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조너선 갓셜,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스토리텔링 애니멀>에 이어 이야기를 사랑하는 인간의 본능을 다룬 조너선 갓셜의 논픽션. 전작에서 저자가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를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으며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다양한 이득을 살펴보았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 이야기가 얼마나 중독적이고 위험한지를 설명한다. 이야기가 위험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그것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이 있다.
저자가 ‘이야기’라고 할 때, 그것은 TV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 ‘이야기’뿐 아니라 개인이 삶을 보는 태도와 관점, 그리고 삶 속 이야기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서 나는 정치적으로 A 당을 지지하니까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고 우리 당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라고 보는 시야도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선인과 악당이 있는데 주인공은 대체로 선인에 속한다(물론 주인공이 악인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반드시 도덕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도덕주의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해, 선인이 성공하고 악인은 실패하고 벌을 받는다는 식으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이런 도덕주의적 이야기에 빠지면 우리와 같은, 또는 비슷한 사람에게는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분노하고 미워하며 집단 간 분열이 심해진다.
이 모든 현상은 너무 친숙해서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사회적 갈등에 집착하다 보면 인간 본성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추한 측면을 빚어내기 마련이다. 고전적 이야기는 세계를 ‘우리’(주동인물의 세계)와 ‘그들’(반동인물의 세계)로 나눈다. 그뿐 아니라 ‘우리’를 사악한 ‘그들’과 대조적으로 정의한다. 악당은 ‘못됐’으며, 결말에서 당하는 끔찍하거나 치욕적인 대접은 그들이 자초한 결과다. 프리츠 브라이트하우프트Fritz Breithaupt가 2019년 출간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에 따르면 이야기는 “공감적인 사디즘”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타적 처벌의 상황에서 느끼는 정서적이고 지적인 기쁨”으로 정의된다. 선인이 악인을 죽이거나 사로잡거나 능욕할 때 우리는 이런 기쁨을 느낀다.
이는 이야기에 ‘구슬림’, 즉 설득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장 좋은 예는 소설이다. 역사학자 린 헌트는 소설이 보편 인권 개념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 린 헌트는 《인권의 발명》(2007)에서 노예제, 가부장제, 사법적 고문 같은 고대의 인권 침해 관행이 느닷없고도 지속적으로 공격받은 이른바 1700년대 후반 인권 혁명의 원동력은 새로운 스토리텔링 형식인 소설의 부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소설은 연극과 달리 사람의 외면적 언어뿐 아니라 내면적 생각과 감정에까지도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접근한다는 환상을 독자에게 일으켰다. 헌트에 따르면 소설은 가족, 집단, 국가, 성별을 뛰어넘어 공감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며 그 과정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덕 혁명의 촉매가 되었다.
헌트의 논증이 주로 기대는 토대는 소설의 부상과 보편 인권 개념의 탄생 사이의 의미심장한 상관관계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에 더 큰 타당성을 부여한 것은 이야기의 공감유발entactogenic 효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들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톰 아저씨의 오두막》 같은 이야기는 백인 독자로 하여금 흑인에게 더 많은 공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감은 일종의 근육이어서 픽션을 소비하여 단련할수록 점점 튼튼해진다. 널리 알려진 연구들에 따르면 픽션을 많이 소비하는 것과 공감 능력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이 관계는 이미 높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연스럽게 픽션에 끌릴 가능성을 배제해도 여전히 성립하는 듯하다.
요즘만큼 픽션이 넘쳐나는 시대는 없을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내집단 호의’와 ‘외집단 적의’가 가득하다. 이야기에 푹 빠져서 ‘공감’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일시 메커니즘을 통해 주동인물과 혼연일체가 되며 그와 사랑에 빠진다. 또한 주동인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악당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너무나 명백히 틀린 지평설 같은 음모론을 믿는 이들의 심리도 ‘이야기’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 그들은 실제 사실을 놓고 싸우는 게 아니라, 남들은 모르는 것들 또는 외면하는 것들을 자신은 알고 있고, 그 과정에서 비웃음을 당하거나 압박을 받더라도 묵묵히 싸워낸다는 내러티브, 즉 이야기 때문에 그런 (남들이 보기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이다.
