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정만춘,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기혼도 미혼도 아닌 괄호 바깥의 사랑>
나는 한국 사회가 말하는 소위 ‘정상 가정’의 모습에 회의적이다. 이성애자 부부(=결혼 제도에 편입된 이들)와 그들이 낳은 자식, 그것도 가능하면 아들 하나 딸 하나로 구성된 가정이어야만 ‘정상’이며 여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났다가는 그 누구도 ‘비정상’ 소리를 면치 못한다. 성 소수자는 물론이요, 이성애자 부부라 하더라도 난임 부부는 ‘정상’에서 제외되며, 결혼할 마음이 없는 이들, 동거하는 이들은 당연히 ‘아웃’이다. 어떤 이들은 연애하는 이들에게 ‘결혼하기 전에 한번 살아 봐야 서로를 잘 알 수 있다’라며 동거를 제안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동거하는 연인들은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편이다. 동거하는 이들, 특히 여성은 문란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이 덧입혀지고, 3년 이상 오래 애인과 동거했으나 헤어졌으면 거의 결혼을 ‘다녀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연애 상대로 좋지 않게 여겨진다.
하지만 이 에세이의 저자가 말하듯이, 동거는 결혼의 전 단계나 결혼을 전제로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상대와 같이 있고 싶으니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3명의 남성 애인과 1명의 여성 애인과 동거한 경험이 있다. 남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자는 저자 소개에 이렇게 썼다. ‘외국인과의 연애도, 폴리아모리도 해본 적 없으니 꽤 보수적인 편이라 주장해 본다.’ 저자의 표현대로 ‘승용차에 비좁게 앉힐 만큼’ 동거한 사람을 만났으나 단순히 그 사실 때문에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진보적’이라거나 ‘오픈’된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동거를 여러 번 해 보았다고 해서 자신이 유난히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20-30대 연인들도 오래 사귀면 상대방의 자취방에서 같이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며칠 자고 간다거나 하는 정도의 데이트는 하지 않나? 상대방의 집에 자기 물건도 좀 놓고 다니고 거의 ‘반동거’라고 할 수도 있는데, 단순히 아직 정식으로 살림을 ‘합친’ 것은 아니라고 해서 둘이 동거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가 싶다. 동거가 잘못된 게 아니고 나쁜 일이 아닌데 ‘우린 동거까진 아니지’라고 필사적으로 부인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프롤로그 ‘동거에는 실패가 없다’에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에서 동거라는 단어는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무엇’처럼 쓰인다. 어딘가 불순한 것,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음란한 ‘무엇’으로 보인다. 동거는 어쩐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어두운 생활처럼 보이지만, 기실 내가 경험한 동거는 나른한 일요일의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혹은 일상의 민낯이 드러나는 <생활의 달인>에 가까웠다. 연인과의 생활은 몇십 년째 똑같은 순서를 반복하는 송해 아저씨 진행처럼 안정적이고 소소했고, 우리는 순식간에 꽈배기를 만들어 내는 생활의 달인처럼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을 해치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책이 동거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나아지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내게 동거는 결혼을 위한 준비나 실험이 아니었다. 연인을 좀 더 잘 알기 위한(물론 더 잘 알게 되기는 했으나) 테스트나 완벽한 합일을 위한 과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을 자주 ‘미성숙한 것’으로 폄하하지만, 동거는 그 상태 그대로 내게 완벽했다. 결혼 전에 동거를 해보겠다는 아이디어에 적극 찬성하는 만큼, 평생 동거만 하겠다는 커플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나라 특유의 결혼 풍습은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단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면 ‘했다’라는 것 자체가 성공인 것처럼, 동거에는 실패가 없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일단 이 책을 좀 사보시라. 괜찮으면 한 권 더 사서 연인도 선물해 주시라. 어쩌면 부모님 선물로도 괜찮을지 모른다! 동거 권장 도서! 절찬 판매 중!
이 글이 결혼 생활에 대한 비난이나 제도 안에 들어간 사람에 대한 반발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 제도 안에서 안정적 가정을 꾸리는 이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는 것처럼 퀴어 커플을 비롯한 동거인들도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고, 동거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선택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에부터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까지.
저자가 네 애인들과 동거하며 살았던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첫 번째 꼭지, ‘첫 번째 싸움은 한집에 두 권 있는 <비행운>으로부터’다. 이건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를 정말 있는 그대로 옮긴 느낌이다(결말은 말고 큰 사건의 틀만). <서재 결혼시키기>는 엄청난 독서광인 앤 패디먼의 에세이인데, 그중 한 에피소드는 대략 이렇다. 저자가 남편과 결혼 후 같이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각자의 서재를 유지하다가 어느 날 마침내 두 서재를 합치기로 (’결혼 시키기로’) 결심했으나 책을 정리하는 방식에 부부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독서광이라면 엄청 공감할 이야기가 많으니 이 책도 강력 추천한다!). 정만춘 씨도 자신이 가진 책 백 권, 애인이 가진 책 백 권을 합치려는데 둘 다 공통적으로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을 한 권씩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애인은 ‘똑같은 내용인데 두 권 있을 필요가 있어?’라며 한 권을 팔아 버릴까 하지만 만춘은 주저한다. 그러다 애인이 마침내 ‘서로가 다 알고 있으면서 밖으로 뱉지는 않은 말’을 꺼낸다. “너 사실은 나중에 이 책 다시 가져갈 생각 하는 거지?”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결국 둘은 <비행운>을 팔지 않고 그 일은 흐지부지되었지만, 결국 둘은 1년을 같이 살고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던 날, 둘은 각자의 <비행운>을 나눠 가졌다고.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책장을 합쳤다가 다시 나누는 일로 표현한 게 정말 마음에 든다(정만춘 씨도 <서재 결혼 시키기>를 읽었겠지? 두근두근).
남의 연애를 살짝 엿보게 해 주는 동시에 동거는 부끄러워할 것도, 비도덕적인 일도 아니라고 말하는 이 재미있고 속 시원한 책에 단 하나 단점을 하나 찾자면 맞춤법이다. 비문이나 읽기 힘든 문장은 별로 보이지 않지만, 한번만 제대로 살펴보아도 고칠 수 있었을 사소한 맞춤법 오류가 자주 보인다. 예컨대 ‘너가’라는 표현이나, ‘서있으면사람들이’처럼 스페이스 치는 걸 깜빡한 듯한 부분, ‘아닐 걸요’처럼 붙여 써야 하는데 띄어쓴 것까지(’-ㄹ걸’은 추측을 의미하는 어미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기차역일걸.’처럼 앞의 말에 붙여 쓰는 것이 옳다). 이것만 잘 수정해 주었다면 흠잡을 데 없이 아주 좋은 책이었을 수 있는데, 그 점이 아쉽다. 편집자나 출판사 측에서 저자의 창의적 권한은 물론 존중해 주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편집자가 오탈자 및 맞춤법 검사까지 손을 놓아 버리면 안 될 텐데 말이다.
물론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종종 보인다고 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영향을 받는다거나 그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동거는 결혼의 전 단계도 아니고, 퇴폐적이지도, 방탕하지도 않으며 책임 회피도 아니다. 이제는 동거를 ‘결혼’의 틀에서만 보지 말고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보아 주면 좋겠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정상 가족’의 환상을 버리고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다를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