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Maggie Su, <Blob>
타이완계 미국 작가 매기 수의 데뷔작. 바이(’바이섹슈얼(bisexual)’의 ‘바이(Bi)’가 아니라 ‘바이올렛(Violet)’의 애칭 ‘바이(Vi)’이다)라는 주인공은 호텔 리셉션에서 일한다. 8개월 전에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삶의 이유, 목적이란 것 없이 그냥저냥 게으르게, 꼬질꼬질하게 살고 있다. 부모님께는 평화 봉사단에 지원했다고,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거짓말했지만 사실 대학도 중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이는 한 레스토랑 앞에서 이상한 생명체를 발견한다. 슬라임처럼 생긴, 베이지색 젤라틴덩어리(제목처럼 ‘blob’)인데 신기하게도 눈과 입이 있다. 그날 저녁 같이 식사를 한 지인 엘리엇(바이와 같이 일하는 리셉셔니스트 레이첼의 친구인 게이 드랙 퀸)에게 이 젤라틴덩어리를 보여 주니, 어쩐지 표정이 슬퍼 보인다고 한다. 정말이지 그래 보이는 것도 같다. 그래서 바이는 술김에 이 젤라틴덩어리를 집에 데려오는데…
⚠️ 아래 독서 후기는 Maggie Su의 소설 <Blob>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설정의 소설이다. 책 표지에 있는, 물컹물컹해 보이는 젤라틴덩어리 같은 걸(극 중에서는 베이지색이라고 돼 있으니 이 표지에 그려진 것처럼 투명하지는 않겠지만) 영어로 ‘blob’이라고 하는데 슬라임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금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Flubber(플러버)>(1997)를 기억하시는지? 그런 게 ‘blob’이다. 실제로 ‘blob’을 이미지 검색하면 ‘blobfish’(호주 연안 심해에 사는 그 못생긴 물고기)나 슬라임처럼 생긴 것들이 나온다. 바이는 이렇게 생긴 덩어리를 집에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것이다… 바이는 젤라틴덩어리에게 ‘밥(Bob)’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자기가 먹는 시리얼이나 토스트 따위를 먹이며, TV를 보여 준다. 뭘 가르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바이가 집에서 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다. 자기가 소파에 앉아서 TV 볼 때 옆에다가 앉혀 놓고 그냥 같이 TV 보고 노는 게 둘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밥은 진화하기 시작한다. 처음 시작은 바이가 설거지를 하면서 “너도 이제 같이 사는 룸메이트니까 집안일 좀 도와야지”라며 “손 좀 빌려 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치?(You could give me a hand, you know?)”라고 농담한 게 시초다. 그러자 TV를 보면서 인간의 언어(그러니까, 영어)를 나름대로 습득한 밥은 바이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주 간단한 말로 짧게 ‘안녕’ 하는 게 전부였는데, TV를 더 많이 보면서 길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손에 이어서 근육질의 몸통도 만들고, 얼굴도 잘생긴 남자 배우들의 얼굴 비슷하게 변해 간다. 바이가 라이언 고슬링, 젊은 시절 조지 클루니, <타이타닉> 시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속 휴 그랜트 등 미모로 이름을 날린 배우들 얼굴 사진을 프린트해다가 밥에게 보여 줬기 때문이다 ㅋㅋㅋ 결국 그는 브래드 피트를 닮은, 잘생긴 얼굴을 가지게 된다.
<Lisa Frankenstein(리사 프랑켄슈타인)>(2024)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자기가 바라는 대로 상대 남자를 글자 그대로 ‘만들어’ 내거나 ‘길들여’ 가는 여자들의 전형이 미디어에 종종 (그러나 피그말리온 유형의 남자보다는 현저히 적게) 등장한다. <Blob>을 읽으면서도 그 생각을 했는데, 바이가 밥을 자기 뜻대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혹시 이게 어머니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싶었다. 조금 극단적이고 역겨운 예로, 자기 아들을 ‘꼬마 남친’ 따위로 지칭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라. 아무리 자기 취향대로 조각조각 땃따따 꺼내보고 땃따따 맘에 들게 상대를 조립한다고 해도 그 애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든 상대는 어쨌든 남이니까. 결국엔 아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개인 의지를 발휘할 거고 독립할 거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 같은 행위를 해도 여자는 결국 자기가 애정을 쏟는 그 대상이 자기 손을 벗어난 독립된 개인이 되는 씁쓸한 엔딩을 맞이한다. 반면에 남자는 피그말리온처럼 자기 마음대로 길들인 상대와 해피 엔딩을 맞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후자의 갈라테이아 격 여성도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깨어나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미디어 속 이런 유형 캐릭터들을 말하는 거다.)
바이의 밥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긴 하지만 간략하게 줄여서 말하면, 밥은 나름대로 반항을 하고, 바이의 집에서 나가 도시를 돌아다닌다. 바이는 밥을 찾아내지만 결국 그가 집으로 데려오기를 포기하고 혼자 집에 돌아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사실 이게 맞는 것 같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도, 그 아이가 영원히 내 입 안의 혀처럼 나에게만 속해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 이 인터뷰에서 인터뷰어 마이클 콜버트는 이 소설은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상대를 개인적으로 변화하거나 파트너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방식”을 다룬다고 말했는데, 아주 정확한 표현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과 하나가 되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개인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이다. 밥이 아직 팔과 손과 몸통 정도만 있던 시절, 바이는 밥에게 이렇게 묻는다. “내가 너에게 다리를 만들어 주면, 넌 날 떠날 거야?(If I made you legs, would you leave?)” 이 문장은 밥이 어떤 존재인가보다, 바이가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이 다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젤라틴덩어리로 시작한 이 미지의 존재까지 자기 곁에 묶어 두고 싶어 한다는 것. 나는 여기에서 히치콕의 영화 <Vertigo(현기증)>(1958) 속 여자 주인공의 대사도 떠올랐다. “내가 당신이 날 변하게 허용하면, 그걸로 충분한가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 내가 하면, 날 사랑해 줄 건가요?(If I let you change me, will that do it? If I do what you tell me, will you love me?)” 사람들은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곁에 있게 만들려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거 너무 마음 아파…
모든 걸 다 스포일러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바이는 밥을 떠나보내고, 엘리엇의 친척인 이반이라는 남자랑 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퇴했던 대학에서 재등록하고, 전공도 자기 적성에 안 맞는 생화학 엔지니어링 대신 인문학으로 바꾼다. 대학 다닐 시절에 유일하게 좋아했고 성적이 잘 나왔던 사진 촬영 수업을 시간표에 넣는다.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구남친 루크와 자기 어릴 시절에 대한 기억에 빠져 살던 바이가 소설 후반에 이렇게 성장해서 ‘정말 너도 인간이 되었구나’ 싶고 대견했다. 바이가 아시안계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이라든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 같은 것도 잘 묘사돼 있고 공감할 수 있었다. 읽을 만한 영어 원서 소설을 찾고 계시다면 이걸 권하고 싶다. 딱히 영어 공부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냥 새로운 것을 읽고 느끼는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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