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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로라 베이츠, <인셀 테러>

by Jaime Chung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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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로라 베이츠, <인셀 테러>

 

 

비자발적 독신, ‘인셀’들을 낱낱이 분석하고 그들에 대항할 방법을 탐구한 책. 저자 로라 베이츠는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 작가로 여성 혐오자들에게 성폭력 및 살해 위협을 받았는데도 이에 지지 않고 이 책을 써냈다.

일단 ‘인셀’로 대표되는 여성 혐오자들에도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 게 참 놀랍고 한심했다. 우선 ‘왜 나랑 안 자 줘 빼액’ 하는 인셀들이 있고, 여성 혐오적인 발언과 행동(사이버 불링 등)로 신자자의 영력 을키우는 인플루언서, 여자들과 공존하기를 아예 거부하는 믹타우(MGTOW, Men Going Their Own Way), 여성을 오직 성관계의 목표이자 대상으로만 보는 소위 ‘픽업 아티스트’ 등등. 저자는 이들을 지칭하는 넓은 용어로 ‘매노스피어(manosphere)’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저자의 말을 빌자면 “각자 견고한 신념체계, 언어, 세뇌의 형태들이 있는 서로 다르지만 연관된 여러 집단의 스펙트럼”이다. 한마디로 그냥 여성 혐오자들의 세계라고 보면 된다.

읽으면서 놀랐던 건, 해외나 국내나 참 매노스피어들 하는 짓이 참 똑같다는 거다. 예컨대 아래 인용문을 보면 ‘국가가 남자들에게 여성을 한 명씩 배급해 줘야 한다’고 헛소리를 하던 정신 나간 이가 떠오를 것이다.

또 다른 인셀 집단(한 포럼의 내부 설문조사를 신뢰한다고 했을 때 이 커뮤니티의 약 90%를 차지하는, 현재로서는 가장 규모가 큰 집단)은 자신들을 ‘블랙필러blackpillers’ 또는 ‘블랙필blackpills’이라고 일컫는다. 이 집단의 관점은 더 패배주의적인데, 이들은 사회적, 유전적 로또가 너무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고 자신들의 선천적 결함 때문에 자신은 완전한 실패자로 독신의 삶을 살 수밖에 없으며 자기 개선 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들은 비인셀 사회(이들이 ‘일반인normies’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부당함, 가장 매력적인 남성들(‘채드’)의 이기심, 아름다운 여성들(‘스테이시’)의 천박함, 매력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성적인 파트너를 유혹할 수 있는 여성들(‘베키’)의 난잡함을 사납게 헐뜯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남성들은 자주 자살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자신의 게시글에는 독자들에게 자살을 부추길 만한 소재를 태그한다. 이들이 자살을 특수한 약어로 표현하고, 상대에게 자살하라고 선동하는 건 흔한 일이다. 이런 남자들은 대부분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커플들을 두고도 ‘퐁퐁남’이니, 설거지를 당했니 어쩌니 하는 질투 어린 비난을 일삼는 자들은 또 어떤가. 이런 소리를 하는 놈들은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안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자들은 끊임없이 섹스에 굶주려 있지만 가장 매력적인 남자와의 잠자리만을 선택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셀들은 소위 80 대 20 이론에 집착하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상위 20%에 속하는 가장 매력적인 남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섹스의 80%를 즐긴다. 이들은 ‘성시장’이 잔인하게 계급화되어 있고, 여성들에게 완전히 장악당했다고 한탄한다. 이들은 여자들이 섹스 파트너를 선택할 때 성격이나 다른 어떤 속성보다 외모를 훨씬 중시하고, 못생기고 키가 작고 대머리고 비백인이고 여드름이 많고 그 외 눈에 띄는 결함이 있는, 날 때부터 불행한 남자들은 부당한 성적 불만이라는 저주 속에 평생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젊은 여성들 역시 극도로 매력적인 남성들과 어마어마하게 많은 섹스를 하다가, 나중에는 진짜 사랑하지는 않지만, 금전적 지원 수단으로 가차 없이 착취할 수 있는 볼품없는 남자에게 정착한다는 비난을 산다. ‘베타 호구beta cucks’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런 남자들은 이미 처녀성을 잃은, 그러니까 다 써버려서 이미 성적으로 가치가 없는 여자에게 모든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이유로 동정의 대상이 된다. 아무리 이 여자가 한 번씩 남편에게 잠자리를 허락하는 은혜를 베풀어주더라도 말이다. 인셀들은 자신들이 상상하는 이런 여성들의 성적 전략을 ‘알파는 씹 상대, 베타는 돈주머니alpha fucks, beta bucks’라고 부른다.

