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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추천] Ideal Home(아이디얼 홈, 2018) - 환장의 게이 커플, 얼떨결에 손자를 떠맡다!?

by Jaime Chung 2018.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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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추천] Ideal Home(아이디얼 홈, 2018) - 환장의 게이 커플, 얼떨결에 손자를 떠맡다!?

이 커플의 환상 케미를 보라!

감독: 앤드류 플레밍(Andrew Fleming)


'이상적인 가정(Ideal Home)'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에라스무스(Erasmus, 스티브 쿠건 분)와 그의 남자 친구이자 제작자인 폴(Paul, 폴 러드 분)은 정말 서로를 죽이지 않고는 못 사는 애증의 게이 커플이다.

에라스무스가 잘난 척을 하면 폴이 구시렁구시렁, 혹여나 둘이 한자리에 있을 때는 말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의 생일날 저녁, 파티 와중에 어떤 남자아이가 찾아와 에라스무스에게 성경을 건넨다.

성경을 펼쳐보니 '이 아이는 에라스무스의 손자이니 돌봐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휘갈겨 쓰여 있었다.

사실인즉, 에라스무스가 젊을 적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실험'을 하던 때에 한 여자랑 잔 적이 있는데 그 여자가 임신을 해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또 젊은 나이에 아들, 즉 에라스무스의 손자를 본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애 아빠는 경찰에 잡혀 간 상태이고, 애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이름조차 말해 주지 않는다!

뺀질뺀질 입만 산 잘난 척 대마왕 에라스무스와 그런 그와 싸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도, 차마 그를 떠날 수도 없는 폴, 이 둘은 이 손자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본격 게이 커플의 손자 키우기 프로젝트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위의)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쓰인 문구가 기가 막힌다.

"THESE DADS SUCK." ㅋㅋㅋㅋㅋ Suck에는 '(물고) 빨다'라는 뜻과 동시에 속어로 '(~을) 못하다, 형편없다'는 의미가 있다.

이 '아빠들'이 게이라는 점과 애 키우는 데 영 소질이 없다는 걸 잘 보여 주는, 센스 있는 문구이다.

 

나는 스티브 쿠건을 <The Trip(트립 투 잉글랜드, 2010)>, <The Trip to Italy(트립 투 이탈리아, 2014)>, <Philomena(필로미나의 기적, 2013) 등에서 봐서 이 배우 특유의 '잘난 척해서 밉지만, 그러면서도 결국엔 슬며시 웃게 만드는 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아주 '고오급' 요리만을 취급해 '타코 벨(Taco Bell, 부리토, 타코 같은 멕시코 요리를 파는 미국의 패스트 푸드 체인점)'은 음식으로 치지도 않는 요리 쇼 진행자라는 설정은 일부러 그를 염두에 두고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다.

다만 나는 그가 이 영화의 주연이라는 점에 다소 놀랐다. 일단 게이 커플이 나오니까 이 영화도 '로맨틱'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거 같은데, 이 아저씨 얼굴이 로맨틱 코미디 얼굴의 남주인공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얼굴은 아니니까... (죄송)

 

여태까지 내게 폴 러드는 키가 작고 마른 남자 배우라는 이미지였는데, 여기에서는 몸도 아주 우락부락하고 수염도 덥수룩하게 기른, 잘생긴 게이로 나온다(지금 찾아보니 이 배우 키가 178cm란다. 그럼 아주 작은 키는 아닌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앤트맨' 때문인가?)

폴이 맡은 캐릭터 폴이 에라스무스한테 퍼붓는 말이 정말 웃긴데,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장면이니 스포일러 걱정 없이 얘기해 보겠다. 에라스무스는 요리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서 말을 탄 채로 유려하게 말을 늘어 놓는다.

폴은 그걸 천막 안에서 모니터링을 하며 궁시렁궁시렁한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스태프가 "두 분 집에서도 이러세요?" 하고 묻자 "아니, 집에서는 이렇게 잘 지내지 못해." ㅋㅋㅋㅋ

다시 그 스태프가 그럴 거면 그냥 헤어지는 게 어떻겠느냐 하자 "그래, 그렇지만 내 맘속 한 켠에서는 쟤가 죽는 꼬라지를 보고 싶어서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예시 2. 생전 처음 보는 꼬맹이가 에라스무스의 손자랍시고 파티 도중에 나타나자 에라스무스와 폴이 잠시 이야기를 하기로 하는 장면.

폴이 우리가 쟤를 어떻게 키우냐, 우리는 개 한 마리도 제대로 못 키웠지 않느냐 하며 에라스무스에게 따진다. 그리고 바로 덧붙이기를, "다행히 코요테 때문에 그 문제는 해결됐지만, 쟨 어떡하느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 RIP...

 

말은 이렇게 해도 폴은 나름대로 소심하고 또 여린 면이 있어서 애를 돌보는 건 폴뿐이다. 에라스무스는 술 마시기 바쁘고(폴도 술은 엄청 마시지만 애를 돌보는 중간중간에 마신다).

애 이름을 어찌어찌 알아내고 애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상을 보내게 됐는데 당연히 거의 모든 일을 폴이 한다.

학교 앞에서 에라스무스랑 싸우고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자기가 거길 떠나면 에라스무스가 학교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 집에 데려올 리가 없으니 자기가 기다리겠다고 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모습이 짠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사실 둘이 학교에 간 사연도 웃기다. 애가 발표 시간에 "게이들을 절대 faggot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Cocksucker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체 검열)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하고 발표하다가 보호자인 에라스무스와 폴이 선생님에게 호출당한 것)

안 그래도 애를 떠맡았다는 부담감에 공황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불안감을 느꼈던 폴인데 말이다. 여기서 정말 감동ㅜㅜㅜㅜ

 

아, 이 영화의 세 주연 중 한 명인 아역(손자 역) 얘기를 안 했구나. 애는 귀엽다. 딱히 에라스무스/스티브 쿠건을 닮은 것 같진 않지만(에라스무스 왈, "그래, 정말 충격이지? 나는 얼굴에 손 하나도 안 댔는데 말이야.").

꽁하니 말 안 하고 있을 땐 답답했는데 에라스무스와 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친해지니 귀엽다. 그렇다고 애가 사고를 안 치는 건 아니지만 ㅜㅜ

위에서 말한, 이 커플이 학교에 호출당한 것도 사실 따져 보면 아이가 '두 아빠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학우들에게 그 정보를 전해 주려던 거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애들이 그런 차별적 지식을 알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들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또한 타고난 천성보다는 환경이 양육에 더 중요함을 마지막 장면에서 이 아이를 보고 느낄 수 있다 ㅎㅎㅎ 귀여운 것...

 

영화가 다 끝나고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스크린에는 아이를 키우는 동성 커플들의 사진이 한 장씩 나타난다.

나는 이 영화관을 본 경험 중에서 이 점이 제일 좋았다. 제목과 내용과 이 연출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진정한 의미에서 '이상적인 가정(ideal home)'이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껴 주는 가정이다'라는 걸, 굳이 촌스럽고 멜로드라마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도록 보여 주었다.

감상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기면서 주제도 있고 감동적인 코미디를 원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근데 이거 우리나라 극장에 걸릴 수 있나? IPTV로라도 올라가면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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