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Everybody's Talking About Jaime(제이미에 시선 집중, 2021) - 16살 드랙 퀸 소년, 어둠에서 나와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감독: 조나단 버터렐(Jonathan Butterell)
올해 16살인 제이미(Jaime New, 맥스 하우드 분)는 조금 특이한 소년이다. 자신이 되고 싶은 게 뭔지 벌써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되고 싶은 것은 드랙 퀸! 다행히도,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드레스를 입고, 어머니의 립스틱과 아이섀도우를 발라 보며 '여자 옷을 입기'를 바라며 자란 제이미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
제이미의 어머니 마가렛(Margaret, 사라 랭카셔 분)은 제이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마가렛의 절친이자 제이미에게는 두 번째 엄마나 다름 없는 레이(Ray, 쇼브나 굴라티 분)도 마찬가지. 그리고 학교에서는 프리티(Pritti, 로렌 파텔 분)라는 아주 좋은 친구가 제이미의 곁에 꼭 붙어서 제이미를 응원하고 아껴 준다.
심지어 마가렛은 제이미의 16살 생일 선물로 제이미가 너무너무 갖고 싶어서 돈을 모아 왔던, 생애 첫 하이힐을 선물로 주실 정도다.
물론, '괴짜(freak show)'라고 제이미를 놀리며 괴롭히는 남학생(딘 팩스턴Dean Paxton, 사무엘 버텀리 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드랙 퀸이 너무나 되고 싶은 제이미는, 드랙 퀸을 위한 의상실의 문을 연다.
그곳에서 만난, 한때 잘나갔던 드랙퀸 '로코 샤넬(Loco Chanel)'이라는 페르소나를 가진 게이 남성 휴고(Hugo, 리차드 E. 그랜트 분)를 만난다.
학교 프롬(prom)에 드레스를 입고 가고 싶다고 제이미가 말하자, 휴고는 그에게 드랙 퀸이 되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제이미는 정말 고작 16살의 나이에 드랙 퀸이 될 수 있을까?
16살에 드랙 퀸으로 데뷔한 제이미 캠벨(Jaime Campbell)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웨스트 엔드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마존 오리지널 무비라서 나는 아마존 프라임으로 봤다. 아마존 만세!
기존 뮤지컬의 영화 버전이라고는 해도, 이 영화에서는 원래 뮤지컬 넘버에서 7곡이 삭제되고 새로운 넘버가 1곡 삽입되었다고 한다.
나는 기존 뮤지컬을 못 봤으니, 그런 면에서 비교해서 리뷰를 쓸 수는 없다. 그냥 내가 느꼈던 바를 조금 적어 보겠다.
제이미의 어머니 마가렛이 KTX 타고 가면서 봐도 게이인 아들을 정말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지, 정말 감동적이다.
마가렛과 절친이자 제이미에게는 거의 제2의 엄마나 다름없는 레이도 진짜 좋은 사람이다.
이 둘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냐면, 제이미가 학교에서 돌아와 반팔 티에 스팽글 잔뜩 달린 반바지를 입고 부엌으로 내려와 두 사람을 맞이하는데도 이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나는 제이미가 할 말이 있다길래 그 차림이 할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놀라지도 않고 무슨 일이냐고 차분하게 대하더라. 이건 정말찐사랑...
마가렛이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넘버 <He's My Boy>도 참 애틋하다.
그리고 제이미의 학교 친구들도 진짜 좋은 친구들 같다. 제이미가 드레스를 입고 프롬에 갔을 때(이건 실화에 기반한 거니까 말해도 스포일러는 아니겠지?) 친구들이 다 환호해 주고 제이미 편을 들어 주는 게 진짜 멋졌다.
영화니까 억지로 지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 기반이라서 더 좋았다. 인류애가 충전되는 기분?ㅎㅎㅎ\
아, 친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프리티가 진짜 너무너무 좋은 친구라서 보는 내가 다 흐뭇했다.
영국이 배경이라 인도계 영국인들과 백인 영국인들이 상당히 융합된 모습이 보여서 그것도 보기 좋은데, 조그맣고 (로렌 파텔 배우 키가 진짜 작은데 키 큰 맥스 하우드 배우 옆에 서 있으니 정말 더 조그마해 보인다) 히잡을 쓴 무슬림 여자애와 키 큰 백금발 호리호리한 남자애의 조합이라니!
단짝은 자고로 다른 점이 많을수록(예컨대 키 차이라든가, 머리카락 색 차이라든가, 성격 차이라든가) 더 흥미로워지는 법인데 제이미와 프리티의 예가 바로 그러하다.
프리티가 제이미에게 불러 주는 노래가 이 영화에 두 곡 있는데, <Spotlight>랑 <It Means Beautiful>이다. 두 곡 모두 좋고, 전자는 끝날 때쯤 다시 리프라이즈(reprise) 버전으로 다시 불린다.
한때 잘나갔던 드랙 퀸 '로코 샤넬'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떻게 그 시대 게이를 비롯한 성 소수자들이 권리를 위해 싸웠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도 참 좋다.
그때의 운동가들이 있어서 지금의 자유가 있는 것이니까.
아, 그리고 이야기의 실제 장본인인 제이미 캠벨이 고백하듯, 자신의 드랙 퀸 페르소나(실제 제이미의 경우는 '피피 라 트루(Fifi la True)'라는 이름이었고, 극 중 제이미는 '미미 미(Mimi Me)'라는 이름이었다)에 모든 걸 쏟아부어, 드랙 퀸이지 않을 때, '제이미'일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모습까지 이야기에 담아낸 것도 좋았다.
결국 제이미는 드랙을 하든 안 하든 자신은 자신이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거야말로 모든 이들에게 보여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교훈이니까.
뮤지컬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게이 감성이라 그런지 가슴 벅차오르고 '넌 특별해 😘' 하는 느낌의, 드라마틱한 노래가 많다.
나는 특히 <Everybody's Talking About Jaime>랑 <And You Don't Even Know It>이 좋았다.
<Work of Art>는 이 영화에서 거의 케이팝 뮤비 뺨치는 수준으로 기가 막히게 영상화했다.
내가 뮤지컬은 못 봤으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컬은 아무리 공연장이 크고 화려하다 해도 장소(공연장)의 한계가 있어서 어느 정도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이 있는데, 영화는 그런 게 없으니 더 화려하게, 더 대담한 볼거리를 보여 줄 수가 있다.
대충 세도 한 서른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앙상블을 학교라는 배경에 풀어놓고 춤을 추는 장면이나, 교실에서 지루해하던 제이미가 상상의 날개를 펼쳐 패션 쇼 모델이 되어 워킹을 뽐내는 장면,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거의 도로를 다 점령하고 퍼레이드를 하는 장면 등은 진짜 영화라서 가능한 화려한 불거리였다.
아래는 <Spotlight> 무대 영상이다. 노래는 대략 6분 30초부터 시작한다.
이 모든 뮤지컬/영화의 기반이 되는 제이미 캠벨의 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처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 BBC 채널의 다큐멘터리 <Jamie: Drag Queen at 16(2011)>을 한번 찾아보시라.
다음 링크는 자신의 이야기가 웨스트 엔드 뮤지컬로 제작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제이미 캠벨 본인이 BBC에 기고한 에세이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셔도 좋을 듯. https://www.bbc.co.uk/bbcthree/article/e3ebeab8-a351-4289-8b44-7be088b365d4
코로나 때문에 공연 보기도 힘든데 이렇게나마 <제이미에 시선 집중미>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팬데믹이 종식될 때까지 이렇게라도 문화 생활을 영위하며 버텨 보십시다! 영화는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