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Glass Castle(더 글래스 캐슬)>(2017)
얼마 전에 리뷰를 쓴 저넷 월스의 회고록 <글라스 캐슬>을 기반으로 한 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작 회고록이 훨씬 낫다. 영화는 원작에서 묘사된 저넷의 부모가 저지르는 방임과 학대를 많이 축소하고 감상주의를 곁들여 ‘아 그래도 부모님의 사랑은!’이라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이제 원작과 영화를 좀 더 자세히 비교해 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저넷(브리 라슨 분)은 자유로운 영혼들인 부모, 엄마 로즈 메리(나오미 왓츠 분)와 아빠 렉스(우디 해럴슨 분)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자매로는 위에 로리 언니(사라 스누크 분), 아래로는 남동생 브라이언(조쉬 카라스 분)과 막내 여동생 모린(브리젯 런디-페인 분)이 있다. 약혼자 데이비드(맥스 그린필드 분)와 함께 그의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한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 저넷은 쓰레기를 뒤지는 여자와 택시 앞에 서서 길을 막던 남자를 본다. 그 노숙자들은 바로 저넷의 엄마아빠였다. 말쑥한 옷을 입고 값비싼 약혼 반지를 낀 저넷과 추레한 행색의 엄마아빠,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날 밤, 저넷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시작과 끝을 빼고 대부분이 과거 회상인 책과 달리, 영화는 현재-과거를 오가며 보여 주는 구조를 택했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줄 수 있는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가 원작보다 순한 맛인데, 너무 예쁘게 꾸민 순한 맛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모의 방임과 학대를 너무 축소하고, 아빠 렉스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느라 엄마의 책임이나 중요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
앞에서 밝혔듯 아빠 렉스는 우디 해럴슨이 연기했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실제 인물들 사진이 나오는데, 그걸 보면 렉스가 잘생기긴 했다. 근데 이제 한량 느낌으로 잘생긴… 우디 해럴슨이랑 비슷하게 생기긴 했는데 성실한 소시민 상은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이 배우 본인의 매력 때문에 렉스라는 캐릭터가 좀 덜 비호감이 되긴 하는데, 사실 원작을 보면 그가 구제불능의 알코올 중독자라는 점과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는 점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만날천날 술만 마시는데 애들은 어떻게 돌보며, 성실하게 일을 해서 양육비를 대겠느냐는 말이다. 게다가 돈을 빌렸는데 갚지 못해서 빚쟁이들이 찾아올까 봐 한곳에 머물러 있지를 못하고 자꾸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이게 애들 양육 및 교육에 좋을 리가 없다. 저자가 십대 초반 때 월스 가족이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웰치라는 동네에 좀 눌러앉게 되긴 하지만. 내가 이 월스 부모에 대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하는 점은, 제도권에 있는 것 또는 권위를 극혐한다는 태도이다. 영화에도 이런 일화가 등장하는데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 저넷이 세 살 때, 배가 고픈데 엄마가 요리를 안 해 줘서 스스로 핫도그를 뜨거운 물에 넣고 조리하다가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원작에도 나오는 얘기다). 저넷은 병원에 입원하고, 어린아이가 요리를 한다는 사실을 수상하게 여긴 사회 복지사와 의사가 저넷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다. 하지만 병문안을 온 가족은 아이가 요리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학대 의혹을 일축하고, 특히나 아빠는 ‘당신 같은 의사가 캐딜락을 몰 수 있도록 비싼 병원비를 내면 우리 가족은 석 달간 굶을 거다’라며 의사를 ‘먹고살아야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이용해 부자를 더욱더 부자로 만드는 시스템’의 일부라며 비난한다. 싸움이 날 수도 있는 그 순간은 사회복지사의 개입으로 무마되었지만, 돈도 없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없는 아빠 렉스는 며칠 후, 동생 브라이언을 시켜 간호사들의 정신을 쏙 빼놓게 하고, 그 사이에 저넷을 들쳐업어 ‘렉스 월스 스타일’로 퇴원한다. 말인즉슨, 돈도 안 내고 그냥 병원을 빠져나왔다는 뜻이다. 두 번째, 저넷이 좀 더 컸을 때, 흑인들이 수영하던 수영장에서 (아침에 1시간은 흑인들이 무료로 입장해 수영할 수 있던 시절이다) 렉스는 저넷에게 수영을 가르친답시고 저넷을 물에 빠뜨리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한다. 죽기 싫어서라도 수영을 배우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를 본 수영장 관리인이 저넷에게 괜찮으냐고 물으니까 렉스는 오히려 ‘네 일이나 신경 쓰라’며 ‘하루의 남은 시간은 백인들이 수영할 수 있도록 흑인들은 아침에 1시간만 수영하게 제한하는 건 옳은 일이냐?’라며 관리인에게 초크를 먹인다.
