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지숙, <소녀 A, 중도 하차합니다>
나는 청소년 소설도 좋아한다, 나도 한때는 청소년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고, 그걸 상기하는 것도 좋다. 내가 싫어하는 건,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어른들’이 읽는 ‘보통’ 소설들보다 일부러 더 쉽게 쓰거나, 아니면 전력을 다해 쓰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넥스트 아이돌 스타>라는 경연에서 최후의 5인에 든 후보들 중 한 명인 ‘소녀A’를 둘러싼 네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소녀A로 알려진 김아름은 초등학교 시절 구유진과 친구였으나, 서지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도 버려지고 구유진도 괴롭힘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래서 구유진의 물건을 훔쳐서 서지희에게 갖다 주는 식으로 괴롭힌다. 구유진은 이에 크게 상처받고 공황장애까지 얻게 된다. 결국 구유진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현재 혼자 독서실을 왔다 갔다 하며 공부하는데 어느 날 <넥스트 아이돌 스타>를 보다가 ‘소녀A’가 바로 김아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구유진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김아름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과거를 폭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게 되는데…
앞에서 나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보통’ 소설들보다 쉽거나 전력을 다해 쓰지 않는 게 싫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 쉽게, 편하게 가는 게 싫다는 거다. 이 소설이 딱 적절한 예이다. 타로 카드가 소재로 등장해 등장인물들이 타로점을 보며 자신의 고민을 말하거나, 앞으로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를 암시하거나, 타로 리더(’나나 언니’라고 불리는 인물)가 상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준다. 나는 이게 정말 참을 수 없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첫째, 타로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내밀한 생각을 털어놓게 하는 건 너무 쉽다. 이건 그냥 작가가 노력을 안 하는 거지. 둘째, 타로 점괘를 통해 앞으로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를 암시하는 것도 작가가 게으르다는 인상을 준다. 살면서 점괘가 그렇게 딱딱 들어맞은 적이 몇 번이나 있나요? 뭐, 현실에선 안 맞더라도 소설에서는 다 맞을 수 있지.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소설을 전개한다면 게으르다는 욕을 먹는 일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닐까. 셋째, 타로카드의 그림과 상징을 설명하는 게 정말 깊이가 없다. 예컨대 ‘죽음’ 카드는 이름도 죽음이고 그림도 으스스하지만 사실은 어떤 일이 끝이 나고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또한 ‘힘’ 카드는 천사처럼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사자를 강아지처럼 다루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는 신체적인 힘이라기보다는 내면의 힘, 부드러움 등을 나타낸다. 이건 타로 카드를 접해 본 적 없는 사람이 타로 카드 덱에 딸려 오는 기본 매뉴얼만 읽어도 5분 내로 파악이 가능한 것들이다. 이걸 가지고 작품 자체가 풍부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작가로서의 직무 유기가 아닌가 싶다.
아까부터 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힘을 덜 들이고 쉽게 쉽게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싫다. 그거야말로 청소년들을 무시하는 거지. 초등학생까지는 그래도 교훈적이고 단순한 이야기가 먹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등학생쯤 되면 그들을 진지하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청소년들이 아직 자라나는 존재고 배울 게 아직 많은 존재라고 해서 ‘애들은 이렇게 깊은 건 이해 못 할 거야. 쉽게 쓰자’ 하는 식으로 나가는 건 청소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예컨대 단테의 <신곡>(애초에 이건 저자인 단테가 “인생길의 한중간”, 그러니까 대략 평균 수명 70세의 절반인 35세쯤을 의도했으니까!)이나 조지 오웰의 <1984>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잘 쓴 청소년 소설은 거뜬히 이해할 수 있다. 고전 중에서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나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조금 더 최근으로 오면 존 그린의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나 니콜라 윤의 <The Sun Is Also a Star>라든지. 잘 쓴 청소년 소설은 읽는 대상이 청소년이라고 해서(작가가 실제로 그들을 염두에 두고 썼든, 아니면 마케팅 측에서 그들을 타깃으로 했든) 작가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눈으로 낮춰보지 않고 전심전력껏 쓴 것들이다. 나는 그런 점을 무척 좋아하고 존경한다. “난 상대가 누구든 언제나 맞짱을 뜰 때 최선을 다한다. 그게 비록 초등학생일지라도 말이야.” 이거야말로 작가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 아니냐고요!
