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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박정연, <나, 블루칼라 여자>

by Jaime Chung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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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박정연, <나, 블루칼라 여자>

 

 

화물 노동, 플랜트 용접, 먹매김, 형틀 목수 등 남초 직군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인터뷰해 모은 책.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건설 현장 같은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많은 곳에서도 각각 맡은 일이 다를진대, 솔직히 나는 그 많은 직종들을 다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블루칼라 (여성) 노동자를 만나며 많이 배웠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았던 건, “여자가 여자를 돕는다”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였다. 먹매김 전문가 김혜숙 씨는 “그래서 여자들이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자신의 노하우를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알려준다고 말했다. “안 그러면 욕 얻어먹으니까. 제가 설움을 당했으니까 그 설움을 똑같이 당하지 말라고 후배 여성들에게 알려주는 거예요.” 또한 건설 현장에서 자재를 정리하고 세대 청소 노동을 하는 권원영 씨는 후배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되어 주고자 작업반장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여성 관리직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게 건설현장이다. 이 상황에서 여성이 작업반장이라고 하니, 현장 곳곳에서는 ‘여자가 작업반장을 한다고?’라는 편견 섞인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는 “왜 여성은 안 된다는 소리를 제가 들어야 하나요. 제가 여기서 포기하면 현장에 조금씩 들어오는 2030세대들이 스스로 한계를 정하거나 성장할 마음이 없어질 것 같았습니다. 여성 관리직이라는 롤모델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내가 (작업반장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진짜 여자가 여자를 돕는다! 크으 너무 멋지다!

 

아무래도 블루칼라 여성의 수가 적다 보니 텃새며 차별이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라서 이 일을 못할 거라는 불편하고 부당한 참견을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에 레미콘를 운전하는 정정숙 씨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엄마라서 그런가. 아이들이 저를 응원해줬고 ‘이 일을 해야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자신 있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더 어려운 이들도 용기를 가지고 사는데, ‘여자로 사는 게 뭐 어때서 주눅 들겠노’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몸을 이용해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보니까 노동 조합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언급된다. 우리나라는 어째서인지 ‘노동자’라는 표현도 무섭다 또는 저급하다고 생각하고 블루칼라 직종에게만 사용하는 것 같은데 화이트칼라, 사무직도 노동자 맞고요… 노조는 당연한 노동자들의 권리인데 그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많은 독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노조 안에서는 저를 동지라고 생각해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일도 자세하게 가르쳐줬습니다. 한번은 일반팀의 먹 차장이 ‘손 잡고 가자’거나 ‘방 얻을까’ 뭐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 “저 노조팀인데, 함부로 말씀하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대응했습니다. 이런 성희롱이 발생한 상황을 노조에 공유하니 그 뒤로부터는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줬어요. 만약 제가 일반팀이었으면 당장 밥줄이 걸려 있는데, 그렇게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형틀 목수 신연옥 씨)

저는 사실 건설현장에 와서 노조를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노조에 막연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TV에서 보는 싸우는 사람들이 노조라고 생각했죠. 신문에서 민주노총은 ‘귀족노조’라고 하는데 괜찮은 건가 싶었습니다. 기능학교를 졸업하고 일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한 건데, 처음에는 건설노조도 이상한 곳이 아닌지 의심했죠. 그런데 안에 와서 보니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싸우는 집단이었어요. 저는 회사 다닐 때 힘들고 부당해도 참고 다니는 스타일이었는데, 건설노조로 일하면서 ‘내가 부당한 상황을 이야기하면 들어주는 곳이 있구나’ 하는 든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형틀 목수 신연옥 씨)

 

이 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터뷰 시작 전에 간단히 인터뷰이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서 (뒤 인터뷰 본문에 나올) 인터뷰이의 말을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먼저 인용한다는 점, 그래서 똑같은 말이 뒤 본문에 나오면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인터뷰 형태로 글이 진행되다 보니 ‘뫄뫄 씨는 ~라고 말했다’ 같은 문장이 같은 문단 또는 페이지 안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어 피로해지게 된다… 물론 ‘말했다’가 가장 정확하고 평이한 표현인데 이게 자꾸 등장하면 지루하고, 그걸 피하려면 ‘강조했다’라든지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해서 머리가 아프고… 독자도, 저자도 편하지 않은 부분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칼라, 특히 여성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종이책 기준 232쪽이라 길지도 않아서 부담도 없다.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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