이자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체계, 시스템, 제도권, 사회, 그걸 뭐라고 부르든 간에,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데는 규칙이 있는데 거기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그건 다 틀린 거고, 따라서 자기들은 그걸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 의사들이 별 치료를 안 하고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아도(혹시 그는 2024년 한국의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회 복지사와 의사가 개입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 수영장에서의 일도 마찬가지다. 인종 차별은 물론 옳지 않은 것이지만, 이 상황에서 수영장 관리자가 저넷에게 괜찮냐고 물은 건, 렉스가 아이를 물 속에 계속 던져 빠뜨리게 만드니까 혹시 애가 학대당하는 것인가 싶어서 물어본 거다. 아이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행위인데 렉스는 이걸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였다. 시민으로서 권위를 의심하고 감시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정당한 권위라면 따르는 게 맞지 않는가. 부당하거나 부패한 권력도 아니고 아이를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의사와 수영장 관리자의 행동에 반발한 게 정말 지독하게 노답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체로 말은 번지르르해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상대방은 홀딱 넘어가기 쉽다. 영화에서는 나름대로 감동적인 일화랍시고, 렉스가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별을 고르게 했다는 일화(원작에도 나온다)를 극화했다. 영화 끝에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가 잠깐 나오는데, 실제 브라이언이 이렇게 말한다. “Dad loved grand gestures that preferably did not require a whole lot of follow up(아빠는 후속 조치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극적인 표현을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을 때 저 하늘의 별들 중 갖고 싶은 걸 골라 보렴, 하는 건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말로만 하면 되는 거니까 쉬워서 좋아했다는 얘기다(이 이야기를 하면서 브라이언, 로리, 저넷, 세 남매 다 웃었다). 어느 정도는 낭만이고 아이에게 꿈을 키워 주는 멋진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어떤 구체적인, 사랑이 담긴 행동이 이 외에도 많이 행해질 때에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주말마다 아이와 캠핑을 가는 아빠가 이런 말을 해 주면 멋지지만, 실제로 집에 양육비도 안 갖다 주고 한평생 술고래로 살아온 아빠가 하면? 정말 입만 살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원작과 영화 둘 다에서도 그려지듯이, 이 월스 가 부모들은 자신의 상황을 더 낫게 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자식들이 도움을 주려고 해도, 불법 점유자인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로리 언니가 뉴욕에 온 부모에게 자신의 아파트에서 머물게 해 주었으나 나갈 생각은 않고 오히려 허섭스레기로 그 아파트를 채운다. 시끄럽게 굴어서 같은 건물의 다른 거주자들과도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가 로리 언니가 집에서 나가 달라고 하니까 나갔고, 동생 브라이언이 자기 집에서 머무르게 해 줄 테니 내 집에서는 술만 마시지 말라는 조건을 걸자 그걸 거부하고 그냥 자기들 차 안에서 잤다. 이런 사람들을 도대체 자녀들이 어떻게 도와야 하지? 심지어 이들이 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역시나 원작과 영화 둘 다에서도 밝혀지듯이, 엄마 로즈 메리의 남자 형제인 짐 삼촌이 죽었을 때 그가 물려받은 땅을 되사야겠다며 부모는 저넷에게 무려 백만 달러를 빌려 달라고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로즈 메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로즈 메리와 짐에게 땅을 비슷한 크기로 나눠 유산으로 남겨 주었는데, 짐이 받은 땅이 백만 달러쯤 한다는 것이다. 두 땅이 비슷한 크기면 그 값도 비슷할 텐데 그렇다면 로즈 메리는 백만 달러라는 큰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본인, 남편, 아이들이 궁핍하게 살게 놔둔 것이다. 