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어맨다 몬텔, <컬티시>
<컬티시>는 언어학자 어맨다 몬텔(그녀의 전작 <워드슬럿> 후기)이 ‘광신의 언어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컬트스러운(cultish)’한 현대 미국 문화의 여러 단면을 살펴본 책이다. “왜 멀쩡한 사람이 사이비 종교나 사기, 음모론에 빠져들까?” 책 소개에서도 하는 질문인데,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공감할 것이다. 사이비 종교인, 사기꾼, 음모론자들이 피해자들을 현혹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언어학자인 저자는 ‘언어’에 집중했다. 근본적으로 사이비 종교인나 사기꾼, 음모론자들이 피해자들과 다소 특별한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1부에 이렇게 썼다.
진정한 해답은 바로 말에 있다. 전달하는 것, 기존 단어를 교묘하게 재정의하는 것(혹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부터 강력한 완곡어법, 비밀 암호 , 개명, 유행어, 성가와 만트라, ‘방언이 터지는 것’, 강요된 침묵, 심지어 해시태그까지, 컬트는 언어라는 핵심 수단을 통해 다양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친다. 착취를 일삼는 영성 구루는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피라미드 설계자, 정치인, 스타트업 CEO, 온라인 음모론자, 트레이너, 심지어 SNS 인플루언서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컬트 언어’를 듣고 거기에 휩쓸린다. 그 방향은 긍정적일 수도, 위험할 수도 있다. 직장에서, 스피닝 수업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 곧 다층적인 ‘컬트’ 멤버십의 증거다. 우리는 그저 무엇을 들을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우리는 맨슨 패밀리의 기괴한 의상과 여타 화려한 ‘컬트’ 아이콘에 정신이 팔려,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복종하게 만들고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컬트 언어의 주요 요소를 살펴보고 이 요소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 어휘에 스며들어 있는지 밝혀 내면서 저자는 단순히 어떤 종교, 예컨대 악명 높은 소위 ‘사이비’ 종교라 해도 단순히 ‘컬트(cult)’으로 명명하는 일을 피하려고 한다. ‘컬트’라는 단어를 가볍게 쓰면 쓸수록 첫째, 우리에게 도덕적 우월감(”저들은 한 무리의 세뇌당한 컬트 추종자일 뿐이야”)을 느끼게 만들지만, 그 원인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둘째, 이런 부정적인 선십견은 실제로 모든 ‘컬트’가 타락하거나 위험하지는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사회학자 바커는 “‘컬트’로 묘사되었거나 묘사될 수 있는 대안 집단을 수천 개 이상 기록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어떠한 범죄 활동에도 연루되지 않았다”고 한다. 존스타운(Jonestown, 미국의 사이비 교주 짐 존스가 창시한 기독계 사이비 종교 ’인민 사원’의 집단 자살이 일어난 곳)처럼 끔찍한 짓을 저질러야만 유명해지고, 가장 파괴적인 컬트만이 이목을 끌면 우리는 모든 컬트가 파괴적이라 생각하며, 동시에 파괴적인 집단만을 컬트하고 인정한다. 그럼 다시 파괴적인 컬트가 더욱 유명해지는 식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문제는 “‘컬트’라는 표현이 사회가 승인하지 않는 종교를 쓰레기 취급 하는 데 너무 자주 이용된다는 점이다. 가장 역사가 깊은 종파들 중 많은 것들이(가톨릭, 침례교, 모르몬교, 퀘이커교, 유대교 및 대부분의 토착 아메리카 종교)이 미국에서 한때는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저자가 인용하는 종교학자 레자 아슬란(Reza Aslan)의 말처럼, “종교학 연구에서 가장 우스운 점은 컬트+시간=종교라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는 어떤 종교가 ‘이단’이고 아닌지를 판단하거나 ‘이단’인 종교를 비난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컬트’가 어떤 언어로 사람들을 현혹하는지를 살펴볼 뿐이다. 이는 현대 우리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지적이다. 기독교가 아닌 많은 이들은 어떤 종교가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걸 구분하는 데 그렇게까지 관심도 없고, ‘저 종교/교회는 사이비/이단이에요!’라고 서로 비방하는 데 피로감을 느낀다. 어떤 종교가 성추행이나 성폭행, 공금 횡령, 살인 사주 등 분명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에 따라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종교인들과 그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이들을 포함해)이 크게 관심 없는 자기네들 교리를 따지며 ‘이건 이래서 이단이다, 사이비이다’ 하는 설교는 굳이 필요 없지 않을까. 저자는 ‘비주류 영성 공동체’를 덜 편향된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신흥종교’나 ‘신진 종교’, 혹은 ‘소외 종교’ 같은 중립적인 용어를 제안한다. 물론, “이런 표현은 학문적 맥락에서는 문제없이 쓰이지만 크로스핏이나 다단계 마케팅 회사, 대학 연극 과정을 비롯해 영향력 스펙트럼 안에서 명확히 분류하기 어려운 대상을 묘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컬트와 비슷하면서 반드시 초자연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컬트적(cultish)’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컬트 언어의 주요 요소를 이렇게 정의한다.
