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Rufi Thorpe, <Margo's Got Money Troubles>
이 책을 읽게 된 건, 무려 닉 혼비가 <뉴욕타임스>에 이 책을 추천하는 책 리뷰를 썼기 때문이다. 루피 소프는 국내에 소개된 작가는 아닌데 이미 이 소설 <Margo’s Got Money Troubles>가 네 번째 책인 프로 작가인 듯하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주인공 마고는 자기를 가르치던 교수 마크와의 사이에서 임신한다. 마크는 유부남이었고, 마고가 아이를 낳지 않기를 바랐지만 마고는 일종의 반항심으로 아이를 지키기로 한다. 마고는 대학을 중퇴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의 이름은 보디(Bodhi)라고 지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키우면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기는 쉽지 않았고, 마고는 결국 해고되고 만다. 마크의 어머니는 마고가 아이를 낳았음을 알고 돈을 주되, 아이의 아빠가 마크임을 밝히면 안 된다는 계약서에 사인하게 한다. 마고의 친부는 징크스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지금은 은퇴한 레슬러인데, 돈이 쪼들리는 마고와 같은 집에서 룸메이트로 살면서 보디를 돌봐주기로 한다. 마고의 친구인 수지도 월세를 나눠 내는 룸메이트로 같은 집에 살면서 마고를 도와준다. 그래도 돈을 벌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마고. 개인이 직접 성인용 콘텐츠를 업로드해 수익을 내는 플랫폼 ‘온리팬스’를 시작하기로 하는데…
대충 간략하게 정리해 봤는데 정말 어질어질하다. 대학생이 교수와 불륜을 해서 임신을 했는데 애를 낳았다? 애 아빠가 누군지 밝히면 안 되는 계약서에 사인? 여주인공의 아빠는 은퇴한 레슬러? 애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온리팬스를 한다고? 이렇게 자극적으로 보이는 설정들은 사실 저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인, ‘엄마가 된다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이다. 마고가 온리팬스를 시작한 건, 자기 몸을 보여 주고 싶다는 노출증적인 또는 성적인 욕망 때문이 아니라 그게 아이를 가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느라 커진 가슴에서 모유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그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맞지만). 보디를 키우면서 마고는 보디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알게 된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마크가 보디의 양육권을 가지겠다는 소송을 걸자 보디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마고가 보디에게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 준다. 게다가 마고가 온리팬스를 통해 만나게 된 남자 JB(놀랍게도 한국계 미국인이고, 한국 이름 ‘재범’의 약칭이라고 한다)와의 로맨스도 격정적인 섹스보다는 달달함과 순수하게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마고가 1인칭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3인칭으로 서술 방식을 자주 바꾼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마고도 일찌감치 초반에 이렇게 말한다.
3인칭으로 쓰는 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때 존재했던 마고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게, 어떻게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일을 했는지를 설명하려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It’s true that writing in third person helps me. It is so much easier to have sympathy for the Margo who existed back then rather than try to explain how and why I did all the things that I did.)
따라서 이 소설은 마고가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쓴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애초에 책이 시작할 때 독자를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부르면서 “당신은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할 참이고, 솔직히 조금 긴장돼 있다”라며 독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려 한다. 마고가 마크와의 강의 시간에 나누었던,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담론이 종종 등장하는데, 마고가 JB와 나누는 메시지도 비슷한 주제를 건드릴 때가 있다. 바로 다음 인용문처럼.
늦은 월요일 밤 JB에게 메시지가 왔다. ’생각해 봤는데, 책과 사랑에 빠진다면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건 등장인물일까 아니면 작가일까?’ JB는 썼다.
배고픈 유령: 글쎄, 둘 다?
JB: 둘 중 하나만이 진짜인데.
그렇지, 나는 인정했다.
JB: 그리고 가짜인 쪽이야말로 자신이 실제로 알게 되는 유일한 쪽이잖아. 그렇지만 그 아래에 있는, 자신이 사는 가짜 세상의 표면 밑에 있는 작가를 조금 느낄 수 있지. 그들의 상상은 자신이 수영하는 물이자, 자신이 숨 쉬는 공기인 거야.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탁자와 의자와 사람을 만들어 냈어. (Late Monday night I got a message from JB. I’ve been thinking, JB wrote. When you fall in love with a book, is it the character or the author you’re falling in love with?
HungryGhost: I mean, I guess both?
JB: And only one of them is real.
True, I admitted. JB: And the fake one is the only one you get to actually know. But you can kind of feel the author under there, beneath the surface of the fake world you’re inhabiting. Their imagination is the water you’re swimming in, the air you’re breathing. They’ve made every table and every chair and every person in the whole book.)
흥미롭고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JB는 마고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돈을 주고 부탁했는데, 마고는 적당히 거짓말로 대답했다는 극 중 맥락에서도 보면 더 이해가 된다. 결국 JB가 마고에게 빠져 버렸으니까.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게 거짓말이고 만들어낸 이야기인 걸 알아도 그 등장인물들과 그 세계에 푹 빠질 수 있지…
이 소설은 엘르 패닝이 주연 마고 역을 맡아 애플 TV용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출처). 니콜 키드먼 역시 참여할 거라고. 결과물이 어떨지는 나와 봐야 알겠으나, TV 드라마가 공개되면 이 책도 덩달아 인기를 더욱 얻을 테니 작가가 부럽긴 하다… 어쨌거나 자극적인 소재로 가득 찬 거 같아도 의외로 순한 맛에 진지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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