게다가 이 소설은 어째 결말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김아름은 구유진에게 괴롭힘 가해자였으나, 이는 서지희에 의한 강압적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아름은 구유진에게 사과하고 둘이 잘 화해하면 <넥스트 아이돌 스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그 방송의 메인 작가에게) 듣고, 실제로도 구유진은 김아름은 김아름에게 사과를 받고 나서 그녀가 다시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걸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래 인용문들을 보시라.
“우리 모두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 어디쯤에 있어.”
“처음에는 너무 억울했어. 나는 상처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말더듬고 숫기 없다고 괴롭힘 당한 기억밖에 없는데 내가 가해자라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도 잊고 있었어.”
“네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면 돼. 하지만 네가 <넥아타>를 그만둘 필요는 없어.”
“유진이는, 연락이 안 돼. 나한테 사과할 기회조차 없어.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언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예전에 말을 더듬던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유진이가 말했다.
“아름아, 내가 더 미안해.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 이제라도 글 내릴게. 그런 글을 올리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상처받았으니까, 누군가 상처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댓글을 보면서 든 생각은, 난 정말 최악이라는 거였어.”
“네, 네가 쓴 글은 거짓말이 아니었잖아.”
“난 그냥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거야. 네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유명해진 너를 공격해서 내 상처를 보상받고 싶었던 거야.”
“사과를 받는 게 당연해.”
“난 비겁한 방법을 썼어. 그 카드에 나온 사람 같아. 자기가 추한 줄도 모르고,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고는 히히덕거리는 사람.”
언니가 향긋한 레몬차를 들고 들어왔을 때, 우리 둘 다 훌쩍이고 있었다.
“이 차의 효능은 화해를 촉진시키는 거야.”
우리는 눈물을 멈추고 차를 마셨다. 유진이가 주머니에서 카드를 한 장 꺼냈다. 컵을 들고 건배를 하는 세 여자가 그려진 카드였다.
“여기 오기 전에 이걸 뽑았어요.”
“컵3. 화합의 카드야.”
“제 잘못을 되돌릴 수 있을지 질문했어요. 이 카드가 나와서 여기로 무작정 뛰어온 거예요.”
유진이를 만나기 전, 내가 뽑은 카드와 같은 카드였다. 나는 카드에 나온 여자들처럼 잔을 위로 들었다. 언니와 유진이도 잔을 부딪혀서 건배를 했다. 우리는 꼭 카드에 나온 세 명의 여자들 같았다.
아래 인용문에서는 내가 앞에 언급한, 타로 카드를 사용한 진부한 상징이라는 점도 들어가 있다. 하… 이런다고 작품 내의 의미가 깊어지는 게 아니라고요… 게다가 무슨 화해가 이렇게 쉽고 빠른지. 무슨 3분 컵라면 화해인 줄. 이렇게 화해가 쉬웠으면 세상에 싸우고 의가 상한 사람들이 왜 있을까요? 😒
내가 생각하는 청소년 소설이란 청소년들이 공감할 수 있거나 좋아할 만한 주제, 그러니까 예컨대 교우 관계라든지 학교 생활, 이성 친구 사귀기, 성장하고 변화하는 몸 등등을 다루는 소설이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전적으로 작가에게 달렸고, 청소년들이 읽기를 의도했는지 아닌지, 또는 실제 독자가 청소년인지 성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그 자체로 말해야지!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구분을 떼어 놓고 봐도 별로다. 더 좋은 청소년 소설을 기대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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