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박윤진,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잠깐 간단한 질문 하나. 여러분이 독자로서 서평을 쓰기 제일 어려운 책은 무엇인가요? 의미가 너무 깊고 오묘해서 내가 감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책? 줄거리가 형편없는 책?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냥 그래서 딱히 좋은 점도, 그렇게 비판할 거리도 없는 책’이다. 나에게 어떤 의미로든 생각할 거리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책에 관해 이렇다 할 의견을 형성하지 못하는 책이 내겐 서평을 쓰기 제일 어렵다. 반대로, 엄청 마음에 들거나 엄청 마음에 안 드는 책은 서평을 쓰기 무척 쉽다. 어떤 의미로든 내가 강렬하게 느끼는 바를 털어놓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서평을 쓰기 쉬운 책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분명해 보이는 제목이나 표지 그림은 ‘직장인들에게 인문학적 위로를 건네는 책’이라는 콘셉트와 잘 어울린다. 나도 그 점에 흥미를 느껴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거고. 문제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타깃으로 삼은 독자가 내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대학교 졸업 이후 사회 생활도 웬만큼 해 봤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직장인들 공감짤’에 거진 다 공감하는 (다시 말해 직장/사회 생활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타깃 독자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내가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편한 마음으로, 또는 공감하며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뜻이다.
목차부터 살펴보자. 이 책은 카프카의 <변신>, 장 폴 사르트르의 <닫힌 방>,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 열두 편의 인문학(문학이 대부분이고 경제학과 철학 도서도 포함) 도서, 그리고 보너스로 만화 <짱구는 못 말려>의 이야기를 통해 직장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총 열세 권의 도서 중 여성 작가의 책은 딱 두 권,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과 버니지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뿐이다. 또한 각 꼭지는 각각 ‘평범한'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그 직장인이 해당 꼭지의 도서를 읽으며 그 의미를 곱씹어보고 직장인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는 생각을 하게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여성 주인공은 단 세 명에 불과하다. 경력 단절 여성, 고졸 출신 직원, 그리고 <데미안>을 읽는 직원. 주인공의 성비를 5 대 5로 맞추는 형식적 평등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책 내에서 여성이 묘사되는 방식은 아주 한정적이다. 남자 주인공의 아내이자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의 어머니, 경력 단절 여성, 고졸 출신 직원, <데미안>을 읽는 대리(놀랍게도 이 인물에겐 이것 외에 딱히 개성이랄 게 없다), 그리고 굳이 또 끼워 넣자면 한국 자본주의 황금기의 그늘을 묘사할 때 언급된 ‘벌집촌 공순이(저자의 설명처럼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생계와 동생들의 공부를 위해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여공을 비하하는 말이고, 벌집촌은 이들이 살던 좁은 골방들이 모여 있던 곳을 말한다”)’ 정도이다. 이 외에 회사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지만 허무함을 느끼며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내가 잘한 게 맞는 건가 회의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남성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여성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으면 일단 기본 설정은 무조건 남성’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성(性)을 드러내는 표현, 예컨대 ‘아내’나 ‘여자 친구’, ‘군대 (시절)’, ‘아빠’(그 인물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임) 같은 단어를 찾았다. 그렇게 남성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있는 꼭지의 주인공들이 앞에서 언급한 딱 세 명 빼고 나머지 전부라는 거다.
이 책의 목차에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있는 걸 봤을 때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이 책을 시도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고 많은 책들 중에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요? 여성 혐오가 은은한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배어 있는 소설 아닌가. 혹시 모르실 분들을 위해 <달과 6펜스>를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스트릭랜드라는 증권 거래소 직원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까지 버리는” (본문에서 그대로 인용) 내용이다. 그는 파리로 떠나서 그림을 그리다가 타히티로 가서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한다. 제목의 <달과 6펜스>는 각각 예술과 돈을 상징한다. 스트릭랜드는 저자 말마따나 “자기 그림에 대해 누가 뭐라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에 대해 그처럼 철저하게 무관심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그림에 미쳐 있었다.” 자, 여기에서 유독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의 향기를 맡으실 수 있으신 분? 잘 모르시겠다면 김용언 외 7인이 쓴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중 <달과 6펜스>를 비평한 꼭지를 인용해 보겠다.