본인은 그냥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받아들였다고 쳐도, 아이들은? 원작을 보면 세 남매가 어떻게 (막내 모린은 주로 친구네 집에서 자는 등, 집에 잘 안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궁핍과 가난을 견뎠는지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당연지사였고, 심지어 저넷 본인은 고등학교 때 교내 신문부 일을 했는데 그 덕분에 굶지 않아서 좋다고 썼을까(“수업이 끝나면 암실에 남아 사진을 현상하는 일도 이점이 있었다. 다들 구내식당을 나가고 아무도 없으면 나는 몰래 들어가 쓰레기통을 뒤질 수 있었고,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업소용 옥수수 통조림과 매우 큰 용기에 담긴 코울슬로와 타피오카 푸딩을 찾아내곤 했다. 더 이상 화장실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되었고, 배를 곯는 일도 거의 없었다.” 앞으로 이 리뷰에서 인용하는 모든 인용문의 출처는 저넷 월스의 <더 글라스 캐슬>이다. 최세희가 옮기고 북하우스에서 출간됐다. 내가 이북으로 읽어서 페이지 수를 제대로 밝힐 수 없는 점은 양해 바란다). 이게 아동 학대가 아니면 도대체 뭔데요?
엄마 얘기도 좀 더 해 보자. 원작을 보면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그 나물에 그 밥’임을 알 수 있다. 로즈 메리는 어머니가 닥달해서 따게 한 교사 자격증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싫어했다. <더 글라스 캐슬> 리뷰에도 썼듯이, 어쩌다가 로즈메리가 지도 교사 일자리를 구했을 땐 오히려 아이들이 일하러 가기 싫다는 엄마를 달래서 보내야 했다. 이런 일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있었다고. 이렇게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왜 애를 낳았지 싶을 정도다. 저넷이 아빠로 하여금 술을 끊게 해 보려고 노력도 했고(영화에도 등장하듯이), 엄마에게도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고, 아빠랑 헤어지라고 몇 번 말했는데도 들어 처먹지 않았다.
“난 네 아빠를 떠나지 못해.” 엄마가 말했다.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는 일이야.” 그리고 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너도 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니. 난 스릴 중독자라는 거.”
가톨릭 신앙 어디에 이런 거지 같은 관계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역시나 책 리뷰에도 썼지만, 저넷이 로리 언니를 따라 뉴욕으로 가겠다 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보고 싶을까 봐 심란해하는 거 아니야. 넌 뉴욕에 가게 됐는데, 난 여기 처박혀 있는 게 심란한 거야. 이건 공정하지 못해.” 이 외에도 교사직을 갱신하기 위한 캠프에 다녀오더니 자신은 여태껏 남을 위해 살아오고 자기 삶을 살지 못했다며, 교사직을 버리고 예술에 매진하겠다고 하며 “왜 항상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거니? 네가 해. 너도 돈 벌 수 있잖아. 로리도 돈을 벌 수 있고. 난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해.”라고 대답한 일화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참고로 이는 저넷이 열세 살 때의 일이다. 하, 아빠가 개차반이면 엄마라도 정신을 차려서 애들을 돌봐야 하는데, 부모 둘 다 이렇게 노답이니 애들만 고생을 했지. 영화에서는 아빠를 멋지게, 또 중심으로 만드느라 엄마는 뒷전이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아동 학대에 대한 로즈 메리의 책임도 슬쩍 지워졌다는 인상을 준다. 이건 둘 다 책임이 있는 거라고요!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들을 더 현실적으로, 비판적으로 보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그건 부인하지 않겠다. 영화를 보면 한국인들보다는 미국인들이 더 좋아할 요소들이 여럿 있다. 예컨대, 자립과 독립심, 모험심, ‘개척자 정신’, 그리고 황량한 사막 풍경 같은 것들. 렉스라는 캐릭터가 딱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있어서 실제보다 매력적으로 그려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미국인들도 아동 학대는 우리 한국인들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들을 많이 축소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 영화는 원작 회고록에 비해 순한 맛이다. 