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Jodi McAlister, <Here for the Right Reasons>
다수의 이성 중 단 한 명을 선택해 연애에 ‘골인’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배첼러(렛)(The Bachelor(ette))> 시리즈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형식의 리얼리티 TV가 인기가 있다 보니 로맨스 소설도 이 소재를 자주 택하곤 한다.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이전에 리뷰를 쓴 적 있는 Kate Stayman-London의 <One to Watch>가 그렇다. 이 소설의 배경은 <Marry Me Juliet>이라는 가상의 리얼리티 TV 쇼인데, 저자는 2020년 팬데믹 시절 호주 멜버른에서 락다운이 시행되던 일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특이한 설정 중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 특이한 설정이 무엇이냐 하면 코로나 때문에 탈락자들이 리얼리티 TV 쇼 촬영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줄거리를 소개하며 이 점을 설명하겠다. 우리의 주인공 씨씨(세실리아의 애칭)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Marry Me Juliet> 피날레를 보다가 장난으로 <Marry Me Juliet> 다음 시즌에 출연 신청서를 넣는다. 몇 달이 지나, 코로나로 락다운이 시작될 즈음 씨씨는 <Marry Me Juliet>의 제작자들에게 출연을 제안 받는다. 사실 엄청 간절하게 출연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코로나 때문에 씨씨는 일하던 곳에서 잘렸고 따라서 <Marry Me Juliet>에 출연료만이 먹고살 유일한 방법이라는 계산이 나와 이를 수락한다. 진정한 사랑을 찾겠다는 ‘옳은 이유로 출연한(’Here for the Right Reasons’)’ 게 아니라 오직 먹고살기 위해 출연한 씨씨. 여기에 이 로맨스 소설의 특이점 하나가 더 있다.이번 시즌의 ‘로미오(<Marry Me Juliet>의 남자 주인공 격인 남자 출연자를 가리키는 말)’는 스리 랑카계 호주인인 딜런 자야싱허 멜러(Dylan Jayasinghe Mellor)였다! 게다가 딜런은 올림픽에서 요트 종목으로 금메달까지 딴 핫한 남자였다. 씨씨는 딜런에게 잘 보여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Marry Me Juliet>에서 살아남아 출연료를 길게 받아먹겠다고 다짐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첫날 밤에 하위 3인 중 한 명으로 탈락한다. 먹고살 길이 사라진 씨씨는 충격으로 쓰러지고, 딜런은 잽싸게 그녀를 안아 구한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씨씨에게 딜런은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하는데…
이 소설의 특이점은 단연코 여주인공이 첫 에피소드에서 빛의 속도로 탈락한 이후, ‘로미오’의 친구가 된다는 점이다. 어차피 락다운 때문에 탈락자들도 촬영장에서 나갈 수 없는데(여성 출연자들 숙소는 ‘수녀원(Convent)’이라고 불린다) 씨씨가 딜런의 제안을 수락해 로미오의 플라토닉한 ‘친구’로서 TV에 출연한다면 출연료를 받을 수 있기에 씨씨에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카메라만 보면 얼어붙는다는 점은 극복해야겠지만). 게다가 딜런은 남성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Ties Out for the Boys’라는 자선 재단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 리얼리티 TV 쇼에 출연했기에, 로미오가 (자신이 데이트하는 여성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TV에서 보여 주는 것은 굳이 성적인 끌림이 없어도 남녀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아니, 리얼리티 TV 쇼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남주가 있다니!?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 게다가 딜런은 공황 발작도 있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유색 인종 로미오이자 그에 따른 부담감을 충분히 느끼고 있고, 남성의 정신 건강에 대한 자선 단체도 운영하며 때로 공황 발작까지 겪는, 여태 로맨스물에서 보기 드문 남주이다. 이 점이 아주 신선하고 좋았다.
저자로 말할 것 같으면, Book Thingo라는 웹사이트에서 <배첼러(렛)> 시리즈에 대해 글을 정기적으로 썼고, 그런 리얼리티 TV 쇼나 로맨스물에 대해 논문까지 쓰시는 (작가님의 리서치게이트 페이지를 보시라) 분이다. 이 작품 이전에도 로맨스 소설을 여럿 썼는데, 이 <Marry Me Juliet>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물 시리즈도 <Can I Steal You For A Second?>와 <Not Here To Make Friends>로 이어진다(<Here for the Right Reasons> 맨 끝에 <Can I Steal You For A Second?> 일부가 맛보기로 제공된다). 아마 등장인물들 중 어맨다랑 딜런 G.(남주 딜런 말고 동명이인인 여자 딜런) 얘기인 듯. 백인 일색인 로맨스물 말고, 다정다감하고 인간미가 있는 남주가 등장하는 로맨스물을 찾는다면 이 소설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감상/책 추천] 박상현, <친애하는 슐츠 씨> (0) | 2024.08.09 |
---|---|
[책 감상/책 추천] 구구, 서해인, <작업자의 사전> (2) | 2024.08.08 |
[책 감상/책 추천] 니타 프로스, <메이드> (0) | 2024.08.02 |
[월말 결산] 2024년 7월에 읽은 책 (0) | 2024.07.31 |
[책 감상/책 추천] 남유하,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1) | 2024.07.24 |
[책 감상/책 추천] 헬렌 헤스터, 닉 스르니첵, <애프터 워크> (3) | 2024.07.22 |
[책 감상/책 추천] 마크 코켈버그,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4) | 2024.07.19 |
[책 감상/책 추천] Amy Taylor, <Search History> (0) | 2024.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