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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로런 플레시먼, <여자치고 잘 뛰네>

by Jaime Chung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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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로런 플레시먼, <여자치고 잘 뛰네>

 

 

저자 로런 플레시먼은 미국의 5천 미터 달리기 챔피언으로, 어릴 때 시작한 달리기에 선수 생활을 바치고 지금은 작가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그녀의 자서전이자 여성 스포츠의 옹호 글이다.

 

여자의 몸을 안다면, 굳이 선수 생활을 해 보지 않아도, 여자 선수와 남자 선수가 동일한 훈련법을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게 상식이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스포츠의 많은 부분이 남성 위주로 연구되었기에 여성을 위한 자료는 많지 않다. 저자는 미국 교육계에서 성차별을 막기 위해 제정된 법인 ‘타이틀 나인(Title Ⅸ)’이 도입된 시기에 학교를 다녔고, 처음에는 크로스 컨트리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성별에 따른 운동 능력의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는 12세까지 다양한 스포츠와 분야에서 또래 남자와 경쟁하며 연령대별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사춘기 호르몬이 여성과 남성의 신체에 서로 다른 변화를 일으키는 12세가 되면 수행 능력의 경로가 두 갈래로 나뉜다. 남녀 모두 평균적으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훈련을 통해 능력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속도는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사춘기 남자의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근골격계 변화, 적혈구량 증가, 체지방량 감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남자아이들은 모든 훈련에서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수행 능력 격차는 해가 갈수록 커지다가 20세 전후가 되면 종목에 따라 남성이 10~50퍼센트 유리한 상태로 안정화된다. 훈련, 영양, 자금, 의료 서비스와 같은 요소를 통제하더라도 이러한 패턴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아무도 내게 이런 설명을 해준 적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대학에서 운동생리학을 수강하기 전까지 운동 능력과 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처음에는 희망을 품었다. 누가 이기느냐는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신념, 즉 명백한 성 불평등의 시대에 남겨진 인간의 상상력 부족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경마에 대해 좀 조사해보고 나서 켄터키 더비에서 암말이 세 번이나 우승한 적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물긴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쩌면 중요한 건 잘 뛰는 말이 아닐까? 내가 바로 그 말이었다! 하지만 매일 훈련하며 수십 명의 소년에게 뒤처지자 환상은 조금씩 사라졌다.

많은 스포츠에서 성별에 따른 경기력 차이는 시즌이나 경기마다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기회가 거의 없어 선수들도 잘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크로스컨트리와 육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여학생과 남학생의 프로그램이 결합되어 있고 모든 성별의 선수들이 코치, 시설, 연습 시간, 경기 일정을 공유한다. 모든 코스와 경주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경기력 차이는 내가 여자임을 분명하게 상기시켜주었다. 다행히 불공평함으로 인한 통증은 기회 균등이라는 연고로 금세 진정되었다. 학교에서는 타이틀 나인이 이를 가능케 해주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육상 경기장이 동일한 기회와 보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경쟁심 강한 내가 스포츠와 내 몸을 다시 편안하게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크로스컨트리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선발 시험도 없고 탈락도 없다. 크로스컨트리의 기본 신조는 다른 모든 스포츠의 기본 신조와 같다. 뿌린 대로 거둔다. 노력이 곧 결과다. 아주 단순하다! 그저 나와서 열심히 운동하고 스스로를 믿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진실’은 격려가 되고 영감을 주는 냉장고 자석 문구가 되지만, 스포츠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자도 잘 달렸고 우수한 성적을 냈지만, 시간이 흘러 몸이 ‘여성스러워지기’ 시작하자 그 차이를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같은 팀이나 다른 팀 선수들을 봐도 더 빨리 달리고 싶어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더 심하게는 식이 장애를 얻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기사에서 그는 더 빨리 달리고 더 전념하고 싶은 욕망에서 질병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더 건강하게’ 먹자 체중은 줄었고 기록도 향상되었다. 당시 기록이 좋아진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노력과 집중력을 꼽았는데,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의 몸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훈련 도중 뼈가 부서지고 골절이 생겼다. 나는 그날 밤 트랙에서 조명 아래 날아다녔던 그의 가냘픈 몸, 앙상한 어깨, 취재진의 열기를 다시 떠올렸다. 내 영웅은 고통에 시달렸고, 살기 위해 사랑하는 스포츠를 떠나야 했다. 피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요?” 들롱에게 물었다.

