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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Eddie Huang, <Fresh Off The Boat>

by Jaime Chung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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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Eddie Huang, <Fresh Off The Boat>

 

 

1990년대 미국 플로리다에서 대만 출신 이민자 가족이 미국에 적응하며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 <Fresh Off The Boat(프레시 오프 더 보트)>는 국내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이 미드는 에디 황(Eddie Huang)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에디 본인이 쓴 동명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건 미드가 시작할 때 오프닝 크레디트에도 나오니까 아마 다들 아시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프레시 오프 더 보트>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한 3시즌까지는 재밌게 본 걸로 기억한다. 에디 역을 맡은 아역 배우가 너무 귀엽고 연기를 잘해서 흐뭇하게 보곤 했다. 어느 날,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이 영상으로 인도했다.

 

퀄리티 컬쳐(Quality Culture)는 TV 쇼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를 잘 만드는 곳이라 내가 눈여겨 보던 크리에이터들인데, 내가 좋아하는 시트콤에 관해 영상을 올렸다? 이건 안 볼 수가 없었다. 퀄리티 컬쳐는 ‘이 쇼는 에디 황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했으나 가족을 위한 TV 프로그램과 현재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대표하는 일의 어려움 등의 한계로 원작을 있는 그대로 잘 옮기지 못했다’는 요지로 비평했다. 이걸 보고 난 후 나도 이 자서전을 읽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바로 오디오북을 구해 듣기 시작했다.

퀄리티 컬쳐 말대로, 시트콤은 원작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 자서전을 읽고 나서 보니 미드는 거의 뼈대만 빌려 왔다뿐이지 실제로 비슷한 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실제 에디 황은, 자서전에서 밝히듯이 정말로 머리가 비상한 사람인데 (그를 비롯한 황 씨네 아들 세 명 모두 학교에서 한 IQ 검사 결과가 아주 높게 나왔단다) TV 속 캐릭터인 에디는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악동일지언정 그런 느낌은 별로 못 받았다. 그리고 실제 에디 황은 학생 때 학교에서 몰래 포르노도 팔고, 마약도 팔고, 동생을 위해 다른 학생과 싸우다 얼굴에 크게 얻어맞기도 하며, 나중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 사람을 쳐서 체포되기까지 한다. 자서전 후반, 그러니까 20대부터는 대학에서 좋은 교수님을 만나 배우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며, 변호사도 되었다가, 일자리를 잃은 이후 요리에 매진하는 등 (그는 ‘바오하우스’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TV 쇼는 그걸 다 담지 못했다. 아무래도 에디 황(과 동생들)이 어릴 때 이야기에 집중해서 그런 것 같다.

무엇보다 제일 아쉬운 건, 에디 황을 비롯한 인물들의 캐릭터가 좀 단순해졌다는 것이다. 일례로, (퀄리티 컬쳐도 이야기하지만) 에디 황이 힙합 음악에 빠진 건 단순히 그게 그냥 ‘멋져’ 보여서가 아니었다. 그는 어릴 적에 이미 이민자로서, 소수파에 속하는 존재로서 억압받는 처지를 인지하고 있었고, 흑인들이 힙합을 통해 그런 사회를 비판하고 거기에 저항하는 모습에 공감했던 것이다. 그런데 TV 속 에디는 그냥 ‘쿨함’을 위해 힙합을 좋아하는 것처럼, 아니면 그냥 애가 좀 ‘독특’해서 힙합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성격도 시트콤에서는 다소 어수룩한 면이 있어도 대체로 좋은 아빠이고 좋은 비즈니스맨이라는 느낌인데, 실제로 아버지는 그렇게까지 다정하고 친근한 아빠는 아니었던 모양. 자서전에서 에디 황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심술궃게 말한 일화를 여럿 소개한다. 일례로 스포츠 캐스터가 되고 싶어 하는 에디에게 “텔레비전에 너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내보내진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고. 아니, 아버지 너무하세요… 그래도 다행인 건, TV에서도 실용적인 걸 좋아하고 자녀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성격은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점. 에디가 인종차별적인 단어로 에디를 괴롭히는 백인 남학생과 싸워 정학을 당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학교로 찾아가 이게 얼마나 부당한 일인지 따진 일화도 시트콤에서 본 것 같다(혹시나 그런 에피소드가 없다고 한다면 댓글에서 당근 이모지를 흔들어 주세요 😶‍🌫️🥕).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그래서 더 이 책을 더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저자 에디 황이 직접 낭독을 했는데 대화를 읽어 내려갈 때 저자 자신도 즐거운지 킬킬 웃기도 하는 걸 보고 신나게 녹음 작업을 했겠구나 싶어서 흐뭇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정진정명 힙합의 길을 걸어 온 사람이라 그런지 구어체 말투가 엄청 힙합스럽고 (예컨대 친구를 가리켜 “my boy”라고 한다든가, “hey”보다 “yo”를 더 자주 쓴다든가, 상대를 “son”이라고 부른다든가 등등) 분명히 흑인 말투(Blacent)가 있다. 나는 힙합 음악은 취향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그쪽을 더 잘 아는 분이라면 에디 황이 힙합 얘기를 할 때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예컨대 투팍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충격과 슬픔 같은 것). 만에 하나 힙합 말투를 배우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을 교과서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어쨌거나, <프레시 오프 더 보트> 팬으로서 시트콤에서 볼 수 없었던, 실제 인물의 생생한 삶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자서전도 읽어 볼 만하다. 특히 오디오북 버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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