹒문화 등 다양한 면에서 바라본다. 도대체 엉덩이가 가진 매력은 뭘까? 사람의 몸에서 매력적인 부위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엉덩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개인적으로 엉덩이의 (아무래도 섹스) 어필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고서야 왜 사람들이 엉덩이를 좋아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나도 엉덩이의 팬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저자 본인도 ‘큰 엉덩이’의 소유자로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자신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자신과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엉덩이에 대해 연구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첫 시도는 엉덩이의 기원으로, 엉덩이를 진화학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엉덩이는 진화의 산물이자 핵심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 기록을 계속 살펴보던 리버먼과 브램벌은 인간을 달리게 만들어주는 거의 모든 신체 특징이, 인류의 조상들이 이족보행을 시작한 시기 전후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이 사실을 두고, 그들은 고인류가 ‘달리기를 하기 위해 이족보행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발가락이 짧아서 발가락을 앞뒤로 구부리며 몸을 앞으로 내던질 수 있었던 최초의 고인류였다. 아치 있는 발바닥과 긴 아킬레스건이 일종의 스프링과 완충기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골반을 돌릴 수 있었던 것도, 달릴 때의 묵직한 중량을 감당할 무릎을 지녔던 것도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이었다. 그는 엉덩이를 지닌 최초의 고인류이기도 했다.

다윈을 비롯한 진화 생물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몸이 빠른 사바나의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던 것이 이족보행의 이점 덕분이라고 추정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손이 자유로워 창과 활과 화살 같은 사냥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호모 에렉투스가 도구로 사냥했을 가능성은 적다. 질긴 동물 가죽을 꿰뚫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빠르게 달리는 300킬로그램짜리 영양을 쓰러뜨릴 상처를 입히는 건 더 어렵다. 그러려면 돌촉창이나 화살을 써야 하는데, 호모 에렉투스가 쓸 수 있었던 도구는 기껏해야 나무 방망이와 끝을 뾰족하게 만든 꼬챙이가 전부였다. 이런 도구로 동물을 죽이려면 아주 근접한 거리까지 다가가야 한다. 그렇다면 세련된 무기가 없었던 초기 인간들은 대체 뭘 썼을까? 그들은 엉덩이를 썼다.
리버먼에 의하면 닉 쿠리가 〈인간 대 말〉 경주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존재하는 이유는 초기 인류가 많은 네발짐승에겐 없는 특별한 이점을 지니도록 진화해서다. 네발짐승은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빠른 속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는 없다. 말을 비롯한 네발짐승은 갤럽으로 달릴 때 헐떡거리지 못한다. 속보로 걷거나 그냥 걸을 때에만 헐떡거릴 수 있다. 이는 빠르게 달릴 때 체온을 내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10~15킬로미터를 갤럽으로 뛰고 나면 몸이 뜨거워져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밍거스산보다 훨씬 덥고 평지였던 사바나라는 환경에서 고대 인류가 사냥한 동물들도 똑같았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영양은 몸이 뜨거워져서 속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인간은 속도가 느리긴 해도 몇 시간씩 달릴 수 있다. 인간이 달리는 속도는 네발짐승 대부분이 속보하는 속도보다 아주 살짝 빠르다. 우리의 두 다리 위에 붙은 밀도 높은 특수한 근육의 집합체 덕분이다.

 

또한, 건강하게 살기 위해 누구나 지방이 필요하지만, 그 필요량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건강하면서 (즉, 굶주리지 않으면서) 지닐 수 있는 최소한의 지방량은 여성의 경우는 8~12%이고, 남성은 4~6%라고 한다. 여성은 재생산을 위해 남성보다 지방을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 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상식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 하나. 그 지방은 왜 굳이 가슴이나 골반, 엉덩이, 허벅지 등 소위 ‘여성적인’ 곡선을 만들어 주는 곳들에 붙어 있는 걸까? 다른 곳에 붙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진화 인류학자는 이렇게 답한다.

