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현정, <90년생이 사무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이렇게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책은 또 오랜만이다. 1980년에서 1990년대 중반의 기간에서 태어난 '밀레니얼'들을 저자는 이 책에서 'Y세대'라고 부르는데, 그들 세대의 문화를 분석하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나도 이 글에서는 밀레니얼과 Y세대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쓸 예정이다. 책 소개는 이쯤 하고 바로 장단점으로 들어가겠다.
단점이 상당히 크므로 단점부터 시작하겠다. 밀레니얼들 분석에 별로 큰 연관이 없는 자기 개인사(그것도 자기 자랑에 가까운, 아무도 안 궁금한 개인사)를 늘어놓는 거야 대충 휙휙 넘기면 된다 치는데, 흐린 눈 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지 모르겠는, 의심스러운 구절이 크게 두어 군데 있다는 것. 일단 첫 번째.
베이비부머는 더 좋지 않은 경제 여건에서도 제조업을 키웠고,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X세대는 닷컴기업, 소프트웨어, 컴퓨터게임과 한류로 문화콘텐츠산업을 키우고, 산업 태동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방탄소년단 같은 K팝이나 게임계에 절대적 강자로 세계적 수준의 결과를 선보인다.
그러나 Y세대가 세운 산업은 전무하다. 제조업은 그렇다 쳐도 문화면에서도 그렇다. 스타가 될 만한 프로듀서가 하나도 없다. 나영석﹒김태호 PD, 양현석, 박진영, 방시혁 같은 한류 프로듀서, 홍상수, 봉준호, 박찬욱과 같은 세계적인 감독. 세계로 뻗어나가는 제조업이든 문화산업이든 밀레니얼의 활약은 미약하다. 앞서 말한 사람들은 30대에 이미 스타로 떠올랐고, 지금도 정상을 지키고 있다. 또한 Y세대는 핀테크, 드론 등의 하이테크 기업, 스마트폰 기반의 앱 서비스, 공유경제 등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일고 있는 조류에서도 한참 밀리고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문화산업 얘기를 꺼냈으니까 그것만 보더라도, 예컨대 방시혁 프로듀서가 키운 방탄소년단(BTS)은 밀레니얼인뎁쇼? 혹시나 내가 멤버들 나이를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위키페디아까지 가서 확인해 봤는데 방탄소년단은 막내 정국(97년생)만 빼고 저자가 말하는 Y세대의 기준에 들어맞는다(92년생부터 95년생까지). 일본에서 한류 붐을 가장 먼저 일으킨 동방신기나 카라 같은 케이팝 그룹도 당연히 Y세대. 그런데 왜 프로듀서 같은 '우두머리'만 콕 집어 그들이 이런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하는 건지? 방탄소년단만 예로 들자면 (아미들 미안합니다) 현재 일곱 멤버가 아닌 다른 그 누구였어도 현재 방탄소년단만큼 성공시킬 능력이 방시혁 프로듀서에게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위에서 언급된 PD, 프로듀서, 감독 등이 대단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들만이 잘나서 성공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영화라면 각본가라든지, 배우들이라든지 등등 분명히 작품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있게 마련 아닌가. 저자는 아이돌 자체는 조각가가 만든 조각처럼 온전히 조각가의 재량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보는 거 같은데, 아이돌도 사람이고 아이돌 멤버들도 각자 재능이 있으며 (물론 노력도 했겠지) 개개인이 고유한 매력이 있으니까 현재의 케이팝 붐이라는 성과가 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뭐 프로듀서가 '야, 한번 대박 내 보자!' 하면서 자기만 노력하면 그런 결과물이 뚝딱 나오나? 아이돌은 그냥 초등학생 손에 쥐어진 찰흙이나 똑같은 존재고? 이건 아이돌 본인들과 그 팬들이 모욕당했다고 느끼고 분노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발언이다. 밀레니얼 세대에 인물이 없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두 번째로 크게 틀린 것.
