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리처드 홀먼, <크리에이티브 웨이>
내가 블로그 글을 쓸 때 늘 상기하는 말이 있다. “완성된 것이 완벽한 것보다 낫다(Done is better than perfect).”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글이 잘 나오지도 않고, 어떻게든 초고를 써 놓고서도 고치고 또 고치느라 그 글을 세상으로 보내기를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세 번, 내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글이 내 마음에 흡족할 만큼 잘 쓰였는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때가 되면 글을 올린다. 이게 내가 ‘좋은 글’, ‘잘 쓴 글’, ‘완벽함’의 악마와 싸우는 방법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글, 그림, 음악 등 창조적인 일을 (직업적으로나 또는 취미로나) 하는 이들이 흔히 접하는 ‘악마’들을 무찌르는 방법을 알려 준다. 미루기, 백지, 의심, 관습, 제약, 비판, 도둑질, 우연, 실패, 그리고 실망, 이 열 가지가 그 악마들의 이름이다. 재능이 있는 이라면 이들을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존 스타인벡과 미켈란젤로의 예를 든다.
위대한 20세기 소설 중 하나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1939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미국 대공황 시절의 상실과 상처, 시대의 절망에 맞선 사람들의 끈기를 다룬 이 작품은 스타인벡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에 스타인벡은 심각한 자기 의심에 빠져 있었고 이를 일기장에 몰래 털어놨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만하고 있다. 누구도 내 부족한 능력을 알아채지 못했으면 좋겠다.” 잠시 자신감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가 힘겹게 써 내려간 모든 페이지는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의혹에 맞선, 영혼을 메마르게 만드는 싸움의 결과물이었다.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회랑에 그려진 작품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천지창조〉는 시대를 통틀어 매우 위대한 예술 유산 중 하나다. 하지만 작품을 창조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의 가치를 의심했다. 그는 이 작품을 그렸던 시기에 친구인 조반니 다 피스토이아에게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시를 써서 보냈다. “내 그림은 죽었다…. 나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아. 나는 화가가 아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면, 우리로서는 이 악마들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들과 맞서 싸울 법을 배워야 한다. 저자는 여러 예술가의 일화와 실험 결과를 인용하며 그 방법을 일러 준다. 예를 들어, 완수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A라고 하고, 새로운 일을 B라고 한다면, A 프로젝트에 따른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B 프로젝트를 매일 조금씩 같이 진행하는 방법은 백지의 악마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코리타 켄트라는 예술가의 말대로(“무언가를 창조하는 동시에 평가하려고 하지 마라.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과정이다.”) 창조를 할 때는 비평과 비난은 잠시 미루어두면 의심의 악마를 무찌를 수 있다. 관습의 악마를 피하려면 루틴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해 보라. 여행을 갈 수도 있고, 관습에 반대되는 일을 시도할 수도 있다.
알 머피가 그린 삽화도 귀엽고, 책 자체도 224쪽으로 길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에 뚝딱 끝낼 수도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엇이 됐든 창조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용기가 필요하다면 딱 이거 한 권만 읽고 마음을 다잡은 후 시작하시라. 세상은 당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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