(…)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장 직접적인 가능성은 생리학적 이유다. 지방을 다른 곳에 저장하면, 그 부위가 우리 몸의 가동 범위를 제약하고 무게 중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방질 어깨를 가지면 상체가 무거워지고, 지방질 무릎을 가지면 걷기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호크를 비롯한 진화 인류학자들이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지방을 엉덩이와 허벅지에 저장하는 게 더 안전한 이유는 지방 조직에 둘러싸였을 때 반응이 좋지 않은 필수 장기에서 가장 먼 곳이라서다. 게다가 엉덩이와 허벅지가 더 크고 허리가 더 가는 여자의 모유에 지방이 더 많다는 증거도 있는데, 이는 식단에서 다량의 지방을 얻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기가 성장하도록 돕는 긍정적 적응이었을 것이다. 호크는 이것이 인간 여성이 모유 수유를 할 때 허벅지와 엉덩이에 저장한 백색 지방을 끌어써서 아기에게 영양을 제공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제 역사를 살펴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엉덩이는 아마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알려진 사라 바트먼의 엉덩이일 것이다. 그는 1770년대에 남아프리카 시골의 네덜란드 식민지 지역에서 태어난 코이족이다. 그는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네덜란드인에게 부모님과 함께 붙잡혀 식민주의자의 농장에서 하인으로 일하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모두 잃고 1790년에 중반에 자유 흑인이었던 피터 시저스에게 팔렸다. 시저스는 바트먼에게 케이프타운의 군용 병원에서 해군들을 상대로 “공연”을 시켜 돈을 벌어오게 했다. 그 공연이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역사학자들도 알지 못하지만, 바트먼은 큰 엉덩이를 보여 주라는 요구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공연을 본 사람들 중 한 명인, 스코틀랜드에서 온 군의관 알렉산더 던롭이 시저스에게 접근해 바트먼을 잉글랜드로 데려가 피커딜리에서 코이족 복식을 입은 채 기타를 치는 공연에 출연시키자고 제안했다. 1810년 봄, 바트먼은 던롭, 시저스, 던롭이 고용한 흑인 소년과 함께 배에 올라 잉글랜드로 향했다. 바트먼을 무대에 올린 사람들은 그의 커다란 엉덩이를 부각했다.

여성의 엉덩이에 대한 서구 백인들의 이해는 세라 바트먼이 잉글랜드에 도착한 순간 바뀌었고, 그 상태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엉덩이, 그중에서도 큰 엉덩이는 이국적이고 에로틱한 것과 강력한 연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런 연상은 오늘날도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바트먼이 생전에 누린 큰 인기는 세상을 떠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이어졌고, 진화했고, 왜곡되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남지 않을 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전시당하고 해부당한 그의 몸이 남긴 유산은 엉덩이만의 방식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그러니까 농담 속에, 암시 속에, 시각적 반향 속에.

바트먼의 몸은 또한 아프리카 여성이 태생적으로 백인 여성보다 섹슈얼하다는 거짓된 믿음의 증거로 쓰였다. 바트먼이 런던에 등장한 1810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이 믿음은 대단히 중요했다. 1807년에 노예무역이 금지되자, 노예제로 이득을 보고 있던 많은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새로 노예를 들이지 않으면서 노예제 관습을 이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수입되는 아프리카 노예의 공급을 끊었는데, 아메리카에서 노예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면, 남은 건 다음 세대의 노예를 생산할 방법을 찾는 것일 테죠. 그래서 남북 아메리카에서는 노예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전부 노예라고 법으로 정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강간을 합법화하는 법이었죠.” 홉슨은 세라 바트먼을 섹슈얼한 아프리카 여성의 표본(과학 논문과 대중문화 기록에서 그의 엉덩이를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강조했다)으로서 대중 앞에 세운 것이, 노예 여성 강간을 합리화할 때 사용된 ‘타고나길 섹슈얼한 흑인 여성’ 논리를 뒷받침하는 일종의 증거였다고 말한다. “그게 기독교를 믿는 노예주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고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분명히 내 몸의 일부이지만 거울이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보기도 힘든 부위인 엉덩이를 도대체 사람들(대체로 남성들)이 왜 그리 좋아하는 걸까 했는데, 역시 답은 성적인 어필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이제는 바로 그 성적인 함의 때문에 엉덩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부담스러워지는걸…

