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Hail Satan?(헤일 사탄?, 2018) - 궁극의 선을 위해 사탄을 불러오다
감독: 페니 레인(Penny Lane)
현재 미국에 불고 있는, 'TST(The Satanic Temple)'라는 신흥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단 'TST'가 뭔지 알고 싶어 하실 분들이 계실 테니 간단히 소개하겠다. 'TST'는 루시엔 그리브스(Lucien Greaves)라는 사람(그가 대표적인 대변인이다)과 '말콤 제리(Malcolm Jerry)'라는 가명을 쓰는 사람이 세운 종교다.
'사탄의 사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타니즘(악마 신봉주의)을 표방하는 듯하나, 그것은 그냥 '추진력을 얻기 위한' 표면적인 상징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사탄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널리 퍼져 있는, 마치 기독교가 국교쯤 되는 듯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정교 분리 및 종교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협력하는 무신론적 행동주의자들에 가깝다.
아무래도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아서 그런데(사실 그런 어그로를 끌려서 지은 이름 같긴 하다), 그들은 폭력이나 퇴폐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사탄은 신(권력자)에게 저항한, 일종의 반항아의 상징이기 때문에 가져왔을 뿐, 그들의 목표는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평등이다.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애초에 시작부터 기독교, 정확히는 신교에 기반했다. 미국 지폐에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는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고.
그래서 그런지 비(非)백인이나 비기독교인인 이민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미국의 한 부분이 된 아직까지도, 기독교가 디폴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미국에 참 많다.
루시엔 그리브스를 비롯한 TST는 그게 공정하지 못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일례로, 오클라호마 주의 주 의회 의사당에는 기독교의 십계명이 새겨진 큰 석판이 앞마당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정말로 동등하다면 기독교만이 그런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TST는 악마 바포멧(Baphomet)을 기리는 상을 만들어서 이것도 같은 앞마당에 놓게 해 달라고 주 의회에 정식으로 건의한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물론 그 상을 거기에 놓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종교(여기에선 기독교)만을 편애하는 기존 체제에 저항해서 다른 종교를 두루 포용하지 못하는 관례들을 없애고자 하는 거였다.
긴 투쟁 끝에 마침내 십계명이 새겨진 석판은 앞마당에서 제거했다(그 석판은 다른 기관에 대여해 줬다고).
나도 처음엔 '미국에 사탄 숭배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고 이 다큐를 보기 시작했고, 다큐 초반에 나오는, 정말 사탄 숭배자처럼 검은 망토를 쓰고 악마 뿔 같은 머리 장식을 한 루시엔의 모습에 약간 거부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큐가 진행될수록 이들은 그저 '악마의 탈을 쓴', 무신론적이고 평등주의적인 행동주의자라는 알게 됐다.
감독은 TST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각 지역의 교구를 이끌어나가는, 일종의 사제들을 인터뷰하는데 그 모습도 참 각양각색이다.
머리 염색도 화려하게 하고 고스(goth) 스타일인 사람도 있고, 그냥 동네 주민1처럼 평범하게 생긴 사람도 있으며, 뼛속까지 독실한 기독교인처럼 생긴 사람도 있다(실제로도 그랬는데 개종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다양성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런 그들에게도 물론 공통점이 있었으니, 기존 종교의 편협함으로 인해 차별받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평등주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
TST의 한 회원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소풍으로 영화 <간디(Ghandi, 마하트마 간디의 삶을 다룬 영화)>를 보러 갔단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이 말하기를, "간디는 그런 위대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아니었기에 지옥에 갔어."
그 말을 듣고 그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고. "뭐? 그렇게 위대한 사람도 단순히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옥에 갔다고? 정말?"
내가 이 다큐에서 본 것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대체 종교가 뭐길래 그렇게 사람을 편협하게 만드는 걸까?
어린아이가 받았을 충격이 정말 상상도 안 간다. 그게 애한테 할 말인지.
또 내가 좋아하는 일화 하나 더. TST에서 '방과후 사탄 클럽(After School Satan Club)'이라는 걸 만들었다.
기독교 단체가 운영하는 '복음 클럽(Good News Club)'의 패러디이기도 한 이것은 TST에서 제공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인데, '비판적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활동들을 제공한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이에 반대했고, '그런 거는 내 자식들 말고 네 자식들에나 가르쳐라' 같은 항의가 들어왔다.
루시엔 그리브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어떤 애가 그런 클럽에 가고 싶어 하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저라면 이렇게 말하겠어요. '제가 바로 그런 애였어요.'라고."
아, "제가 바로 그런 애였어요." 이 한마디만 들어도 딱 그림이 그려진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기존 종교의 편협함, 차별주의, 불의 등을 경험하고 상처받은 아이... 나도 꽤 어린 나이에 교회라는 데 신물이 나서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기독교에 십계명이 있다면 TST에는 7개 교리가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모든 존재들에게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대할 것.
두 번째, 정의를 위한 노력은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
세 번째, 개인의 신체는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개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것에 종속되지 않는다.
네 번째, 타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신념은 과학적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여섯 번째, 사람은 틀릴 수 있다. 실수를 한다면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곱 번째, 모든 교리는 행동과 사고의 고귀함을 일깨우기 위한 가이드에 불과하다.
종교의 교리 치고 꽤 이성적이며 멋지지 않은가.
다큐에 인용된 한 TV 쇼에서 한 패널이 묻는다. "그들이 정말 사탄을 신봉하는 자들이 아니고 무신론자라면, 왜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부르지 않는 겁니까?"
이 뒤에 따라나오는 한 인터뷰에서 TST의 회원이 대답한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은 모임이 없거든요. 무신론자들은 그냥 개인이에요. 하지만 TST는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행동하죠." 정확한 워딩은 아닌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서도 해변 근처 고속도로에서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생리 용품을 기부받아 쉼터에 전달한다든지, 헌혈을 촉구한다든지 하는 봉사활동을 한다.
진정으로 공공의 선을 위하는 종교가 그래야 하듯이.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종교의 진정한 의미, 공공선을 위한 행동주의의 중요성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좋은 다큐였다.
이 다큐를 볼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