지평설 회합에 참석하는 것은 라프 회합에 참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지평설 신봉자들은 〈던전 앤 드래곤〉식 시나리오를 바탕에 두고 임기응변식으로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탐정 소설의 주인공인 수사관을 연기한다. 하지만 지평설 롤플레잉은 훨씬 실감 나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현실판 롤플레잉에서는 불신의 유예가 임시적이고 불완전하여 걸림돌로 작용하는 반면에 지평설 라프에서는 불신의 유예가 진실하고 완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회합 장소인 호텔에 모인 지평설 신봉자들은 사회에서 붙여준 이름인 괴짜, 루저, 모솔, 얼간이가 아니다. 그들은 천재급 탐구자이며 통념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이유로 자기 시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험에의 소명을 받아들여 역사상 가장 큰 사기를 폭로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친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음모 세계에 몸담았다가 현실로 돌아오기가 그토록 힘든 것은 음모주의가 선사하는 자기만족 때문이다. 음모 서사에 머무는 동안 당신은 정신적 영웅이다. 반면에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면 자신이 그동안 엉뚱한 이야기 속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 이야기는 당신과 친구들이 괴물을 쓰러뜨리는 영웅 서사시가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희비극이었으며 당신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을 뿐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지구 온난화라는 문제가 ‘인기 없는’ 이유도 이야기의 매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는 딱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 구조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류의 대처가 굼뜬 이유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은 기후 변화가 정말로 나쁜 이야깃거리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장 좋은 이야기는 명확하게 정의된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며 분명하고 급박한 위험을 극적으로 묘사하여 우리를 사로잡는다. 빙하가 후퇴하듯 꾸물꾸물 전개되는 지구물리학적 과정으로는 어림도 없다. 물론 사악한 석유 기업 임원과 영웅적인 환경 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주인공을 캐릭터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신과 나처럼) 가해자인 동시에 잠재적 피해자인 거대한 통계적 인간 군상이거나 추상적인 지구물리학적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드의 책이 외면당하는 동안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책은 어떤 것들일까? 내가 오드의 아마존 순위를 확인한 바로 그날 전 세계 베스트셀러 1위는 글레넌 도일이 쓴 회고록 겸 자기계발 지침서였고 2위는 스테퍼니 마이어의 십 대 뱀파이어 연작 소설 《트와일라잇》 최신작이었다.
이 모든 현상에서 도출되는 비극적 가능성은 스토리텔링 심리의 선천적 구조 때문에 우리가 ⑴ 전통적 관점에서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아니거나 ⑵ 좋은 이야깃거리지만 (잘못된 종류의 감정인) 비활성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종류의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류의 대처가 굼뜬 이유를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은 기후 변화가 정말로 나쁜 이야깃거리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가장 좋은 이야기는 명확하게 정의된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며 분명하고 급박한 위험을 극적으로 묘사하여 우리를 사로잡는다. 빙하가 후퇴하듯 꾸물꾸물 전개되는 지구물리학적 과정으로는 어림도 없다. 물론 사악한 석유 기업 임원과 영웅적인 환경 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주인공을 캐릭터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신과 나처럼) 가해자인 동시에 잠재적 피해자인 거대한 통계적 인간 군상이거나 추상적인 지구물리학적 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선인과 악인이 등장하는 서사는 인간의 본능과 마찬가지라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상대에게 입냄새가 나면 대화가 꺼려지기에 우리도 입냄새를 풍길까 주의하며 스스로 입냄새를 확인하고 이를 닦거나 껌을 씹거나 하고 스스로 주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야기’를 만들어 현실을 왜곡하는지 스스로 알아차리려 노력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다.
우리 뇌가 이야기를 소비하고 창조하는 자동적 방식을 통제하기란 힘들 것이며 결국 실패할지도 모른다. 인류를 탄생시킨 스토리텔링 본능이 돌아서서 우리를 짓밟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이 진짜가 아니고 해결책이 막막하지 않다면 영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용감한 독자여, 이것은 모험에의 소명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책 내용은 참 좋은데 이 국내 번역본 제목은 이 책의 핵심을 비껴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를 횡당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이라니,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너무 거리가 먼데… 이야기가 인간의 사고와 인지를 왜곡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은 어디에다 버린 건지. 참고로 원작의 제목은 <The Story Paradox(이야기 패러독스)>이다. 딱 이 제목을 번역만 해서 그대로 가져왔어도 될 것을, 왜 굳이 핵심과 거리가 먼, ‘중립적인’ 느낌의 제목을 새로 지어 붙였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은 잘되어 있다. 단, 딱 한 군데 번역이 이상한 곳을 발견했는데 4장의 소제목으로 쓰인 “나쁘지 않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는 바로 밑에 원문이 “It Isn’t Good Unless It’s Bad”라고 되어 있다(원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건 “나쁘지 않다면 좋지 않다”라는 뜻인데 이게 어떻게 “나쁘지 않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명백한 오역 아닌가요. 이건 고쳐 주면 좋겠다. 그 외에는 옮긴이 주도 세세하게 잘 달아서 딱히 불만을 가질 곳은 없었는데, 딱 이거 하나만 옥의 티였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전작 <스토리텔링 애니멀>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꼭 읽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기에 더욱더 이야기의 힘을 이해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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