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마크 코켈버그,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by Jaime Chung 2024. 7. 19.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마크 코켈버그,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현대에는 자기 계발조차 기술의 도움을 받아 계량되고 수치화된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를 차고 시속 몇 킬로미터로 몇 분 동안 달렸으니 몇 칼로리를 소비했고, 최대 심박수는 몇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기술 발전에 힘입은 자기 계발은 과연 우리에게 득일까, 독일까?

저자는 오늘날 기술철학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꼽힌다는 벨기에 출신의 철학자 마크 코켈버그다. 나는 기술철학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지렁이지만, 이 책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책은 종이책 기준 200쪽밖에 안 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정말 문단 하나하나에 내용이 가득차서, 버릴 문단이 하나도 없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갓생(’god’➕’生’)’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자기 계발이 붐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자기 계발은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자기 계발을 한다. 직장이나 가정생활에서만 번아웃이 오는 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번아웃을 해결하려고 하는 자기 계발 활동에서도 번아웃을 경험한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스스로를 계발하고,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사실 자아 완성이라는 개념의 뿌리는 고대 철학에 있으며 기독교 전통의 일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아 완성을 인간으로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스토아학파는 자연 및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기독교 철학(이를테면 아우구스티누스)에서는 자기 인식뿐만 아니라 자아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아 완성(완전함)이란 죄가 없고 도덕적으로 바른 상태를 말하는데, 이는 사후에나 성취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가 그 전형이지만 인간도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수 세기 동안 자아 완성은 세속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수도자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은 독신 생활을 했으며 훗날에는 수도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수도자들은 금욕주의를 실천했는데 금욕주의는 ‘훈련’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용어를 주로 운동과 관련된 육체적 훈련을 의미하는 데 사용했지만 수도자들에게 금욕주의는 검소, 절제, 육욕 억제, 극기, 때로는 육체적 고행을 의미했다. 당시 이것은 영적인 변화와 완성(격정을 통제하고 내면의 죄를 뿌리 뽑아 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에 이르는 조건을 구축한다는 뜻이었다. 중세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명저 『신학 대전』에서 다양한 수준의 자아 완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의 자기 계발은 데이터 감시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면, 우리가 자기 계발을 위해 사용하는 기술과 그 사용처를 떠올려보시라. 위에 언급한 자기 계발을 위해 달리기를 할 때 그 달리기의 운동 강도와 거리, 칼로리 소비량 등을 측정하는 스마트워치의 예처럼. 아니면 목표 달성 또는 습관 만들기를 도와준다는 ‘챌린저스’나 ‘그로우’ 같은 앱들.

그러는 사이 기업의 데이터 감시자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헤아린다. 만족할 줄 모르는 소비자(불교 교리에 따르면 절대적 공포)는 광고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표적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자기애의 형태로 자기 관리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데이터 경제에서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데이터를 생산하고 개인 맞춤화된 광고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런 맞춤형 광고는 사람들이 수천 명의 ‘친구들’에게 공유한 마음속 비밀을 수집하고 그들의 취향을 앞다투어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내고 이미 부자인 최신 기술 및 미디어 기업 소유주들의 배를 더 불린다. 그러는 동안 이런 도착적 형태의 후기 기독교식 고백과 신인문주의식 커뮤니케이션은 괴로움에 찌든 육체와 정신이 마침내 포기를 선언할 때까지 끊임없이 실패하고 패배하는 피지배자를 생산해 낸다. 자기 계발 문화와 개인적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의 결합은 파괴적이다. 언젠가는 포기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설명한 대로 “성과 주체는 더 이상 유능할 수 없다.”)

 

또한 자기 계발은 잘못된 종류의 자기애를 부추길 수 있다.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자기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걱정하다 보면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미국의 심리학자 진 트웽이와 키스 캠벨은 “인터넷은 사람들이 과장된 자아를 자기중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매일 자기 이미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골몰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를 두고 ‘나 좀 봐!’ 사고방식이라고 불렀다. 정말 딱 맞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짚어내듯이) ‘자기 자신’, ‘자아’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실존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현대의 자기 계발 열풍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는 점에서도 건강하지 않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개인이 피해를 입는다면 사람들은 그 사회 문제를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이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계발을 해서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니체 철학,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하여 분석을 진행한 이들은 다시 한번 개인 차원에서만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기 계발 문화는 사람들이 사회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개인적인 해결책에만 집착하도록 조장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자기 계발을 자기 착취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관리자를 탓하거나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지만(이마저도 바뀌는 추세다. 많은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자영업에 뛰어들고 기계의 감독을 받는 노동자도 점점 늘고 있다.)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기 계발에서 비난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남지 않는다. 성과에 집착하는 사회에 대한 한병철의 분석은 소위 자기 계발 사회에도 적용된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자아를 계발하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므로 결국 불평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착취가 자기 착취로 재규정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은 여전히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제일 공감한 부분은 자기 계발을 오로지 ‘자신’에 관한 것으로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다시 말해, 자기 계발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자기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자기 계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좋든 싫든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지금의 우리 모습(자아)은 상당 부분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은 자아를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고 이것을 수행해야 할 과제이자 노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을 통해 개선되고 발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들인 노력의 결과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실천한 것, 타인의 행동과 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다시 말해 우리가 (적어도 완전히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 우리를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하고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일들에 의해 생겨난 부산물이다. 분명 타인은 자기 계발에 장해가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그들 때문에 성장한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머리 위 전구에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내’가 노력을 해서 더 나아질 수 있다, 오직 모든 것이 내 노력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었구나! 나도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에도 영향을 받고, 내가 타고난 속성들(예를 들어 인종, 국가, 성별 등)에도 영향을 받으며, 주위 사람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데! 물론 저자의 말대로 우분투 철학(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생활 철학으로 타자와 공동체를 중시한다) 같은 관점이나 인격성 같은 개념을 서양의 맥락에 단순히 적용할 수는 없지만, “이런 관점과 개념들은 자아와 자기 계발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벗어나 사유하고 다양한 철학 전통을 더 고려하는 데 자극이 될 수 있다. 자아를 관계적으로 이해하는 시각은 타인이나 생태계에 대한 의존성을 문제가 아니라 자기 계발의 기회로 바라본다.”

 

번아웃을 유발할 정도로 지독한 자기 계발 열풍에 지쳤다면, 내가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게 정말 맞는 길인지 고민하고 있다면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