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Love Hard(2021, 러브 하드) -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러브 액츄얼리>풍 로맨틱 코미디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다이 하드>를 곁들인...
감독: 헤르난 지메네즈(Hernan Jimenez)
우리의 주인공 나탈리(Natalie, 니나 도브레드 분)는 데이팅 앱에서 남자를 만나 망한 이야기를 기사로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기자이다.
오해는 마시라. 그게 그녀의 직업이라 해도 그녀는 늘 희망과 꿈을 안고 데이팅 앱에서 정말로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오늘은 신기하게도 그 믿음이 이루어진 듯하다. 그녀와 매치된 남자는 조시 린(Josh Lin)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핫한 바디에 외향적이고 모험을 즐긴단다.
그와 이야기를 시작해 보니 대화도 너무 잘 맞는다.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가 최고라는 조시는 <다이 하드(Die Hard, 1988)>야말로 진짜 크리스마스 영화라고 주장하는 나탈리와 크리스마스용 영화에 대한 의견은 조금 다를지라도 말이다.
둘은 서로에게 푹 빠져 버렸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어느 날, 조시는 나탈리에게 "크리스마스에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이에 삘 받은 나탈리, 데이팅 앱으로 망하지 않은 적은 처음이라며 반쯤은 기뻐하고 반쯤은 '그래도 실제로 만나 보면 망하게 될 거다. 그러니까 그 경험 가지고 기사 써 와'라고 재촉하는 상사 리(Lee, 매티 피노키오 분)의 말에 걱정하며 조시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 조시네 집에서 나오는 그 남자는 웬 안경 낀 완전 어벙해 보이는 남자? 내가 기대한 그 핫한 남자가 아닌데?
사실 나탈리가 '조시 린'이라고 생각했던 그 핫한 남자는 태그(Tag, 대런 바넷 분)라는 남자였고, 진짜 '조시 린(지미 O. 양 분)'의 친구였다.
안경 낀 조시가 본체고, 자기의 핫한 친구 태그의 사진을 이용해 가짜 프로필을 만들어 데이팅 앱으로 나탈리를 만났던 것이다.
근데 조시의 가족은 나탈리가 진짜 조시의 여자 친구인 줄 알고 경사 났다며 아예 축제라도 벌일 기세다. 나탈리는 화가 나서 집에 가 버리고 싶지만, 조시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크리스마스 휴일 동안 자기 여자 친구인 척해 주면 진짜 핫가이인 태그와 잘되게 그에 대해 다 알려 주고 데이트도 도와주고 다 하겠다고.
기왕 속아서 여기까지 온 거, 진짜 핫가이를 만나는 봐야 하지 않겠어? 나탈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는데...
이 포스트의 부제목으로 썼듯이, <러브 액츄얼리>가 되고 싶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근데 이제 <다이 하드>를 곁들인...
제목이 왜 <러브 하드>인가 했더니 <러브 액츄얼리>와 <다이 하드>의 짬뽕, 반반무마니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놀란 건, 지미 양이 로맨틱 코미디의 남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엄청 빼어나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좋게 봐 주면 보면 귀엽다고 할 수 있겠다...
(하긴, 랜들 파크(Randall Park) 씨도 40대 중반에 로맨틱 코미디 남주인공 역할을 했는데, 30대인 지미가 못할 게 무어냐.)
어쨌거나, 이 영화는 동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의 연애 상대 역으로 나온다는 게, 과연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구나 싶긴 하다.
백인 여성이나 게이 남성이 동양인 남성을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지는 않는 게 사실이니까.
물론 매력적인 동양인 남성이 없다는 게 아니고, 보통 그네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동양인 남성'은 키가 작고 몸도 왜소하지 않나(물론 다니엘 대 킴처럼 완전 핫한 동양인 남성도 있는데...)