이 소설에서 스트릭랜드와 함께 산 세 명의 여성은 그의 광기나 예술적 욕구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스트릭랜드는 생계부양자 의무를 저버리고 부인과 자식들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이후 파리로 가서는 화가 더크 스트로브에게서 그의 아내인 블란치를 빼앗지만, 블란치를 사랑하기는커녕 홀대하고 무시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나한테 버림을 받아서 자살한 게 아냐.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라 그랬지”(205)라고 말할 뿐이다. (…)
세 여성은 오직 스트릭랜드의 판단에 따라 평가되고, 그 의미가 부여된다.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건 기독교의 망상 가운데서도 제일 터무니 없는 망상이죠”(287)라며 주체로서의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스트릭랜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여성 인물은 철저히 그의 도구로만 재현된다.
스트릭랜드가 오로지 예술에만 전념하는 순수한 ‘달’에 비유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여성들은 속물적이고 관습에 의존하는 ‘6펜스(과거 영국 화폐의 최소 단위)’로 그려진다. <달과 6펜스>의 한국판 작품 해설에는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블란치, (…) 가정을 떠났을 때 저주를 퍼부었던 남편이 천재로 알려지자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하는 스트릭랜드 부인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찬 현실 세계는 (…) 스트릭랜드의 삶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313)라고 쓰여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달과 6펜스>의 문제는 단순히 스트릭랜드를 여성 혐오자로 그린다거나 여성 비하, 멸시 발언이 수없이 등장한다는 데 있지 않다. 여성을 모욕하는 언행을 직접 듣거나 수없이 등장한다는 데 있지 않다. 여성을 모욕하는 언행을 직접 듣거나 혹은 전해 들은 화자 ‘나’가 스트릭랜드를 변호하거나 옹호하면서 그를 자유롭고 위대한 영혼으로 치켜세워주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여기서 서머싯 몸은 “스트릭랜드는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가 위대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221)라는 식으로, 즉 화자인 ‘나'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스트릭랜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서술 방식을 택한다. 또한 스트릭랜드의 비도덕성을 비난하면서도 속세에 찌들지 않은 예술에 대한 고결한 열정을 부각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벌레가 되어도 출근은 해야 해>의 저자는 서머싯 몸의 소설이 예술과 돈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조차 하지 않고 거침없이 예술을 선택한,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담은 내용인 것처럼 묘사하고, 여성 혐오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스트릭랜드를 살짝 비판하려는 듯, 가정을 유지하는 것과 예술이라는 가치를 조화시킨 브뤼노 선장이라는 극 중 인물을 칭찬한다. 앞에서 스트릭랜드의 외곬수적인 면모를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처럼 묘사해 놓고 말이다. 뒷수습이 너무 형편없지 않나. 수습을 할 거면 이 작품 내에 넘쳐나는 여성 혐오와 유독한 남성성에 대해 코딱지만큼이라도 언급했어야 옳다. 물론 그런 건 이 책에 일언반구도 없다. 애초에 왜 예술과 가정을 반대되는 가치처럼 그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꼭지의 주인공은 결국 <달과 6펜스>를 읽으며 젊은 시절 ‘그룹사운드’를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오랫동안 방치해 놓았던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이 취미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니, 누가 결혼한 중년 남성들에게 취미를 가지지 말라고 했나? 가족 구성원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유대감이 잘 형성된 상태라면 오히려 남편/아빠가 취미 생활 즐기는 걸 권하고 격려할 것이다. 문제는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식으로, 자기가 하는 취미에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주제에 그걸 가족 구성원(대개는 동등한 파트너여야 할 배우자)과 커뮤니케이션할 생각이 없는 태도다. 남편이 집안일도 자기 몫을 잘하고 (’도와주는’ 게 아니다!) 아이 육아(단순히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 이외에 적절한 훈육 포함)까지 잘한다면 당연히 허락하겠지. 이런 문제는 십중팔구는 남자 쪽이 가정의 일원으로서 기대되는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 아닌가.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요소가 하나하나 쌓여서 나에게 분노를 빵 터뜨리게 만들었다. 다뤄지는 책 열세 권 중 여성 작가가 쓴 책은 딱 두 권 뿐, 각 꼭지의 주인공이 되는 여성은 세 명뿐이며, 여성 혐오적인 소설을, 이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직장인에게 보내는 위로 운운하며 선정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그렇다고 경력 단절 여성과 고졸 출신 직원 묘사가 이 모든 걸 다 뛰어넘을 정도로 적확하며 여성의 시점을 잘 드러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참고로 고졸 출신 김 과장이라는 인물은 분명히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왔고 능력도 있는데 대졸 직원들에게 밀려 진급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한다. 