 

저자는 여성 혐오로 일어나는 큰 규모의 폭력들을 ‘테러리즘’으로 규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에 대한 대응 기제를 찾으려 하지 않는 언론과 정부의 태도를 지적한다. 예를 들어 여성 혐오를 기반으로 6명을 살해하고 14명에게 살해를 입힌, 엘리엇 로저의 2014년 아일라비스타 살해 사건을 보자. 캐나다에서는 ‘테러리즘 활동’을 이렇게 정의한다. 첫째, 피고에게 ‘정치적﹒종교적﹒이데올로기적 목적﹒목표﹒이유’가 있어야 한다. 둘째, ‘안전의 측면에서 대중 또는 일부 대중’을 위협하거나, 정부나 어떤 조직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강제할 의도가 있어야 한다. 이 범인이 한 짓이 이 두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성 혐오로 인한, 대중 또는 일부 대중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는 왜 테러리즘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특정 종교인 또는 특정 인종이 또는 특정 종교인 또는 특정 인종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른다면, 이는 분명히 테러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언론에 오르내릴 것이다. 하지만 엘리엇 로저 같은 매노스피어 일원들이 여성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을 때 언론은 그들이 얼마나 ‘고독한 늑대’였는지(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로 빨아주느라 바빴는데 무슨), 평소에는 얼마나 온순하고 착한 아이였는지(우웩) 범인의 죄를 축소하고 순화해 주려고 애를 썼다. 이게 말이 되냐고!

테러리즘이라는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이 가진 장점과 한계에 대해서는 복잡하고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위 정의들을 따랐을 때 이 책에서 설명한 수많은 범인과 이들의 행위는 테러리스트와 테러리즘으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인셀이 여성혐오라는 동기로 공격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사건에서 당국이 테러리즘 기소를 꺼내든 사례는 단 한 번, 애슐리 노엘 아르자가의 살인사건뿐이었다. 여성혐오 범죄를 계속 테러리즘으로 기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 세 가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첫째, 우리 사회는 여성혐오가 동기로 작용하는 폭력적인 극단주의를 아직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둘째,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둔감하다. 셋째, 남성우월주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규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남성우월주의적인 행동이 테러리즘의 범주에 들어갈 정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 · 종교적 ·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폭력 행위를 지원 또는 자행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폭력적 극단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독립적인 범주라는 것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 용어가 위에서 언급한 숱한 사건들을 정확하게 포괄함에도 역시 여성혐오 극단주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남자들에게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인셀의 대량살상 사건에 대한 보도 행태가 다른 유사 범죄와 크게 다른 것은 주류 미디어의 두 가지 맹점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무슬림이나 비백인 살인범은 호들갑스럽게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데 반해 백인 살인범은 어떻게든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미디어의 태도고,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특히) 가정폭력을 포함해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용서하고, 인간미를 강조하려는 미디어의 태도다.