지미 양은 그런 고정관념에 속하는 것 같지만 유머러스하고 스윗한 캐릭터를 연기해서 동양인도 '남주인공'이자 '여주인공의 연애 상대'가 될 만큼 매력이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지미 양이 했던 'representation(대표)'에 대한 스탠드업 코미디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이야기는 꽤 전형적으로 진행된다. 내가 저 위에 적은 시놉시스는 영화 트레일러에도 나오는 내용이라 딱히 스포일러랄 게 없는데, 그것만 봐도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눈치 빠르신 분들, 또는 영화 좀 봤다는 분들은 다 짐작 가능하실 거라고 본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또 내가 부제목에 <러브 액츄얼리>풍이라고 썼는데 영화 결말에서도 그렇다 ㅎㅎㅎ 말해 봤자 입 아프니까 더는 말하지 않겠다.
이 영화에 딱히 악역이랄 존재는 없고, 지미 양 캐릭터의 형인 '오웬(Owen, 해리 슘 주니어 분)' 캐릭터가 조금 재수없긴 하다.
해리 슘 주니어가 이렇게 잘난 척하는 캐릭터라니? ㅋㅋㅋ 나름대로 귀엽다.
덧붙여 조시 린의 할머니도 약간 엉뚱한 매력이 있다.
영화 시작할 때 나탈리가 내레이션으로 플라톤의 <향연>에 나온 이야기를 짧게 언급하는데, 솔직히 이게 정말 멋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자주 쓰여서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다는 게 아쉽다.
왜 다들 아시지 않는가. 태초에 사람들은 원래 머리가 둘에 팔이 넷, 다리가 넷, 말하자면 현재 사람들이 앞뒤로 달라붙은 그런 모습이었는데 제우스가 이들이 거만해져 제 주제를 모르고 기어올라 신에게 반항할 것을 두려워해 지금처럼 머리 하나, 팔 둘, 다리 둘인 존재가 되도록 떼어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원래 짝이었던 상대를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 2001)>에서 처음 접했을 때는 정말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슬펐는데,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반쪽의 이야기(The Half of It, 2020)>에서도 나오더라.
거기에선 아예 첫 오프닝 시퀀스가 몇 분가량 그 얘기였지만, 이 <러브 하드>에서는 정말 짧게 언급되고 지나간다.
이 얘기를 정말 그렇게까지 여기저기에서 갖다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헤드윅>에서 이걸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불렀을 때가 진짜 최고로 좋았는데.
<반쪽의 이야기>까지는 나쁘지 않고 그래도 괜찮았다. 이 두 작품은 이 이야기를 갖다 쓸 명분이 있었던 게, 퀴어라는 주인공의 정체성과 연관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브 하드>는 그런 것도 아니잖아? 이 멋지고 감동적이고 슬프고 기발한 이 이야기를 그렇게 간단하게 후루룩 수박 겉핡기식으로 이용하면서 '깊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려 노력한다면, 글쎄, 그거야말로 구림의 또 다른 버전 아닐까.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11월 5일에 공개됐는데, 영화 초반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든지, 등장인물들의 크리스마스 언급 등이 '아, 대놓고 크리스마스를 노리고 만든 영화구나' 하고 직감하게 해 주었다.
나는 솔직히 이걸 <러브 액츄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게 너무 <러브 액츄얼리>를 따라 하려고 애를 쓰면섯도 그만큼 좋지는 않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냥 머리를 비우고, 큰 기대 없이 보면 (나처럼) 그럭저럭 볼만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크리스마스에 <러브 액츄얼리>보다는 차라리 <다이 하드>를 보겠다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탈리 캐릭터가 내 취향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ㅎㅎ...
내 생각에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하더라도 '오글거려' 또는 '유치해'라는 평을 피할 수가 없다.
애초에 그 영화의 대전제가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휴일은 특별한 날이라는 것이니까, 그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정서가 너무 느끼하다, 너무 감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겠지. 뭐든 취향 문제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용 로맨틱 코미디 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나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시는 분들은 츄라이 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