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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게일 허니먼,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by Jaime Chung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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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게일 허니먼,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의 놀랍도록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 서른 살의 엘리너는 같은 회사에 9년째 다니고 있지만, 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괴짜’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내고 수요일에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며 살던 어느 날, 그녀는 쓰러진 노인을 발견하고 같은 회사의 IT 부서 직원인 레이먼드와 함께 구급차를 불러 그를 병원으로 이송한다. 쓰러진 노인의 이름은 새미. 레이먼드는 그녀에게 새미의 병문안을 가자고 제안한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낯선 엘리너지만 그게 예의인 것 같아 이를 수락한 엘리너. 그녀는 이를 계기로 새미와 레이먼드와 친해지며 한 개인으로서 성장한다.

이 소설을 재밌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단연코 엘리너라는 주인공이다. 줄거리에는 간략하게 적었지만 엘리너는 사회성이랄지 사교성이 발달하지 못했다. 이는 어릴 적에 모종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흔적으로 지금 그녀의 얼굴 한쪽에는 화재로 인한 흉터가 남아 있다. 자기야말로 사무실에서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괴짜로 여겨지면서도 자기가 이상한 말을 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 놓고는 상대방이 사회성이 없다거나 화술이 좋지 못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게 독자에겐 웃음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어 다음의 두 장면을 보시라.

첫째, 엘리너가 한 가수에게 반해서 그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려고 대담하게 왁싱을 하러 왁싱 숍에 갔다. 그리고 왁서가 어떤 스타일로 해 드릴까 물어보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할리우드’를 골랐는데 아시다시피 할리우드는… 말 그대로 다 미는 것이다. 이 결과물을 보고 엘리너가 하는 말.

내 주먹이 불끈 쥐어졌고, 믿기지가 않아 머리를 가로저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이제부터 평범한 여자로 살기 위해서였는데, 그렇게 되기는커녕 케일라가 나를 어린아이로 보이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케일라,” 내가 말했다. 지금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관심 있는 남자는 평범한 성인 남자예요. 평범한 성인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싶어할 거라고요. 그가 소아성애자라는 걸 암시하려는 건가요? 어떻게 감히!”

케일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런 일이라면 나는 겪을 만큼 겪었다.

 

둘째, 컴퓨터를 사려고 전자 기기 매장에 갔는데, 직원이 용도에 따라 적당한 컴퓨터를 추천해 주려고 ‘무엇 때문에 컴퓨터를 사시냐’ 물어보니 엘리너가 대꾸하는 상황이다.

“어떤 용도로 쓰실 건가요?” 그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전혀 아닌데요.” 나는 그 말이 몹시 거슬려 그렇게 말했다.

그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나는 미안해졌다. 그는 그저 어릴 뿐이다. 나는 신체 접촉을 싫어하지만 그의 팔에 손을 갖다댔다.

“이번 주말에 기필코 인터넷을 써야 해서 조바심이 좀 났나봐요.” 내가 설명했다. 그의 불안한 표정은 걷히지 않고 그대로였다.

“리엄,” 내가 천천히 말했다. “나는 그저 인터넷을 기반으로 집에서 편안하게 조사를 하려고 컴퓨터 장비를 구입하려는 거예요. 컴퓨터로 전자 메시지를 시간 맞춰 보내는 것도 할 수 있을 테고요. 그게 다예요. 적당한 제품의 재고가 있나요?”

청년이 천장을 응시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인터넷을 무선으로 쓸 수 있는 노트북이면 된다는 거죠?” 그가 말했다. 맙소사, 왜 나한테 묻는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직불카드를 건넸다.

 

진짜 꾸준히 눈치 없는 엘리너 ㅋㅋㅋㅋㅋ 그런 엘리너가 레이먼드를 만나며 처음으로 ‘친구’라는 걸 사귀게 되어 변화해 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훈훈하고 감동적이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보여 드리자면 예컨대 이런 거랄까(참고로 기번스 부인은 레이먼드의 어머니이다).

“그렇게 캐물으면 어떡해요, 엄마.” 레이먼드가 마른행주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게슈타포 같아요!”

나는 기번스 부인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나빴다. 사과를 한 것이다.

“오, 엘리너. 미안해요. 이를 어쩌나. 당황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러니 부디, 아가씨, 울지 마요. 정말 미안해요.”

나는 울고 있었다. 흐느껴 울었다! 오랫동안 이렇게 펑펑 운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울었는지 떠올려보았다. 디클랜과 헤어진 뒤였다. 그때도 감정이 북받쳐서 운 건 아니었다. 내가 마침내 그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가 내 팔 한쪽과 갈빗대 두 개를 부러뜨려 아파서 운 것이었다. 직장 동료 어머니의 집 부엌에서 우는 것, 이건 안 된다. 엄마가 뭐라고 하겠는가? 나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레이먼드가 슬며시 내 옆자리로 옮겨 앉아 내 어깨를 한쪽 팔로 감쌌다. 그가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제발, 엘리너, 울지 마요.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쏘아붙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정말로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제발, 엘리너……”

이상한 것─내가 결코 예측하지 못했던 무언가─은 누군가가 팔로 내 어깨를 감싸고 꼭 안아줄 때 실제로 기분이 더 좋아진다는 점이었다. 왜? 인간과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는 이 사실이 뭔가 포유류다운 것이어서? 레이먼드는 따뜻하고 단단했다. 나는 그에게서 데오도런트 냄새와 그가 세탁할 때 사용하는 세제 냄새를 맡았다. 두 냄새 모두에 찌든 담배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레이먼드 냄새. 나는 그에게 몸을 더 기댔다.

 

혹시나 기대하실 분이 계실까 싶어 분명히 해 두자면, 레이먼드나 다른 남자 등장인물과의 로맨스는 없다. 어차피 이 소설의 핵심은 엘리너가 성장해 나가는 것이니까. 레이먼드라는 훌륭한 친구를 사귀고 우정, 인간과의 접촉에 익숙해지면서 위로받고 성장하는 게 감동이라고요! 연애가 뭣이 중한데!!

이 멋진 책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다는 2022년 1월자 뉴스가 있었는데(출처) 아직까지 결과물이 안 나와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혹시 엎어진 건 아니겠지… 개인적으로는 어째서인지 레이먼드를 크리스 오다우드(이 배우) 느낌의 인물이라고 상상하며 읽었다. 크리스 오다우드가 맡았던, <The IT Crowd>의 ‘로이’ 캐릭터가 떠올라서 그런 듯. 어쨌거나 이 영화가 개봉한다면 나는 기꺼이 달려가서 이 영화를 보겠다.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으니까. 단연코 올해에 읽은 소설들 중에서 탑 10에 들 만하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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