그런가 하면 IMF 이후 일터의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평생직장도 없어지고, 수시로 명예퇴직이 일어나는 경쟁에서 견뎌야 한다. 밀레니얼이 보는 남성과 여성은 앞 세대가 본 남녀와는 다르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버지와 브런치 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자신을 학원에 데려다주고는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에서 누가 더 고생하느냐에 대한 생각은 그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집안에서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영향력은 매우 커졌다. 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여하는 집이 많다. 그러면서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이 점차 커져 갔다. 학교에서는 남학생을 감당하지 못하는 여성 교사가 각종 평가를 이유로 남학생을 통제하고, 집에서는 어머니가 학교 성적으로 옥죄며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흔하다. 남학생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억압하고, 야단을 치는 여성 권위자에게 남성들은 적대심을 갖게 된다. '약한' 여성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라고 하는 이야기에 그들이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니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예쁘장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문화는 최소한 (밀레니얼인) 내가 대학생 때나 되었어야 한국에서 퍼지기 시작한 건데, 그 전에 무슨 브런치 카페 운운이지? 브런치 문화가 생긴 시기에 대한 내 기억이 틀렸다 치더라도,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엄마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극성 엄마인 거 같은데 그런 게 정말 대중적으로 공감받을 수 있는, '맞아, 우리 엄마도 그랬어' 하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대중적인 경험인가? 있는 집에서야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 논문에 따르면 X세대(Y세대의 부모 세대)는 맞벌이 비율이 61.5%로 가장 높았다는데요? 맞벌이하는 부부의 아내/엄마 쪽이 어떻게 애를 학원에 직접 데려다주고 한가하게 브런치를 즐깁니까? 분신술이라도 쓰시나?
그다음 문단도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저자가 여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명예 남성적인 시각이다. 분명 '자녀'라고 써 놓고서 일단 아들에만 해당하는 것 같은 묘사는 둘째치더라도, 왜 집에서 어머니가 자녀들을 통제하는지 몰라서 묻는가? 그거야 남편, 즉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부재한 상태이니 어머니라도 애들을 돌봐야지. 또한 여교사가 남학생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중학생만 되어도 남자애들은 벌써 여교사를 만만하게 보고 까분다. 체력이나 근력 면에서 여교사가 남학생을 어떻게 감당하나? '통제하고', '옥죄며' '무조건 억압한다', '야단을 치는' 등의 어휘 자체가 이미 여성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미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생각을 바꿀지 모르겠다. 왜 여성 혐오가 이 Y세대에서 강해졌는지, 그리고 이게 왜 Y세대에서 큰 이슈가 됐는지 모르겠으면 (일단 90년대부터 남아-여아 성별 비율 차이부터 다시 떠올려보고,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억해 보시길) 다른 학자들의 연구나 책을 참고해서 배우면 되지, 왜 뇌피셜로 글을 쓰시는 건지. 이런 글은 개인 블로그에 올려도 욕을 먹을 텐데, 이걸 아무런 여과 없이 책으로 낸 게 더 큰 문제다. 편집자가 이런 부분은 잡아내서 다시 조사를 해서 글을 쓰게 하든지, 아예 이 부분을 삭제하든지, 어떤 식으로든 조취를 취해야 했던 거 아닌가. 사실 저 두 문단 말고도 또 말도 안 되게 틀려먹은 부분이 더 있는데 더 옮겨 봤자 내 손가락만 아플 거 같아서 그쯤 해 두었다. 일단 저자 자신이 공평한 척하지만 사실은 한쪽에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거 잘 알겠습니다.
이렇게 '꽤 날카롭고 핵심을 꿰뚫는 척하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 트윗들을 떠올렸다.
(아래는 위 트윗에 딸린 이미지 파일들)
'인스턴트 문화' 운운하는 이들과 이 책의 저자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된 계기, 근원적인 이유는 보지 못하고 현상을 제멋대로 풀이하며 그 당사자들을 비웃는다는 거다. 객관적이라는 말이 단순히 대상에게 어떤 애정도 가지지 않고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닌데, 이들은 밀레니얼 또는 Y세대를 조롱하는 데 그친다. Y세대에 대한 애정이라는 게 정말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비뚤어진, 자의적인 해석은 불가능하지 않나?
이런 책에도 놀랍게도 장점이 있었으니, '그래서 구체적으로 Y세대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건데?'라는 질문에 답을 해 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에서도 피드백과 인정, 칭찬을 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피드백을 해주어야 할까? 한 외국계 회사에서 강의 중에 질문해보았다. 그들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피드백을 원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X세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그만큼 즉각적 피드백을 원하고 있다.
세밀한 피드백은 업무 성과를 높이고, 팀 성과를 내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리더가 신경을 쓰면 좋다. 일에 대한 결과 피드백이야 일에 따라 다를 테지만, 리더는 그때그때 피드백을 줄 수가 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리더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습관처럼 자주 반복하길 권한다.
'잘하고 있다, 수고한다, 고생한다, 잘될 거다, 고생하는 거 알고 있다.'