이것의 효과는 가정폭력 가해자의 행위에 공감할 만한 동기가 있다는 보도를 통해 달성될 때가 많다. 이런 유의 보도는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맞을 짓을 했다고 암시함으로써 은연중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인셀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단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공격법(SNS상의 악플이나 DM 등으로 협박하기, 사생활 정보 캐기 등)을 차단하기 위해 아예 X(구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대형 소셜 미디어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피해자를 양산해 낼 수 있는 알고리즘은 수정하고, 유해한 메시지를 뿌리는 계정은 아예 플랫폼에서 추방하는 등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표현대로,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이 나설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밤길을 다니기 무섭다고 말하면 어떤 남자들은 ‘일부 남자들이 성추행 및 성폭행을 했다고 나까지 예비 성범죄자로 보는 것이냐’라며 분노한다. 하지만 이때 분노의 대상이 잘못됐다. 같은 남자들을 욕 먹이는 그런 여성 혐오자들에게 분노하며, 그들을 올바른 길로 (특히 이제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더더욱) 이끌고 도와줘야겠다고 마음 먹는 게 정상적인 남자의 반응이다. 후자가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인 것이다.

이런 노력은 남성 중심의 개입을 수행하는 국제 자선기구부터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작은 단체들, 그리고 자신의 플랫폼을 활용해서 모든 형태의 성 불평등과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진행된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널리 알려진 단체로는 1997년 브라질에서 설립되어 성인 남성과 소년들을 대상으로 젠더 정의를 증진하고 폭력예방 활동을 벌이는 선도적인 국제 NGO 프로문도, 그리고 전 세계에서 여성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남성들의 최대 네트워크인 화이트리본캠페인이 있다. 여성혐오 극단주의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 프로문도의 창립자이자 CEO인 게리 바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청중이 자기 발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남자들이 어떻게 여성혐오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봅시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 전단지, 이메일 광고를 뿌려보세요. 그러면 두세 명 올까 말까 할 겁니다!” 대신 그는 ‘소년과 성인 남성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할 일’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학교 행사의 일부로 만들고, 그들이 속한 스포츠 모임의 일부로 만들고, 그걸 고용주가 제공하는 직업 안전과정의 일부로 만듭니다. 남자들은 ‘이봐, 내가 여성혐오와 성평등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볼게!’ 하면서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아요. 그게 진짜 필요한 남자들조차 방 안으로 그냥 걸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이 있는 곳에 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가장 쉽고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이런 문제를, 대응책이 아니라 예방책으로 교육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여성을 존중하고 같이 공존해야 할 존재라고 가르친다면 미래는 얼마나 밝을 것인가.

 

아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성으로 자란다는 것은 ‘유독한 남성성’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그것에 취약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 혐오, 유독한 남성성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해를 주고, 그래서 그것에 저항하고 그걸 퇴치하는 게 오히려 남성에게도 자유를 주고 이득이 되는 건데! 두려운 걸 일단 두렵다고 말할 장소 또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유독한 남성성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허스트는 매노스피어가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허위 강간 고발 같은 주제를 거론하는 소년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겁이 나서 이야기하는 거죠. 그리고 남성성에서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하고 성관계를 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내가 자기를 강간했다고 말할까 봐 정말 겁나’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여자들은 강간당했다고 거짓말을 해’라고 말할 가능성이 더 크죠.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건 같은 말입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수치로 여겨지므로 소년들은 어떻게든 감정을 숨기려 한다. 고립감은 커뮤니티에 대한 갈망을 낳는다. 그리고 수치심은 명성과 인정, 목적의식을 얻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낳는다. 부분적으로는 소년이 폭력적인 범죄의 피해자가 될 위험이 가장 높다는 사실, 그것에서 기인한 취약하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집단에 충성함으로써 비롯되는 안정감에 대한 갈망으로 귀결된다.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며 분노한 젊은 남성들을 끌어모으고 거짓 약속과 비뚤어진 논리, 그리고 증오로 이들의 빈 구멍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된 매노스피어 커뮤니티들은 이 모든 갈망을 즐겁게 충족시켜준다.

 

저자는 ‘인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심연을 보았고, 매노스피어 일원들로부터 협박도 받았다. 그런 일화를 읽다 보니 속이 안 좋아져서 이 책을 잠시 내려놓고 중간중간 쉬어야 했다. 조금 읽다가 가볍고 완전히 다른 주제의 책들을 읽으며 머리를 식히고 비웠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읽기 쉽지 않은 책이지만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인 것도 사실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 책을 많이 읽어서 우리가 매노스피어가 무엇인지를 알고 이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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