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클레어 L. 에반스, <세상을 연결한 여성들>
기술 혁신의 현장에 여성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선봉에 서 있었던 여성들의 업적을 꼼꼼히 다룬 논픽션이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여성들 이외에, 아파넷(ARPANET)을 관리한 엘리자베스 ‘제이크’ 파인러나 세계 최초로 여성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한 스테이시 혼 등, 비교적 덜 알려진 여성들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훌륭하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단순히 분량이 (종이책 기준) 464쪽으로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던 에이다 러브레이스나 컴파일러를 만든 그레이스 호퍼처럼 유명한 여성들은 그래도 내가 이곳저곳에서 이름을 들어 봤고 짧게라도 그 역할에 관해 들어 봤기 때문에, 읽어내기가 쉬웠다. 단순히 그들의 업적뿐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했으며, 어떤 내적 동기가 있었는지 등등, 그 인물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등장하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여성들의 업적은 그냥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저자가 기술적인 면을 좀 자세히 설명하기도 하고, 여성 개인의 업적 자체가 아주 구체적이고 특이했기 때문이다. 소설 작가들도 이렇게까지 특이한 이야기는 생각해 내지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읽다가 ‘아니, 이런 여성들에 대해 내가 여태까지 들어 보지도 못했다는 게 말이 돼?’ 하고 실소를 내뱉었다. 여성의 업적을 축소하고 무시해도 유분수지, 내가 30년을 넘게 살고서야 다윈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이 책 참고)에 대해 알게 됐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2017) 덕분에 이제는 기계 컴퓨터 이전에 ‘인간’(=여성) 컴퓨터들이 복잡한 계산을 했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수학자들이 기계의 처리 능력을 ‘걸이어(girl-year)’, 즉 같은 일을 여성 컴퓨터들이 할 때 걸리는 시간으로 어림잡고, 기계 노동의 단위를 ‘킬로걸(kilo-girl)’로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은 킬로걸들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성 혐오의 역사도 빠질 수 없겠죠? 예를 들어,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을 프로그래밍한 여성들은 자신의 업적에 걸맞는 인정과 찬사를 받지 못했다.
시연은 대서특필되었다. 이 여성들은 남성 동료들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카메라의 플래시 전구를 기억했지만, 정작 신문에 실린 사진에는 정장을 입고 군 장식을 단 채 유명한 기계 옆에서 포즈를 취한 남성들만 보였다. 언론은 에니악에 대해 떠들어대며 미국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공개된 전시동원의 결실이라고 발표했다. 컴퓨팅 분야에 생소한 기자들은 에니악을 “거대한 뇌” “생각하는 기계”라고 불렀다. 생각하는 기계로서의 컴퓨터는 이후에 과학소설 작가들의 열렬한 지지로 대중에 깊이 각인되었지만 사실은 왜곡된 해석이다. 에니악은 생각하지 못했다. 1초에 수천 번 곱하고 더하고 나누고 뺄 수는 있을지언정, 추론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거대한 뇌가 아니었다. 만약 그 방에 거대한 뇌가 있다면, 그건 기계를 제작하고 작동시킨 사람들의 것뿐이다.
기계 자체가 영리하다고 주장하는 신문 기사는 에니악 여성들을 자극했다. 그들은 에니악이 그저 강철과 전선으로 가득 찬 상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생각이란 걸 한다는 이 기계가 돌아가기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우리였다.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베티 진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짜증 유발을 넘어서는 사건이었다. 사실상 그녀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던 것이다. 1946년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에니악 시연 취재 기사는 “에니악에게 … 숙련된 남성도 푸는 데 몇 주나 걸릴 어려운 문제를 주었다. 에니악은 정확히 15초 만에 해냈다”라며 숨 가쁘게 보도했다.
역사학자 제니퍼 S. 라이트가 지적했듯이, 저 보도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일단, 애초에 “몇 주나 걸릴” 문제를 푼 것은 남성이 아니었다. 무어 공과대학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여성 컴퓨터들이 수행한 작업이었다. 다음으로, 에니악이 “정확히 15초 만에” 해결했다는 주장은, 그것이 무지의 소치였든 고의적인 묵살이었든 이날의 시연이 사람들 앞에서 문제가 컴퓨터에 입력되기 전에 여성들이 몇 주 동안 문제를 프로그래밍하고 공들여 실행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했다. 언론은 저 마법 같은 15초 외에 코딩과 디버깅을 하는 시간, 프로그래머와 유지 보수 작업자와 오퍼레이터의 노동 시간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제니퍼 라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시연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했던 숙련된 노동과 그 일을 해낸 능력 있는 여성의 성별 모두 기자 회견과 후속 취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맡던 컴퓨터의 역할과 그 여성들이 만든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는 어떻게 남성의 전유물이 되었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가 1968년에 소집한, 소프트웨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회의에서 남자들이 그렇게 정해 버렸다. 이 회의에 여성들은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회의는 독일 바이에른의 스키 리조트 도시인 가르미슈에서 열렸다. 추크슈피체산 산자락에서 남성 참석자들은 컴퓨팅 산업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며 프로그래밍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았다. 그들이 일으킨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의미에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이제부터 프로그래밍은 소프트웨어 공학으로 불릴 것이다.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부적응자나 여자들이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야생화 들판이 아닌 공학의 한 갈래로 취급될 것이다. 공학자는 확실한 자격증을 가진 직업이지, 그림자 같은 사제직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전문 저널과 학회, 고용 관행, 자격증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팅의 전문적인 지위가 더 폭넓게 재협상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컴퓨팅 세계는 전문화될수록 은연중에 더 남성화되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 관련 직종에 종사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학력을 도입하면서, 독학 프로그래머들이 직장을 찾기가 더 어렵게 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여성들, 특히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학했을지도 모르는 여성 지원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변화였다. 역사학자 네이선 엔스멩거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여성의 일로 시작했더라도, 결국엔 남성적으로 만들어져야 했다.”
기술이나 과학은 남자들만의 것이라는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데, 특히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소녀소년을 불문하고 여성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타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권을 다 읽기 어려우면 개중에 흥미로워 보이는 장만 먼저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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