깊은 의미를 담거나 구체적 조언은 아니더라도 구성원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리더가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피드백을 필요로 하는 것이 불안을 달래고, 개인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피드백은 필요할 때 해주면 된다. '내가 이런 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몇 번을 섬세하게 해주면 좋다. 불안이 어느 정도 다스려지고 자신감이 붙으면, 더 이상 그런 피드백을 원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감이 붙으면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해내고 싶은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성원이 잘했을 때는 즉각적으로 작은 보상을 해주는 것이 좋다. 커피를 한 잔 건넨다거나 모바일 쿠폰을 보내주는 것도 좋다. 이것이 연말 평가에서 고과를 잘 주겠다고 약속하거나 승진할 때 챙겨주겠다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연말에 나눠 받는 인센티브보다 지금 당장 들어온 모바일 쿠폰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대학 시절 선배가 밥을 사주던 세대가 아니다. 따라서 커피 한 잔만 사주더라도 매우 고마워한다. 법인카드로 사줘도 될까? 아니다. Y세대는 법인카드는 '우리 돈'인데 상사가 생색낸다고 생각한다. 개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또한 X세대가 모바일 쿠폰은 그저 커피 마실 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Y세대는 쿠폰이 생기면 그것을 쓰러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에게 모바일 쿠폰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관심의 표현이며 하나의 이벤트를 선물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쿠폰을 보낼 때는 반드시 받는 사람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를 같이 보내야 한다. 누구라도 쿠폰만 받는 것보다 메시지와 함께 받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 오늘 날이 더운데 외근하느라 수고했어요.
—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일인데 기꺼이 맡아줘서 고맙다.
— 요즘 고생이 많은데 카페인 충전하고, 파이팅!
이처럼 각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에게만 보내는 특별한 관심과 선물임이 드러나도록 한다. 이 방법은 예상보다 현장에서 반응이 매우 좋았다.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X세대 리더들도 손쉽게 해볼 수 있을 뿐더러, 이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가 있다. 오늘 힘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면, 일찌감치 퇴근을 허락해주고 아이스크림케이크 모바일 쿠폰 하나씩 보내주면 어떨까.
겉만 보면 (X세대인 저자가) X세대가 상사의 입장에서 Y세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Y세대가 X세대에게 '타인은 이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하고 가르쳐 주는 듯하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핸드폰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듯이. 생각해 보면 X세대도 사람인데 그들이라고 해서 이렇게 '잘하고 있다, 수고한다, 잘될 거야'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Y세대는 섬세하고 예민한 눈꽃송이 같은 아이들이니까 이렇게 대해 주어야 한답니다~' 같은 태도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거 보면 살짝 웃기기도 한다. X세대도 똑같이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텐데 먹고사느라 힘들고 바빠서 그걸 표현을 못 했다가 이제 좀 먹고살 만해지니까 그걸 좀 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되어서 Y세대들이 그걸 바라게 된 거 아닌가. Y세대가 유난히 '나약'하거나 '섬세'하거나 '예민'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장단점이 극명히 갈리는 책이라 추천할 수 없다. 물론 장점은 정말 너무너무 유용하고 좋은데, Y세대의 현상의 원인을 잘못 짚었으니 전반적으로 저자와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이 하락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또한 이것 하나만 보고 90년대생, 밀레니얼, Y세대, 또는 그들을 무슨 용어로 부르든, 이 세대를 다 이해했다고 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참고할 만한 책을 두어 권 꼽아본다면, 일단 그 유명한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가 있겠다. 여기에 참고로 붙이려고 내가 이전에 쓴 서평을 다시 읽어 보니 75% 정도 공감했다고 써 놨더라. 괜찮은 책이다. <90년생이 사무실에 들어오셨습니다>보다는 훨씬 더 공감이 되고 훨씬 더 잘 분석했다. 같은 한국 이야기라는 것도 장점이고.
2019.10.1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다른 하나는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 이건 미국인 저자가 미국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 책인데, 저자 본인이 밀레니얼에 속해서 그런지 정말 보는 눈이 정확하다. 미국 이야기라고 해도 한국인 밀레니얼인 내가 거의 90%는 공감할 수 있었을 정도로. 또한 플랫폼 경제, 긱 경제가 이 세대의 경제 생활와 노동의 의미를 바꾸어 놓았는지 정말 잘 살펴보았다. 2020년 책이라 꽤 최근이기도 하고(위 책은 2018년 말에 출간). 이거야말로 진짜 밀레니얼 입장에서 본 밀레니얼 세대 보고서이다.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이 책들이 세대 간 소통과 화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2021.11.22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앤 헬렌 피터슨, <요즘 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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