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Happiest Season(2021,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 동성 커플에게도 크리스마스의 행복을 허하라!
감독: 클리어 듀발(Clea DuVall)
애비(Abby, 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와 하퍼(Harper, 맥켄지 데이비스 분)는 알콩달콩 잘 사귀고 있는 동성 커플이다.
애비는 크리스마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하퍼는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아한다는 차이점은 있어도, 애비가 하퍼에게 청혼을 생각할 정도로 서로 아주 사랑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을 구경하다가 거의 충동적으로 하퍼는 애비에게 크리스마스 때 자기 집에 가자고, 그래서 부모님을 만나자고 한다.
애비는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애인의 청이니까 들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난 다음 날, 하퍼는 은근히 애비가 하퍼네 집에 가지 않을 이유를 찾기를 바라는 눈치다.
웬일인가 하니, 사실 하퍼는 부모님이나 자매들에게 커밍 아웃을 아직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퍼네 집에 머물려면 그동안 애비는 하퍼의 (이성애자) 룸메이트인 척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하퍼네 집에 거의 다 왔고, 하퍼도 이번 크리스마스 휴일만 끝나면 바로 가족에게 커밍 아웃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딱 닷새만 참으면 된다. 닷새 동안만 내가 하퍼의 애인이 아닌 척하고, 내가 레즈비언이 아닌 척하면 된다. 쉽지 않겠어?
과연, 애비와 하퍼는 큰 비밀을 숨기고 크리스마스를 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이를 겨냥한 가족 영화 또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큰 줄거리는 대략 비슷하다. 가족 영화라면 그다지 잘 협동하지 않고 심적으로 가깝지도 않은 가족 일원들이 크리스마스 동안 얼굴 맞대고 지내며 우당탕탕 싸우다가 결국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내용이 될 것이고,
로맨틱 코미디라면 모종의 이유로 애인(또는 애인인 척하는 상대)의 부모님을 만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질 뻔하다가 결국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는 내용이 될 것이다(벌써 영화를 두 편은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이런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영화에서 성 소수자들은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기껏해야 조연 정도일까.
아무래도 이런 대목을 노리고 만드는 영화는 일반적인 '대중'을 겨냥해서 각 나라의 가장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성 소수자들은 그렇게까지 '대중'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위에 적은 시놉시스를 보면, 또는 트레일러만 봐도 알겠지만, 여성 동성애자 커플이 주연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연의 성 정체성 빼고는 다소 클리셰적인 줄거리를 따라가며 결국엔 해피 엔딩으로 끝맺는 구조를 답습한다.
빤해 보일지라도 사실 이건 큰 의미가 있다. 인디 영화가 아니라 이름이 잘 알려진 스튜디오에서 '크리스마스'와 '대중'을 노리고 만든 아주 상업적인 영화의 주인공이 성 소수자라는 건, 이 사회가 그만큼 그들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고 (아니면 최소한 성 소수자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이 흔하고 자연스러워졌고) 또 성 소수자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도 대략 손익 분기점은 넘기겠다 싶을 만큼 더 이상 '마이너'하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영화에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양성애자), 댄 레비(동성애자), 빅터 가버(동성애자), 그리고 오브리 플라자(양성애자)를 포함한 LGBTQ+ 배우들이 주조연으로 참여했으니 이 또한 뜻깊다 하겠다. 뭐, 감독 본인부터 동성애자이니까 말 다 한 거 아닌가.
참고로 감독인 클리어 듀발은 이 영화를 일종의 자서전으로 썼다고 한는데, 실제로 일어난 일에 기반했다는 뜻은 아닌 것 같고, 자신이 등장인물들에게 이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 같다(출처: https://www.thewrap.com/clea-duvall-director-happiest-season-lgtb-christmas-movie/).
자기가 살면서 둘 다(그러니까 애비와 하퍼)의 입장에 처해 봤다고 덧붙인 걸 보니까.
비밀을 숨기고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가족들과 부대껴야 한다는 줄거리 자체가 LGBTQ+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다지 특별하거나 놀랍지 않은, 많이 해 본 경험일 수도 있기에, 감독도 그걸 코미디로 풀어 내면서 치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궁예해 본다.
어쨌거나 미디어에 성 소수자들이 많이 등장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기쁘고 이를 축하하고 싶다.
조금 색다른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를 원한다면 이 영화도 괜찮을 듯하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의 잘생쁨이 폭발하니 팬이라면 꼭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