해마다 우리는 묻고 또 묻는다. 사람들은 왜 존스타운이나 헤븐스 게이트 같은 컬트 집단에 들어갈까? 왜 그곳에 남을까? 그들이 거칠고 이해할 수 없는, 때로는 섬뜩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 대답은 다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어라는 궁극적인 권력 도구를 바탕으로, 전향(conversion), 조건형성(conditioning), 강제(coercion)라는 체계적인 기술을 활용한 덕에 존스와 애플화이트는 털끝 하나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추종자들에게 어마어마한 폭력을 가할 수 있었다.
영향력의 스펙트럼 안에서, 컬트적 언어는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사람들이 스스로 특별하다고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만든다. 러브바밍이 여기에 속한다.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은 관심과 이해, 용기를 북돋는 말, 취약함에 대한 요구, “바로 당신, 당신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왕국으로 향하는 엘리트 원정 팀에 합류하도록 지명되었습니다”라는 말. 이런 언어를 들으면 즉각 사기 경계 태세에 돌입하는 사람도, 혹은 그저 빈말이라는 사실을 간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갑자기 ‘딸깍’ 하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은 어느 순간 이 집단이 유일한 해답이며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낀다. 순식간에 발생하는 이런 경험 때문에 집단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전향이라고 한다.
그러고 나면, 다양한 언어 전술을 통해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고, 집단 바깥의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여겨진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행동을 학습하는 이 무의식적 과정은 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작업을 조건형성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외부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한 집단에 충성하는 건 바로 이 조건형성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어는 사람들이 기존의 현실, 윤리의식, 그리고 자의식과 완전히 상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여기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최악의 경우 개인이 파괴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강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던 건, 저자가 여러 장에 걸쳐서 보여 주는 다양한 ‘컬티시’ 집단의 면면에서 우리가 이미 아는 여러 ‘사이비’ 종교들이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를 끝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위아더월드’라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혹세무민하는 자들은 다 똑같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컨대, 3HO라는 ‘대안 종교’는 미국 전역에 쿤달리니 요가 교실은 운영하는 곳이다. 요기 바잔이라고도 불리는 하르바잔 싱 칼사(Harbajan Singh Khalsa)라는 남자가 그들의 리더인데 그들의 이념은 “요기 바잔의 엄격한 뉴에이지 가르침을 따르는 것. 여기에는 육류와 알코올 섭취 금지, 요기 바잔이 정해 준 상대와 결혼하기, 매일 아침 네 시 반에 일어나 경전을 읽고 요가 수업에 참석하기, 추종자가 아닌 …… 혹은 곧 추종자가 되지 않을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기 등이 포함된다.” ‘요기 바잔이 정해 준 상대와 결혼하기’는 통일교 합동 결혼식을 연상시킨다. (참고로, 아이허브를 이용하거나 미국 슈퍼마켓에 가 보신 분들은 한 번쯤 들어 봤을 ‘요기 티(Yogi Tea)’가 바로 이 요기 바잔이 창립하고 소유한 브랜드이다.) 또한 3HO에서는 신도들에게 새 이름을 부여한다.