나는 여기에서 저자가 정말 현실을 잘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여자가 직장에서 받는 차별의 기준이 정말 고작 학력 하나뿐일까? ㅎㅎ 남녀 차별은 기본이라 눈에 뜨이지도 않으니 그건 상상도 못 해서 언급조차 못하신 거죠? 이렇게 나를 빡치게 만드니 ‘-던지’와 ‘-든지’도 구분 못하고, ‘풀릴 때로 풀린*’(’풀릴 대로 풀린’이라고 써야 맞는다), ‘어떡해요’ 대신 쓰인 ‘어떻게요’ 등 처참한 수준의 맞춤법 오류로 도저히 애교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 책에서 ‘위로’를 건네는 다른 책들이 다 거지 같다거나, 다른 책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모두 다 쓰레기라는 것은 아니다. 웬만큼 좋은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걸로 내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얼마나 멋있는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 주든, 그 ‘자유인’은 절대 여성인 내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사상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혹자는 ‘각 꼭지 주인공에 남성이 많은 게 뭐가 중요하냐. 성별과 상관없이 인간이면 다 같이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 또는 생각이라는 게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그냥 ‘물타기’하려는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구체적인 어떤 인물들의 상황에서 특수성을 제거하는 것은 그 중요성을 끌어내리는 술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 최근 영화 <Barbie(바비)>(2023) 한국판 포스터 문구로 논란이 되었던 일을 기억하시는가? 원래 미국판 포스터엔 분명히 ‘Barbie’s everything(바비는 모든 것)’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한국판에는 어이 없게 그저 ‘바비’라고만 표기돼 있었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 자체가 굉장히 여성주의적이라 해당 문구는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를 보여 주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여성이 가진 특수성을 제거하는 것이며 여성의 자리 및 가치를 축소하려는 시도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면, 조던 필 감독의 <Get Out(겟 아웃)>(2017)은 흑인이 가진 특수성(흑인이 차별받고 핍박받아 온 역사)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특수성을 지워 버리고 ‘모든 인간(=대체로 백인)이 공감할 수 있는 공포’라고 말한다면, 그건 물을 심하게 타는 것이고 흑인의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여성, 흑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등 분명히 소수자가 가진 특수한 상황이자 입장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제거하면 성, 인종, 신체적 조건, 또는 성적 취향과 무관하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뭔가가 되나? 공감이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구체적인 데서 기인하는 법이다. 그래서 각 꼭지의 주인공을 ‘평범’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인물로 그리려는 노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대부분 남성으로 만듦으로 인해 저자는 각 인물을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지루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애초에 각 꼭지의 주인공은 이름도 없이 차 대리, 손 차장, 박 대표 등, ‘성+직위’로 불린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인물들은 독자가 이입할 만한 어떤 구체적인 인물상을 그려내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권할 만한 게 못 된다. 직장 생활에 찌들어 힘든 직장인,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사서 읽을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것이라도 사서 드시는 게 낫다. 아니면 친구와 캔 맥주라도 사서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며 스트레스를 풀든가. 이 책은 독자에게 도움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 불행히도 이 책을 이미 읽었다면, 이 책이 끼워넣었을 수도 있는 유해한 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다른 좋은 책을 읽으실 것을 권한다. 추천할 만한 책은 내가 위에서 인용한, 김용언 외 7인이 쓴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따로 서평을 쓸 예정이다. 이 서평도 꼭 읽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세상에 나쁜 아이디어를 내놓는 책이 있으면 그걸 퇴치하는 책도 있어야 하니 말이다. 다음 책 리뷰 시간에 봐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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