“체중을 줄이면 더 빨라질 수 있어.”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줄이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 그가 덧붙였다. 들롱은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저칼로리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고, 토스트에 마가린을 발라 먹었다.

누군가의 방법이 적합한지 잘못된 것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궁금했다. 체중을 감량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어떻게 아는 걸까? 나는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킴과 그의 기록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가 건강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그 기록은 스스로를 해하지 않고는 쫓아갈 수 없는 불가능한 기준이 되었다.

기사에는 없었지만 킴이 무엇을 극복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춘기였다. 팀원들 모두 사춘기를 겪고 있었지만 우리는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몸이 바뀌었다. 더 열심히 훈련하는데도 속도가 떨어지는 여자아이들도 있었다. 몇몇은 진전이 없었다. 침체기를 겪다가 갑자기 발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구성원은 바뀌었고 우리는 1학년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주 대회에 팀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내게는 팀이 타고 다니는 밴 안에서 피오나 애플의 노래를 함께 부를 사람도, 머리를 땋아줄 사람도 없었다. 주 대회에서 2위로 경기를 마쳤을 때 어른들이 시상대에서 나보다 위에 서 있다가 사라진 소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들의 입술에서 연민이 묻어나왔다.

“걔는 어떻게 됐어?”

“엉덩이랑 가슴이 생겨서 끝났어요.”

“신입생 때가 정점이었죠.”

“사춘기는 여자애들이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이에요.”

 

위에서 말했듯, 전기에 가까운 이 책의 곳곳에 저자는 그 당시, 그리고 현재의 스포츠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선수들이 충분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여성 선수들을 위한 스포츠 과학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나 스폰서와의 적당한 계약을 얻기 어렵다는 점 등에서)를 비판하고, 필요하다면 통계나 관련 사실을 제시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장거리 달리기 선수의 87퍼센트가 코치에게 월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80퍼센트가 남성인 코치들은 이러한 논의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여성 운동선수의 코치들에게 여성생리학, 사춘기 또는 월경 주기에 대한 교육이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월경이라는 단어를 돌려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과정을 성의 상품화와 혼동하여, 남성 코치에게 ‘여자들의 일’을 담당하는 여성 보조원 고용을 장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전략은 이직률이 높은 직책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를 ‘월경을 한다’는 자격으로 여성을 보조하는 직책에 계속 고용해야 하는 가짜 이유를 만들어낸다. 여성 운동선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은 사춘기와 월경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춘기와 월경은 팀원들 중 절반의 일상을 형성하는 구체화된 경험이자 현실이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월경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월경 이상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큰 보상이 돌아가고 여자아이들은 연간 향상률이 남자아이들의 절반 수준인 1.2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운동선수와 코치들은 이를 무시하게 된다. 사춘기를 파괴적인 신화로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과정이 위협적인 것 또는 두려워하거나 슬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어떻게든 이를 우회하려는 동기가 커진다. 수많은 소녀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리기 위해, 여성이라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치명적이고 위험한 전략인 식단 제한을 선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21년 콜로라도에서 오브리 아먼토가 평균 연령 17세의 여성 달리기 선수들을 면밀히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4분의 3이 섭식행동장애 또는 섭식장애를 앓고 있었다. 거의 절반이 무월경(월경이 없는 상태) 또는 기타 월경 이상을 겪었고, 42퍼센트는 골밀도가 낮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달리기나 역도처럼 충격이 가해지는 스포츠는 일반적으로 골밀도를 높이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지만, 여성 스포츠의 경쟁적인 환경은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해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운동선수를 노년기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된 지금, 데이터는 전직 운동선수들이 또래들에 비해 골다공증 및 골절 발생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월경 건강은 이 모든 위험에 대한 첫 번째 방어선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가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까지 정말 피와 땀, 눈물을 흘리며 한 노력도 담겨 있고, 약간의 사생활(남편과의 연애)이나 후에 단백질 바를 만든 일이나(놀랍게도 국내에도 들어와 있는 ‘피키 바(picky bars)’가 저자가 만든 브랜드이다), 처음엔 나이키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활동했으나 후엔 여성주의적인 브랜드와 협업한 경험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여성과 스포츠에 관한 책이다. 스포츠에 관한 열정과 여성 선수들을 향한 응원이 엿보인다.

나는 이 책이 이북으로 나오자마자 리디에서 사서 읽었는데 밀리의 서재에도 들어와 있더라. 아앗… 그래도 출판 산업에 일조했다 생각해서 별 타격은 없었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해서 보시는 분이라면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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