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할란 엘리슨,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
SF/판타지 소설의 대부이자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할란 엘리슨의 작품집 중 두 번째 편. SF 전문 출판사인 아작에서 <제프티는 다섯 살>,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이렇게 세 권으로 나왔다. 각각 할란 엘리슨의 단편소설을 일고여덟 편씩 담고 있다. 나는 두 번째 권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가 제일 궁금했으므로 이 두 번째 권부터 읽었다. 어차피 작가가 써서 발표한 시간 순서대로 담긴 것도 아니어서 무엇부터 읽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아주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정보 이외에는 아는 게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해 이게 무슨 내용인지를 파악해 나가면서 즐기는 스타일인데, 책 소개에서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읽어 보세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주 간략하게 각 단편소설의 내용을 요약해 보여 드리겠다.
-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 사람의 심상 속으로 들어가 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
-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인간을 증오하는 잔인한 슈퍼 컴퓨터에게 학대당하는 인간들 이야기
- <크로아토안>: 한 남자가 ‘크로아토안’이라는 지하 세계에 내려가게 되는 이야기
- <랑게르한스 섬 표류기>: 아주 조그맣게 줄어들어서 자기 자신의 몸에 들어가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
- <폭신한 원숭이 인형>: 천으로 된 아기 모습의 봉제 인형을 품에 꼭 안고 살기 위해 도망다니는 부랑자 여자의 이야기
- <꿈수면의 기능>: 어느 날 자신의 옆구리에 이빨이 달린 입이 생긴 것을 보게 된 남자가 상실의 슬픔을 마침내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
- <콜럼버스를 뭍에 데려다준 남자>: 하루는 선행, 하루는 악행을 번갈아가며 하는 한 존재의 이야기
모든 작품에 약간의 으스스함, 괴기스러움이 담겨 있어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어떤 독자들은 할란 엘리슨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그 점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나도 <랑게르한스 섬 표류기>에 나오는 이런저런 과학 기술적 묘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을 땐 그냥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로다’ 하고 넘어갔다. 전적으로 내 취향에 의하면 처음 세 작품이 제일 흥미로웠고, 마지막 작품도 괜찮았으나 나머지는 ‘아 예 그렇군요’ 하는 심정이었다. 할란 엘리슨이 대단한 작가라고 해서 일종의 교양을 기르는 느낌으로 읽었으니 나는 이쯤에서 만족하려 한다. SF 마니아라면 내가 권하지 않아도 이미 읽으셨을 테고, 그 취향이 아닌 독자들은 정말 교양 수준으로 읽어 보고 싶다 하는 분들에게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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