3HO의 비밀스러운 만트라와 암호를 이기면서 타샤는 그 누구와도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선택받은 사람. 더 높은 진동을 지닌 사람. 집단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면서 연대감은 한층 더 강해졌다. 요기 바잔이 임명한 작명가는 일명 탄트라 수비학(數祕學)이라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추종자들에게 특별한 3HO 이름을 지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 여성은 모두 카우르(Kaur), 남성은 싱(Singh)이라는 중간 이름을 받았다. 성은 모두 칼사(Khalsa)였다. 하나의 대가족처럼. “새 이름을 받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었어요.” 타샤가 말했다. “운전면허증의 이름을 바꾸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죠.” 작년까지만 해도 타샤 사마르의 캘리포니아 신분증에는 ‘다야 카우르 칼사’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신이다>를 보신 분들은 JMS가 자기가 아끼는 사람에게 ‘정’씨라는 성을 준다는 한 피해자의 증언을 들으셨을 것이다(그 피해자뿐 아니라 현재 JMS의 제2인자도 같은 방식으로 ‘정’씨의 이름을 하사받아 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걸 알고 있는 상태로 이 부분을 읽으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정말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은 어디 학원 가서 똑같은 걸 배워 오는 걸까?
이뿐만이 아니다. ‘사이언톨로지’라는, 톰 크루즈가 몸담은 유명한 ‘사이비’ 집단은 여러분들도 익히 들어 보셨을 텐데, 그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허용한다고 한다. JMS가 소위 ‘모사(謀事)’, 신천지에서는 ‘모략(謀事)’이라 하는 개념과 똑같다.
내가 결국 배우게 되었겠지만 ‘사이언톨로지 법>워그법’이라는 부등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워그(wog)’는 외부인을 의미한다. 오래된 인종 비하 단어와 관련이 있는 듯하지만, 정확한 언어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 사이언톨로지스트 여럿의 증언에 따라면, 워그에게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코스가 따로 있을 정도다. 트레이닝 루틴 라이(Training Routine Lie)를 줄여 TR-L이라고도 부르는 프로그램인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이언톨로지스트들은 TR-L을 통해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로 거짓말하는 기술을 배운다. 마저리 웨이크필드는 진술서에서 OSA 활동 당시 어떤 판사를 성범죄로 무고하도록 강요받은 사건을 자세히 기술한다. 해당 판사는 사이언톨로지에 관한 사건을 담당할 예정이었는데, 아마도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제거하고자 했던 교단이 마저리를 시켜 판사가 성추행했다고 주장하도록 한 것이다. 마저리가 증언 전에 위증에 관해 상급자에게 묻자, 그는 허버드 방침을 인용해 대답했다. “최대의 다이내믹을 위한 최대선.” 사이언톨로지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마저리의 TR-L을 활용해 순종하라는 뜻이었고, 결과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의미였다.
이 사이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으스스하고 기분이 불쾌해지니 좀 흥미로운 이야기로 주의를 돌려보자. 흔히 ‘방언(方言)’이라고 하는, “종교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외국어 단어처럼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이 행위”는 ‘글로솔라리아(glossolalia)’라고 하는데 이게 발화자의 모국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한국인 글로솔라리아 발화자라면, 글로솔라리아를 발화하면서도 한국어에서 들릴 법한 음성 및 음운 규칙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신기했다. 종교는 믿음이니 신이 있다, 없다, 어떤 신이 옳다고 가타부타 따질 수 없지만 언어학적으로 글로솔라리아를 연구할 수는 있다! 이 얼마나 멋진가.
드 레이시 같은 연구자들은 글로솔라리아 발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전부 외국어는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이 단어들은 사전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발화자의 모국어와 동일한 음성 및 음운 규칙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 모국어 화자가 방언을 할 때 /dl/ 자음군으로 단어를 시작할 리는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이 음성이 영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히브리어 같은 다른 언어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불가리아어 화자의 방언에서 미국식 R계 /r/ 발음을 들을 리도 없다. 요크셔 출신 화자라면 방언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북부 영어 억양의 특징들을 중단하진 않을 거다.
이 외에도 ‘소울사이클’이라는, 스피닝 위주의 헬스 클럽 프랜차이즈와 MLM(Multi-level Marketing, 즉 다단계 마케팅) 등을 통해 ‘컬티시’한 언어가 얼마나 우리 삶, 문화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짚어 보는 4부와 5부도 무척 흥미롭다. 우리가 왜 ‘컬트’에 빠지는지를 언어학적인 면에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언어학을 잘 몰라도 그저 흥미 또는 교양을 위해 읽어도 무관할 정도로 어려운 내용은 딱히 없으니 안심하시라. 이 책을 읽고 작가가 마음에 든다면 <워드슬럿>도 한번 살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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