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민지, <언니네 교회도 그래요?>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확실하게 해 둘 것 하나: 나는 무교이고, 정확히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유도하고 영감을 주는 것들은, 그게 종교이든 초자연적인 존재이든 다 긍정하는 편이다. 내가 실제로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믿으며 어떤 긍정적인 가치, 예를 들어 친절함이나 다른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연민, 정의(正義) 등을 실천하려고 실제로 애쓰게 된다면,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
사실 나는 어릴 적에 부모님의 강권으로 교회에 나가곤 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점심시간 때쯤 여성 신도들이 지하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준비한다는 점이나 그 식당에 국수가 자주 나왔다는 점 정도이다. 사랑과 연민을 기조로 하는, 사람들을 더 좋은 길로 인도해야 할 종교가 성차별적인 관습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거야말로 모순이고 타개해야 할 악습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었다.
카톨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한국 개신교 교회는 성차별이 만연했다. 일단 여성 목사는 좀처럼 보기 힘들고, 여성 신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권력’이나 ‘권위’가 있는 자리에 여자를 앉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뿐이랴. 일단 신자가 읽든 비신자가 읽든, 성경 자체가 고루한 성 고정관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몇천 년 전에 쓰인 글이다 보니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관습을 담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이 오래된 텍스트를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글자 그대로 취사선택하며 읽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지 말라’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지만 현대 기독교인 중에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어패류 섭취를 피하는 이는 없다(진성 유대인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성혐오적인 원문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게 말이 되나?
이 책은 ‘믿는 페미’라는 이름의, 페미니스트 개신교 여성 신자들 모임 일원들과의 대화를 많이 수록하고 있는데, 개중에 이를 잘 보여 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이렇다.
E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처음으로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
말씀을 보는데, “너희는 음란한 창녀를 조심하고”라는 대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한테 “저는 남창을 조심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애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 목사님도 “음……” 하시면서 답을 못 찾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남자애 하나가 ‘너 되게 예민하다’는 식으로 쳐다보다가 나중에 죽어서 베드로한테 물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날의 상황은 그렇게 웃으면서 넘어가긴 했는데 ‘나는 누굴 조심해야 하지?’라는 의문은 남았어요. 또 ‘너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판단하면서 왜 나는 죽어서 물어보라고 해?’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E의 질문은 사뭇 진지한 것이었으나, 모임 구성원들은 이를 민망해하며 웃어 넘기려 하거나, 사후에나 던져야 할 물음으로 치부하며 E를 예민하고 엉뚱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E의 물음이, 아무런 의심 없이 성경의 여성혐오 정서를 수용해온 이들의 ‘의식을 흔드는’ 영리한 질문이었다는 방증이다. 여성은 남창을 조심해야 하느냐는 E의 질문은 성경이 여성에게만 죄인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죄의 상징도 여성의 시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새 지식과 새 언어’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무신론자이다. 하지만 세상에 신이 있다면, 또는 있어야 한다면 존재 자체가 사랑이고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그저 무한한 사랑만을 주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내가 어릴 적에 읽었던 한 신학자(김현경 씨로 기억하는데,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틀릴 수도 있다)의 표현대로, “우리의 삶이 무너져내릴 때 우리를 위해 눈물 흘려 주는” 그런 신 말이다. 신이라면 인간의 조그맣고 편협한 마음을 넘어서서 존재할 테니,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성별 따위로 차별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교회에서 여성혐오적인 잘못된 해석을 걷어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옳게 따르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에 대한 지식이 쌓여갈수록 B는,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교회 내 성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수께서 몸소 보이시며 가르치신 삶과 일치하는 바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
일례로,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인류 최초의 여성인 하와가 (인류 최초의 남성인)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것 때문에 “여성은 남성에게 속한 부수적인 존재”라고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저자는 구약학자 필리스 트리블(Phyllis Trible, 1932~)의 말을 인용하며 ‘돕는 배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창세기 2장에 사용된 ‘돕는’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에 대해서만 사용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요, 구원자”(시 70:5)라고 말하거나, “우리의 도움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시 121:2)고 고백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보다 낮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여자는 모든 본질적인 면, 즉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남자와 대등한 돕는 자’, 함께 지내며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주석: ✲✲ 메리 스튜어트 밴 르우윈, 앞의 책, 48~49쪽)
돕는다고 해서 낮은 자가 아니라는 이 학자의 말은 나에게도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맞다, 우리가 서비스직 직원들에게 서비스를 받는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보다 낮은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않아야 하는) 것처럼.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해외에 선교를 가서도 여성은 ‘사모님’으로 불리며 현지어를 공부하거나 아이를 양육하는 위치에 머무르게 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해외 선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며 관련 경험을 쌓기 위해 일 년간 해외 선교지에 머무른 I라는 인터뷰어의 말에 의하면, “현지에는 여성 사역자를 지칭하는 용어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사역자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한다 여기고 남성 사역자만 인정하려 드는 태도는 많은 여성을 낙담케 한다.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다른 성별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의미가 될 수 없음에도 그 안에 분명한 위계를 두고 주도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편협한 사고의 결과 한국 교회는 오지에 나가 자신의 젊음을 투신하기로 결단했던 좋은 사역자를 잃었다.
심지어 잘 살펴보면, 교회 내에서 통용되는 ‘죄’의 의미조차 남성 기준으로 정의되었다.
남성을 기준으로 둠으로써 일어나는 여성혐오는 비단 사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종류의 혐오는 교회 내 일상 속에서 아주 다양한 결로 나타난다. 그중 사유해볼 만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교만의 문제다. 기독교의 교만은 하나님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을 높여드리지 않고 스스로 잘난 체하며, 겸손하거나 온유함 없이 건방지고 방자함을 이르는 말이다. 많은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교만을 경계하라고 자주 강조한다. 교만을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최고의 범죄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크리스천들이 처한 현실을 보다 세밀히 들여다보면, 교만에 대한 이러한 정의 역시 남성 젠더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신교 목사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가 교만을 인간의 죄로 규정하며 회개를 촉구했을 때, 여성신학자 주디스 플라스코(Judith Plaskow, 1947~)는 죄에 대한 니버의 정의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에게는 교만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자기를 낮추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많은 여성이 평생 더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며 살다가,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비천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고. (…)
하지만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깎아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밖에 못 만드셨어요”라고 말하는 셈이니까. 그렇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부인하는 교만이 아닐까.
이 외에도 한국 개신교 교회 내에는 정말 통탄할 만한 현실이 곳곳에 펼쳐져 있고, 이 책은 그걸 잘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다 인용하며 보여드릴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이 한국 개신교 교회 내의 성차별과 맞서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을 아주 높게 사고 싶다. 나는 페미니즘은 어느 분야에나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솔직히 ‘여성신학’이라는 학문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걸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나는 어떤 종교와도 무관하다. 낡은 악습을 뿌리뽑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좋아서 읽었을 뿐, 개신교가 아니라 불교나 이슬람교, 힌두교 등 어떤 종교라도 이렇게 강인하고 멋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읽었을 것이다. 다른 종교 내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과 관련한 책이 있다면 꼭 추천해 주시라. 기꺼이 읽고 후기를 쓸 의향이 있다. 일단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종교인들이여, 종교라는 것이, 믿음이 꼭 이성(理性)과 반대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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