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Big in Japan(빅 인 재팬, 2018) - 어떤 수를 써서든 유명해지고 싶어!
감독: 라클란 매클리오드(Lachlan Mcleod), 루이스 다이(Louise Dai), 데이비드 엘리엇-존스(David Elliot-Jones)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세 청년의 '유명해지기 챌린지'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네이버 영화에도 정보가 안 올라가 있고(검색해서 나오는 건 동명의 다른 영화이다), 왓챠피디아에도 없어서 이 영화를 보고자 하는, 또는 이 영화가 궁금한 분들에게 내 감상을 알릴 방법이 딱히 없어서 이번에도 블로그에 쓴다.
과연 국내에서 이 영화를 구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할까 싶지만 해외에 계신 분들이 궁금해하실 수도 있으니(참고로 나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봤다) 후기를 최대한 잘 써 보겠다.
위에서도 간략히 요약했듯이, 호주 세 청년이 유명해지고자 노력한 과정을 담은 다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라클란, 루이스, 데이비드(애칭 데이브)라는 세 호주 청년은 절친이다.
라클란과 루이스는 원래 카메라로 뭘 찍는 걸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피사체인 자기 친구 데이브를 줄창 찍어 댔는데, 이 데이브로 말할 것 같으면 이렇다 할 재능은 코딱지만큼도 없고 잘생긴 것도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유쾌한 친구였다.
데이브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데이브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사람들 안의 뭔가 흥미를 끌어내는 존재였다.
이런 데이브에게 소원이 하나 있었으니, 유명해지는 것.
그래서 라클란과 루이스는 데이브를 유명하게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다. 어떻게? 음... 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엄청 뛰어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도 아닌데 어떻게 한다?
결국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TV에 나올 수 있고 유명해질 수 있는 일본에 가기로 한다.
일본어를 배우고, 영어 교사가 되기 위한 간단한 훈련을 받고, 여자 친구들까지 데리고 세 청년은 일본으로 출발!
...라는 것이 이 다큐의 큰 전제인데, 일단 일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브는 외국인 엑스트라를 위한 에이전시에 등록한다.
성명, 나이, 주소, 연락처, 신체 사이즈 등을 적고 나서는 테스트랄 것도 없이 등록 성공.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첫 제안이 들어왔다. NHK 재연 프로그램에서 디자이너 역할을 맡아 달라는 것.
연기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데이브였지만 그렇게나 쉽게 첫 일을 얻었고, 그럭저럭 촬영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이런 재연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게 된다. 하지만 유명해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와 두 절친들이 떠올린 것이 유튜브 스타 되기. '미스터 존스(Mr. Jones)'라는 페르소나도 만들고,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모양 모자를 쓰고, 훈도시(일본식 남자용 팬티 같은 것)만 입고 시부야 거리를 활보하기 등의 자극적 아이템에도 도전한다.
유명해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데이브는 비슷한 길을 밟고 있는, 또는 밟아서 이미 유명해진 이들을 만나 본다.
첫 번째는 밥 샙(Bob Sapp). 원래 미국 NFL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은퇴하고, 일본에서 파이터를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큰 덩치와 위협적인 외모("비스트(The Beast)"라는 예명처럼)에 걸맞지 않는 귀여움(또는 사랑스러움?)으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꽤 유명한 외국인이 되었다.
두 번째는 레이디비어드(Ladybeard).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누가 봐도 남자라 아니할 수 없는 외모에 소녀스러운 옷을 입고 레슬링을 하거나 헤비 메탈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 번째는 켈시 파니고니(Kelsey Parnigoni). 캐나다 출신 소녀로, 일본 제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일본에 왔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건 그녀가 아이돌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며 '하지라이 레스큐(恥じらいレスキュ)'로 데뷔한 시기.
개인적으로 이 세 '외국인 탤런트'들을 이 다큐에서 보고 느낀 점은, 밥 샙이 자기 캐릭터(페르소나)를 잘 이용하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라면, 레이디비어드는 정말로 자신이 크로스드레싱을 해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점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아주 마음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켈시는... 서양 애가 영어를 하는데도 일본 여자애처럼 부끄러워하듯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든가 하고 있으니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켈시 본인도 말하지만, 아이돌이기 때문에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여기는 문화를 부모님도 잘 이해하지 못하실 것 같은데(여기까지가 본인이 말한 내용) 본인은 어떻게 제이팝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는지도 참 신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양 멤버는 이슈는 될지언정 잘되기는 엄청 힘든데...
밥 샙은 자기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먹힐지 아는 사람인 거 같은데, 레이디비어드는 비교적 자기 개인적 얘기를 데이브에게 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서 호감이 갔다.
레이디비어드는 자기가 호주에 있을 때는 뚱뚱했어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단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자기가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하거나 레슬링을 하면 너무 좋아해 준다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얘기하는데 되게 찡했다.
팬에게도 엄청 다정하게 잘해 주는 거 보니 이분은 진짜 직업 만족도가 100%인 듯.
여튼 데이브도 '유명해지기 챌린지'를 계속 이어나가는 데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게 마련이니까) 원동력이 되는 '기분 좋은' 요소를 레이디비어드의 경우에서 찾으려고 했다. 일단 본인이 그걸 하면서 행복해야지 오래 할 수 있다는 걸 배운 거다.
그 전까지 데이브는 그저 유명해지고 싶어서 뭐든 하겠다는 필사적인 마음만 있었지,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2년 넘게 일본에서 유명해지려고 노력한 후, 결국 세 절친은 호주로 돌아온다.
'유명하다'란 개념을 일단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합의점도 찾지 못한 데다가(트위터 팔로워가 100명은 되어야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200명? 300명?), 그 목표를 달성해도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걸, 더 많은 걸 추구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호주로 돌아온 후, 라클란과 루이스는 촬영물을 잘 다듬어 이 다큐로 만든 것 같고(데이브도 어느 정도 참여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감독 롤은 라클란, 카메라맨이 루이스, 연기자는 데이브였다), 데이브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햄버거를 구우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애초에 살면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나는 데이브가 '오니리기 맨' 캐릭터를 밀려고 노력할 때 '도대체 왜, 유명하다는 게 뭐라고 저렇게 쪽팔린 짓을 하지? 왜 공개적 망신을 감수하는 거지?'라며 대리 수치심으로 괴로웠다...
진짜... 별 볼 일 없는 평범 백인남의 훈도시 차림 안 보고 싶다고!!
그래도 전반적으로 내용이 흥미롭고(일본에서는 왜 외국인 탤런트들을 그렇게 좋아할까?), 생각해 볼 만한 점을(유명해진다는 게 뭘까? 유명해지면 뭐가 좋지? 유명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제시한다는 점에서 볼만하다.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거들떠 보시기를.
P.S.: 제목의 'Big in Japan'은 알파빌(Alphaville)이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따 왔다.
애초에 'big in japan'이라는 표현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북미, 영국 등 영어권 국가나 유럽 출신 밴드를 가리키는, 일종의 하나로 굳어진 표현이 되어 버려서 딱히 그 노래에서만 따 왔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그 일례로 다큐 앞부분에도 더 벤처스(The Ventures)라는 밴드의 예가 제시되는데, 이 밴드는 본국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지만 일본에서는 비틀즈의 앨범 판매량을 뛰어넘을 정도로 큰 인기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