그런데 19세기 사람들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흑인 엉덩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엉덩이가 흑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그토록 지독한 연상 관계를 맺게 된 건 어째서였을까? 샌더 길먼은 19세기 중반에 엉덩이가 여성 생식기의 대용품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한다.46 19세기의 과학자들과 얼빠진 대중이 세라 바트먼 같은 사람의 엉덩이를 보면서 외음부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머지, 엉덩이가 하이퍼 섹슈얼리티를 함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흑인 여성의 커다란 엉덩이는 그에게 커다란 생식기가 달렸음을 암시한다고 여겼고, 커다란 생식기는 높은 성욕과 더불어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증거가 되었다. 엉덩이에서 외음부를 연상하는 건 기묘하다. 두 신체 부위는 전혀 다르고, 기능도 딴판이지 않은가. 하지만 당대의 과학 문헌에서 여성 해부학의 가장 은밀한 두 부위는 꾸준히 융합된다. 바트먼의 음순과 엉덩이가 별개로 논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엉덩이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물론 트워킹일 것이다. 이 책은 트워킹의 기원이 아프리카에 있다는 점은 물론, 트워킹이 어떻게 백인에 의해 전유(專有)되었는지도 짚고 넘어간다. 물론 그 가장 좋은 예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트워킹 사건(201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의 그 사건!)일 것이고. 자기 여자 친구 엉덩이에서 영감을 받은, 서 믹스어랏(Sir Mix-a-Lot)의 ‘Baby Got Back’도 등장한다(’그게 무슨 노랜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들어 보면 ‘아 이거!’ 하실 듯. 뮤직 비디오 링크를 통해 확인해 보시라). 킴 카다시안? 제니퍼 로페즈? 비욘세? 이들 없이 어떻게 엉덩이를 논하랴.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엉덩이’들도 총출동이다.

 

또한 이 책은 엉덩이나 가슴처럼 소위 ‘여성적인’ 곡선이 없다는 점에서 비교해 볼 만한 1920년대 ‘플래퍼’ 유행도 다룬다. 엉덩이를 비롯해 몸을 ‘정상’ 또는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기성복 사이즈에 대해서도 살짝 살펴보는데, 나는 덕분에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너무 좋아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아래 인용문을 보시라.

“당신에게 맞추어 만들어진 옷이 아니라면, 실제로 당신에게 맞을 리 없습니다.” 의류 치수를 주제로 나와 무수히 대화를 나눈 에비게일 글럼-래스버리Abigail Glaum-Lathbury가 내게 말한다. 예술가이자 패션 디자이너, 시카고 예술대학 교수인 글럼-래스버리는 치수의 역사와 오늘날 치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는 여성복의 치수는 실제로 옷이 몸에 맞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당혹스럽고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나 역시 내가 산 옷이 몸에 잘 맞는다고 느낀 적은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의류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도 실제로 옷이 사람의 몸에 맞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니, 새로웠다. 그들도 몸에 맞는 옷을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단지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의 진보한 기술과 제조업으로도 그 과업이 불가능한 것뿐이다.
글럼-래스버리의 설명에 의하면 옷이 몸에 맞으려면 살이 분포된 형태와 옷이 일치해야 하는데, 살은 표준화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두 여자의 키와 몸 둘레 치수가 정확히 같더라도, 골격 위에 살이 반드시 같은 형태로 붙어 있는 건 아니다. 이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위는 가슴이다. 가령 글럼-래스버리와 내가 가슴둘레가 정확히 같더라도, 가슴 모양은 다를 수 있다. “제 갈비뼈가 당신보다 넓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저보다 어깨가 넓을 수도 있고요. 제 가슴이 옆으로 더 퍼져 있고, 당신 가슴이 더 크고 앞으로 나왔을 수도 있어요.” 엉덩이도 똑같다. 엉덩이와 허리둘레 치수는 여성의 엉덩이 살이 분포된 방식이나 모양을 알려주지 못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엉덩이엔 규격이란 게 없으므로, 규격화된 바지 치수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이 책은 사실 원제도 기가 막히다. 무려 <Butt: A Backstory>다. ‘뒷이야기(backstory)’에 엉덩이를 연상시키는 ‘back’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적절히 이용했다. 오로지 엉덩이에 대해 이만큼 학구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니 놀랍다.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밀리의 서재에서도 이용 가능하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거들떠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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