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쓰지 유미,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
프랑스의 문학상 ‘공쿠르상’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최고의 문학 작품을 선정해 상을 주는 ‘고등학생 공쿠르상’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고등학생 공쿠르상’과, 그와 비슷하게 어린이들이 좋은 문학 작품에 투표하는 ‘크로노스 상’과 ‘앵코륍티블 상’에 대해 일본인 저자가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공쿠르상은 일본으로 치면 아쿠타가와상에 해당하는 문학상이다. 심사위원은 10명으로 구성된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들로 모두 종신회원이다. 한편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최종 심사위원은 프랑스 각 지방에서 대표로 선출된 고등학생 13명으로 해마다 바뀐다. 공쿠르상과 마찬가지로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심사는 밀실에서 진행되며 방청은 허용되지 않는다. 고등학생 심사위원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는 동안 취재진은 문밖에서 수상작이 발표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이란 매년 프랑스에서 고등학생 2천여 명이 심사위원이 되어 선출하는 문학상이다. 대상 작품은 공쿠르상 1차 전형에서 후보에 오른 소설 10여 편이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이 제정된 건 1988년. 원래 렌느의 한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학생들이 현대문학과 친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개인적으로 만든 상이었다. 지방 도시에서 시작된 이 작은 독서 장려 활동은 미디어를 떠들썩하게 하는 전국 규모 문학 이벤트로 성장했고, 2007년에 20주년을 맞이했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을 심사하는 고등학생들은 엘리트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요즘 애’들인 고등학생들이다.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가 고등학생 공쿠르상에 참가를 신청해 선정되면(가급적으로 프랑스 전역에 분산되도록 하여 57~58개교 선정), 그 반은 두 달 안에 13권의 후보 도서들을 읽고 각 도서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대체로 방학이 끝난 9월 초부터 학생들은 읽기를 시작한다. 프낙 서점(프랑스의 ‘교보문고’라 할 수 있는 대형 서점 체인)에서 학생들이 읽을 책을 공급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문학상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부러웠지만, 프랑스 내에서 국어 교사와 독서를 지도하는 교사의 역할이 상당히 큰 것 같아 그 점도 좋아 보였다. 하긴, 프랑스는 ‘수능’도 ‘바칼로레아’라는 철학적인 에세이 시험으로 치르는 나라니까.
두 달에 걸친 독서와 토론의 막이 열린다.
강행군을 요구받는 건 학생뿐이 아니다. 교사 역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후보작은 모두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어 교사도 읽어 보지 못한 책이 대부분이다. 매뉴얼도 지도 요령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과 교사는 같은 출발선에 선다.
공쿠르 심사 학급은 사서교사의 협조 아래 국어교사가 지도하는 것이 일반적 원칙이지만, 학교에 따라서는 다른 과목 교사들이 조력자를 자청하기 때문에 평상시 수업에서는 보기 힘든 협력 체제가 이루어진다. 나중에 살펴볼 가스통 바슐라르 직업고등학교에서는 국어교사와 수학교사가 한 팀을 이루어 공쿠르 수업을 진행했다. 앞에서 살펴본 에바리스트 갈루아 고등학교에서는 사서교사 두 명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들이 국어교사를 설득해 공쿠르 참가를 성사시켰다.
이처럼 공쿠르 참가 방식은 고등학교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기본 규칙은 교사가 학생의 발언을 이끌어 내고 토의를 활성화시키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난해한 부분은 해설해야 하지만 작품에 관한 교사 자신의 평가나 의견을 밝히는 건 일절 금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은, 공쿠르 수업은 희망자만 참여하는 보충 수업이나 클럽 활동 같은 개념이 아니라 학급 전원이 참가하는 정규 국어 수업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고등학생 공쿠르상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내가 고등학생 때 고등학생 공쿠르상에 참여했다면 평생 큰 자부심을 가지고 평생 자랑하며 살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학생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문학 작품을 선정하는 상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위해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시키는 현재 사회 분위기에서는 ‘그런 거(=독서) 하면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니 그런 상에 참여할 수 없다’라는 반대도 많겠지… 상대적으로 대입 공부에 대한 부담과 압박이 적은 중학생 시기에 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 번 책 읽기 붐이 일면 참 좋겠다.
프랑스의 고등학생 공쿠르상에 대해 배우며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듯 설레는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책을 사랑하는 분들과 어떻게 하면 독서를 좀 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선생님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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