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2021) - 고양이를 사랑한 슬픈 화가, 루이스 웨인
감독: 윌 샤프(Will Sharpe)
영화는 정신 병원 같아 보이는 허름한 곳에 허름한 옷을 입고 머리도 하얗게 센, 약간 미친 사람 같아 보이는 루이스 웨인의 모습을 보여 주며 시작한다.
그 옆에 있는 라디오에서는 루이스 웨인이 얼마나 고양이를 사랑했고,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고양이를 그렸는지에 대한 평이 흘러나온다.
그게 자신의 이야기인지 알기는 할까, 루이스 웨인은 광인 같아 보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형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눈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루이스 웨인과 다섯 누이들의 아버지는 그가 스무 살이던 시절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그가 누이들을 먹여살렸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대상을 보지 않고도 기억에 의존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이용해 신문에 삽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사실 삽화뿐 아니라 음악, 복싱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었지만, 구순구개열(예전에 언청이라고 부르던, 윗입술이 갈라진 선천성 기형)이 있었던 탓에 10살까지는 학교에 가기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겉으로는 아주 재능이 넘치고, 특이하며, 개성이 넘치는 개인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어마어마한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았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털어놓을 곳은 오직 일기장뿐. 일기장에 어둡고 괴이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삽화가로 일하는 신문사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제안받고 (그리고 거절하고) 집에 돌아온 그는, 누이들이 새로운 가정교사를 들인 것을 알게 된다.
에밀리 리차드슨(Emily Richardson, 클레어 포이 분)이라는 이름의 그 가정교사는 참 신기하게도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세 어린 소녀들이나 그 소녀들의 언니인 캐롤라인(Caroline,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분), 그리고 루이스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것 같다.
루이스는 자신이 어린 세 누이들을 가르칠 만큼 많이 아니까 가정교사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러시면 그렇게 하세요. 저도 수업 준비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싫답니다' 하며 짐을 싸기 시작한 걸 보니 말이다.
결국 세 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으니 제발 머물러 달라고 루이스가 애원하는 것으로 끝이 난 이 작은 소동은, 루이스로 하여금 에밀리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루이스는 스물세 살, 에밀리는 그보다 열 살은 더 많지만.
하지만 그의 누이들이 과연 이런 관계를 허락할까? 그래도 웨인 가는 나름대로 귀족이고 에밀리는 가정교사일 뿐인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던 화가 루이스 웨인의 삶에 기반한 영화이다(따라서 현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스포일러라 할 수 없으므로 자유롭게 다 털어놓을 예정이다. 영화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조심하시라).
<셜록>이나 <닥터 스트레인지>, <스타 트렉> 등에서 재수 없고, 사회성이 좀 부족한 거 같고 이상한 괴짜 역을 잘 소화해 낸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역시나 기이한 도인 또는 광인 느낌을 풍기는 화가 루이스 웨인 역을 맡았다.
클레어 포이가 후에 루이스 웨인의 아내가 되는 가정교사 에밀리 리차드슨의 역을 맡았는데, 실제로는 촬영 당시 기준 베네딕트가 45세이고 클레어는 37세에 불과했다. 뭐, 꼭 배우들의 나이까지 현실과 꼭 맞아떨어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루이스 웨인의 삶을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전기(electricity)'와 '고양이'를 꼽을 수 있겠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아내 에밀리의 이름 정도?
일단 아내 에밀리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위에 썼듯 그는 스물세 살에 에밀리와 결혼했고, 참 안타깝게도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에밀리는 유방암으로 죽고 만다.
아내와 함께 귀여운 아기 고양이도 한 마리 주워서 '피터(Peter)'라는 이름도 지어 주고 기르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아내가 정말 너무 일찍 죽어 버려서 루이스의 상심이 컸던 듯하다.
삼 년이면 아직 한창 좋고 알콩달콩할 때인데...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전기. 영화 초반에 이미 내레이터 역할을 맡은 올리비아 콜먼(Olivia Coleman)은 이렇게 말한다.
"Louis Wain believed that electrical forces are what pull us forward in time and help us hold onto our memories. He called electricity ‘the key to all of life's most alarming secrets(루이스 웨인은 전기적 힘이 우리를 시간으로 끌어당기며 우리의 추억을 붙잡게 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는 전기를 '삶의 가장 놀라운 비밀들을 여는 열쇠'라고 불렀다)."
그래서 복싱 경기라든지, 사랑스러운 고양이라든지, 뭔가 생동감이 넘치고 어떻게 저러지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것을 그는 'electrical' 하다고 표현하는데, 그래서 영화 제목에도 'electrical'이 붙었다.
세 번째, '고양이'. 아내와 같이 기르던 '피터'가 후에 루이스가 그리는 고양이 그림의 모델이자 영감이 되어 주었다.
화가 데이빗 티베트(David Tibet)에 의하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건 아니겠지만 지금만큼 '나만 고양이 없어ㅜㅜ' 하고 고양이를 귀엽게 보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하다.
루이스의 고양이 그림이, 영화 속 고양이 애호가가 말하듯, 고양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뒤바꿔 놓았다 할 수 있겠다.
영화에 실제 고양이들뿐 아니라 그가 그린 고양이 그림도 많이 나오는데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흐뭇하게 보실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영화 개봉할 즈음 그의 고양이 그림들도 다시 주목받아 책으로 출간된 모양이다.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를 더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글을 보시라. https://www.anothermanmag.com/life-culture/10560/the-forgotten-artist-who-changed-the-way-we-look-at-cats-louis-wain
루이스 웨인은 노년에는 사우스 런던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지냈다. 누이들이 돌봐 주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서였다.
극빈자들을 위한 병동에 있던 그를 알아본 이 덕분에(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서처럼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본다. 그건 영화적 상상력이겠지) 그를 좀 더 좋은 정신병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모금하자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우리가 아는 그 소설가 H.G.웰즈(Wells)도 이에 참여했다.
결국 그는 런던 북부에 있는 냅스버리 병원(Napsbury Hospital)에서 80세가 되기 한 달 전에 사망했다. 에밀리가 죽고 나서 그도 눈을 감을 때까지 길고 외로운 시간이었으리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이라 이 영화에 다들 많이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왓챠를 보니까 봤다고 별점을 준 사람이 10명도 채가 안 되더라(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확인해 봤을 땐 그랬다).
음... 베네딕트 팬들 힘을 내요!! 베네딕트의 팬들과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보실 만하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스트리밍 중.
+ 내가 이 영화 리뷰를 쓸 때만 해도 국내 개봉 예정이 없었는지 네이버 영화에도 영화 정보가 없었는데 국내 개봉명이 정해진 걸 보니 이제 곧 국내에서도 개봉할 듯하다. 일찍일찍 알려 주지 참... 그런 고로 포스트 제목을 바꾸었다는 뜻(2022년 1월 29일).
++이 글을 쓰는 데 아래 기사들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https://decider.com/2021/11/05/the-electrical-life-of-louis-wain-true-story/
https://www.newsweek.com/electrical-life-louis-wain-based-true-story-1640442
https://thecinemaholic.com/is-the-electrical-life-of-louis-wain-based-on-a-true-story/
https://screenrant.com/electrical-life-louis-wain-title-meaning-expla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