영화는 원작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논점, 예를 들어 부모로서의 자격, 책임, 의무, 그리고 한 사회에서 좋은 구성원으로 기능한다는 것, 교육이란 무엇인가 등등을 희석시킨다. 내가 책을 읽으며 부모의 무책임함 때문에 애들이 배를 곯고 힘겹게 살면서, 애들이 좀 처지를 개선시키려고 하면 그걸 방해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혈압이 올라 죽을 뻔했던 것(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렉스는 로리 언니와 저넷, 브라이언이 이 집구석을 탈출하려고 모아 둔 ‘탈출 자금’으로 저금통에 모아둔 돈을 훔쳐 갔다)에 비하면, 영화는 그런 현실적인 고통은 덜고 감상주의, 또는 가족 중심의 가치를 첨가해 ‘아름다운’ 이야기로 빚어냈다. 위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영화 속 저넷은 자기 약혼식에서 부모와 연을 끊는 매정한 자식이 되고, 그러다가 아빠가 죽음이 가까워진 것 같다고, 병에 걸렸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자 고민하다가 엄마아빠가 불법 점유하는 건물로 달려가 어릴 적 추억을 회고하며 하하호호 화해한다. 이렇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감사한 존재들~ 자신의 뿌리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요~’라고 교훈을 주려는 듯한 결말이 아주 내 혈압을 (원작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치솟게 만들었다. 로리 언니가 어떤 남자를 만나 그것 때문에 집에서 도망간 것처럼 그리는 것까지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영화가 꼭 100% 원작의 모든 디테일을 똑같이 따를 필요는 없으니까, 큰 줄기만 같다면 어느 정도 세부 사항은 극화를 위해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이건 해도 너무했다. 아,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원작에서 저넷의 부모는 저넷의 일이 가십을 다루는 칼럼니스트라고 비웃거나 비난한 적이 없다. 오직 영화 속 부모만 그렇다.
저넷 월스의 회고록에 기반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분명 저넷의 부모가 상종 못할 인간쓰레기나 악마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그건 너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너무 뭉개서 대충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감동스러운 가족 사랑 이야기가 되지? 나에게는 <Precious(프레셔스)>(2009)만큼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 이걸 예쁜 가족 사랑 이야기로 만든 게 너무 어이가 없다. 남의 부모니까 너무 모질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위에 내가 한 얘기는 전부 다 원작에 언급된 이야기에 기반한 팩트다), 이 영화는 현실을 너무 축소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영화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영화 속 ‘노숙자’인 렉스와 로즈 메리의 모습이 너무 깨끗한 것도 조금 우습다. 노숙자가, 전기도 안 들어오던 건물을 불법으로 점유해서 사는 사람들이 영화에서처럼 저렇게 살짝 추레한 모습일 수 있나? 실제로는 더욱 더럽고 냄새도 나겠지. 뭐, 영화니까 예쁘게 보여야 해서 너무 리얼하게 분장하기는 좀 어렵겠지만 그래도. 애초에 원작대로 ‘리얼’한 현실을 보여 주느니 감상적인 가족주의로 가자는 노선을 택한 데에서 이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원작 회고록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는 그냥 잊어버리세요. 이런 건 없는 셈 치자고요.
'영화를 보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말 결산] 2024년 11월에 본 영화 (4) | 2024.11.27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Woman of the Hour(오늘의 여자 주인공)>(2023) (3) | 2024.11.08 |
[영화 감상/영화 추천] <Love Lies Bleeding(러브 라이즈 블리딩)>(2024) (4) | 2024.11.06 |
[월말 결산] 2024년 10월에 본 영화 (6) | 2024.10.30 |
[영화 감상/영화 추천] <Laggies (래기스)>(2014) (6) | 2024.10.18 |
[영화 감상/영화 추천] <Gunpowder Milkshake(건파우더 밀크셰이크)>(2021) (10) | 2024.10.04 |
[월말 결산] 2024년 9월에 본 영화 (8) | 2024.09.30 |
[영화 감상/영화 추천] <Lisa Frankenstein(리사 프랑켄슈타인)>(2024) (7) | 2024.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