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Moxie(2021, 걸스 오브 막시) - 소녀들, 혁명을 일으키다
감독: 에이미 폴러(Amy Poehler)
비비안(Vivian, 해들리 로빈슨 분)은 이제 막 9학년(한국으로 치면 중3이지만 미국에서는 고1)이 된 16살 소녀다.
오늘이 학기의 첫날인데 학교에서 '잘나가는' 애들은 벌써 다른 애들에게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고 비비안의 친구인 클라우디아(Claudia, 로렌 차이 분)가 알려 주었다). '엉덩이가 가장 섹시한 애, 가장 자 보고 싶은 애' 등등.
이렇게 여학생들에게 모욕적인 순위를 매기는 주범은 미식축구의 주장인 미첼 윌슨(Mitchell Wilson, 패트릭 슈왈제네거 분)이 있다. 그는 '꼬붕'이라 부를 만한 친구 제이(Jay, 제이슨(Jason)의 애칭, 조슈아 워커 분)를 데리고 다니며 학교가 제 것인양 행동한다.
전학생 루시(Lucy, 알리시아 파스쿠알-페냐 분)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듯이 제멋대로 끼어들어 말을 막기도 하고, 그래서 루시가 불쾌해하니까 그녀가 마시려던 콜라 캔을 따서 안에 침을 뱉고 건네는 등, 아주 재수 없게 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루시가 이런 문제를 상담하려고 셸리 교장 선생님(Principal Shelley, 마샤 게이 하든 분)은 "괴롭힌다(harassing)"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며, 그러면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기니 그냥 그가 그녀를 "귀찮게(bother)" 하는 것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래야 자기가 편하니까.
이에 상심한 루시. 비비안은 루시가 미첼에게 괴롭힘당하는 광경(루시의 콜라캔에 침 뱉은 일)을 목격했기에 어떻게든 그녀를 위로하고 싶어서 "그냥 무시해 버려"라고 말하지만, 루시는 "왜 내가 무시해야 해? 그냥 걔가 타인을 안 괴롭히면 되잖아. 나는 고개를 높이 들고 다닐 거야."라고 대꾸한다.
사실 루시의 말이 맞는다. 비비안도 이를 아니까 집에 와 엄마에게 스리슬쩍 묻는다. "16살 애들은 뭐에 관심이 있을까?"
엄마(리사, Lisa, 에이미 폴러 분)는 "글쎄다, 내가 네 나이였을 땐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려고 혁명을 일으키는 일에 열심이었지."라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며 대답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던 '비키니 킬(Bikini Kill)'이라는 가수의 '레벨 걸(Rebel Girl)' 가사를 흥얼거린다.
이에 호기심이 생겨 엄마 몰래 랩탑으로 그 노래를 찾아보고, 엄마 방에서 엄마가 소녀 시절 '혁명'을 하던 시기의 물건들(대개는 팜플렛들)을 살펴본 비비안.
다음 날, 학교에서 미첼이 미식축구부 주장으로서 소개되어 신나 제멋대로 떠들 때, '그 목록'이 공개된다. 누가 제일 '섹시한 엉덩이'를 가졌고, 누가 제일 '자 볼 만하'며, 등등. 개중에는 비비안이 '제일 말 잘 듣는(most obedient)' 아이로 꼽혔고, 미첼에게 찍힌 루시는, 음,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c'로 시작하는 욕설(아마도 여성을 비하하는 욕인 'cunt')로 꼽혔다.
루시는 다시 한 번 교장 선생님께 항의하지만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이에 분노한 비비안은 집으로 달려가고, 거기에서 팜플렛을 만들기 시작한다.
팜플렛 제목은 '목시(moxie)'. '용기, 투지'라는 뜻인데 교장 선생님이 한 연설에서 따 왔다. 내용은 교내에 만연한 성차별적인 사건들을 낱낱이 고발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이제 비비안은 이 팜플렛을 겁나 복사해서 학교 여학생 화장실에 뿌릴 것이다. 비비안은 참지 않긔!
제니퍼 마티외(Jennifer Mathieu)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화 소개만 몇 줄 읽어 봐도 이것이 여성주의적 영화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 16살 소녀가 교내 팜플렛을 통해 성차별을 폭로하고 여학생들 사이에 연대를 이루어낸다는 것이 줄거리니까.
전체 평을 하자면, 이렇게 여성들(성인 여성, 소녀들 포함)에게 영감을 주는 영화가 나올 때가 됐고, 이렇게 나온 것이 무척 기쁘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성차별은 너무나 흔해서 다들 한 번 이상 목격했을 것들이다. 예컨대, 여자가 말을 하는데 말을 자르고 제 할 말만 해 버리는 남자의 모습, 여자들의 외모에 점수를 매기는 모습, 이런 성차별에 항의를 해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타파할 의욕이 없는 윗선 등등.
이런 지긋지긋한 성차별에 저항하는 주체인 캐릭터로 다양한 소녀들을 등장시킨 것도 무척 멋지다.
예컨대 주인공 비비안은 ('가장 자 보고 싶은' 여학생으로 뽑힌 엠마(Emma, 조세핀 랭포드 분)처럼) 백인이지만, 중국계 이민 2세대인 클라우디아와 절친이다.
축구 팀 주장 키에라(Kiera, 시드니 파크 분)와 그녀의 행동 대장쯤 되는 아마야(Amaya, 안젤리나 워싱턴 분)은 흑인이다.
루시는 '헤르난데스(Hernandez)'라는 성을 가진 것과 스페인어를 하는 걸로 봐서 스페인계 흑인이다.
비비안의 짝사랑 대상인 세스(Seth, 니코 히라가 분)는 아시아인이고, 여학생들의 결사를 지지하는 남성의 포지션이기도 하다(처음에는 여학생들의 이슈를 스리슬쩍 피해 가려고 하다가 후에 마음을 바꾸는 데이비스 선생님(Mr. Davies, 이크 바린홀츠 분)도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여러 인종을 포섭하고 또 남성들까지 이 담화에 끌어들인 것이 무척 바람직하다 하겠다.
나는 늘 <Legally Blonde(2001, 금발이 너무해)>가 대놓고 여성주의 영화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늘 여성주의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그래서 좋다는 뜻이다!), 이건 그것보다는 좀 더 대놓고 아예 '이 세상 모든 소녀들을 위해!'라고 외치는 듯하다.
'16살짜리가 뭘 알아? 팜플렛 하나로 어떻게 학교를 바꿔?'라고 다소 삐딱하게 볼 수도 있지만, 원래 어릴수록 더 열정에 넘쳐서 무언가에 더 헌신하기 쉬운 법이다. 그리고 팜플렛이 여학생들의 마음속에 있는, '이대로는 안 된다, 뭐든 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일깨웠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힘은 작아도 여러 사람의 힘은 큰 법이니까.
이게 한국 넷플릭스에서도 시청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면 정말 좋겠다. 많은 여성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기 여성들이 이걸 보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굿!!
+ 원작 소설과 영화의 다른 점도 비교해 보고 싶지만 소설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정식으로 출간되지 않았다.
혹시나 이 둘의 차이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시라.
https://www.buzzfeed.com/zoraidacordova/differences-moxie-book-and-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