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곽예인, <나는 거기 없음>
이 책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일단 아주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책은 아이돌 연습생, 페이스북 스타, 유튜브 리포터 등 다양한 일을 했던 저자 곽예인이 살아온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를 단순히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J.K. 롤링의 <해리 포터>를 단순히 ‘한 소년이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되고 호그와트라는 마법 학교에 들어가 놀라운 일들을 겪는 이야기’라고 요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줄이느라 깎여나간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딱 그 말만으로는 사람들이 이 이 작품을 왜 사랑하는지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해리 포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이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 놔야 할지 모르겠으니 내가 밑줄 쳤던 부분들을 보여 드리고 그에 대한 감상을 소개하는 식으로 해 볼까 한다. 저자가 아이돌 연습생이던 시절(열일곱에서 열여덟으로 넘어가던 때), 키는 163센티미터였는데 회사는 그에게 ‘키빼몸(키에서 몸무게를 뺀 것)’ 120이 되어야 데뷔할 수 있다며, 43킬로그램까지 살을 빼기를 강요했다. 이때 저자는 식이 장애를 얻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회사 실장이라는 사람이 제시한 ‘콘셉트’라는 것이 더욱 가관이다.
( )는 하얗고 말랐다. 풋풋하고 연약한 모습을 자랑한다.
( )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섹시한 소녀의 모습으로 객체화되어 존재한다.
( )는 더운 여름날, 커다란 흰 티셔츠를 입고 창문을 닦다가 그만 잠이 든다.
( )의 뽀얀 얼굴과 목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다.
( )는 골반에 딱 맞는, 그러나 짧지 않은 교복 치마를 입고 비에 쫄딱 젖었다.
( )는 어쩔 줄 몰라 한다.
( )는 ‘할아부지’ 같은 말투를 쓰며 천진하게 웃는다.
( )는 가끔 누나처럼 성숙한 모습으로 칠십대 노인을 달래기도 한다.
( )는 가끔 요부가 되어 사십대 아저씨와 능숙한 섹스를 하기도 한다.
( )는 아무것도 모른다.
( )는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 )는 주체가 아닌 객체이기 때문이다.
네 콘셉트는 ( )야. 실장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머리도 자르지 말고 입술엔 틴트만 발라. 살은 더 빼야겠고. 3킬로그램만 더 빼. 안면 윤곽이나 양악도 생각해보자. 덧니는 귀여우니까 내버려두고. 교복 치마도 줄였으면 다시 늘려. 앞머리 자르지 말고. 웃을 때 헤헤 하고 수줍고 해맑게 웃어. 아니 그 느낌 아니고. ‘헤헤’. 포인트가 있어. 거울 보고 연습해 와. 눈에 힘 좀 풀고 다니고. 야하게. 나른한 느낌 알지. 연구해 와. 너 나이 많은 편인 거 알지? 이게 네 마지막 기회야. 됐어. 가봐. 나는 실장님의 말씀대로 ( )가 된다. 긴 생머리를 유지한다. 하얀 얼굴이 더 하얘질 수 있게 비타민 C를 하루에 여섯 개씩 먹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다. 피부가 타면 큰일이니까. 단추가 벌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딱 맞는 와이셔츠에, 어깨선이 둥글게 떨어지는 남색 카디건을 입는다. 손톱의 흰 부분이 보이지 않게 바짝 자른다.
실장이란 자의 워딩이 정확히 이랬는지는 모르지만, 대충 이런 식이었겠지 싶다. “가끔 누나처럼 성숙한 모습으로 칠십대 노인을 달래기도 한다” 이건 도대체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이제 막 열여덟이 될 애한테 어떻게 칠십대 노인을 성숙하게 달래라는 건지? 열여덟 살 말고 여든 살이 되라는 소리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칠십대 노인을 누나처럼 성숙하게 대할 수가 있나. 그리고 역시나 열여덟 살이 될 애한테 “가끔 요부가 되어서 사십대 아저씨와 능숙한 섹스를 하기도 한다” 이건 또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열여덟 살이 사십대 아저씨랑 왜 섹스를 해, 이 역겨운 놈아! 역시나 여자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헛소리다. 열여덟에게 “나이가 많은 편”이란 건 또 뭐고. 아무리 사람이 상품이 되는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업계로서니 이렇게까지 역겨운 ‘콘셉트’를 주는 게 어른이 아이에게 할 짓인가.
이러니 저자가 아이돌 연습생을 그만두고도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며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아이돌 회사에서, 또한 여성을 그렇게 보는 사회에서 지내면서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파는’ 데 둔감해지고 익숙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
회사는 감성적이며 꿋꿋한 밝은 소녀 이미지를 만들어 내게 입힌다. ( )가 되라던 아이돌 소속사의 조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인터넷이란 건 창을 닫으면 끝나는 세상이 분명하기에 크게 거리낄 것도 없었다. 분홍색 니트와 청치마를 입고 마이크를 찬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쫓아가 인터뷰하고 길거리 음식을 맛보며 리액션을 한다. 깨발랄한 여대생의 이미지는 소셜미디어에서 재빨리 유통된다. 석 달쯤 지나자, 팬이라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나는 수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다.
나는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마음껏 만들어낸다. 솔직한 나를 절반, 조금은 거짓말인 나를 절반 섞어 상품화한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틱톡으로 넘나든다. 그 안에서 나는 여행 소녀, 건강 섹시 워홀녀, 삭발 힙스터, 홍콩 감성 헤테로 커플, 오타쿠 레즈비언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캐릭터들은 매번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이미지 노동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당연하다. 내가 그들의 관심사와 취향에 적중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심기를 거스를 일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통제 아래서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만 만들어내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누르는 좋아요는 돈이 된다. 그렇게 나를 구매한다. 아주 가끔은 핸드폰을 꺼도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페르소나가 나를 잡아먹은 것만 같다고 느낀다. 팔로워들은 말한다. 우울한 글을 쓰지 말라고. 우리가 여행 소녀에게 바라는 건 힐링이라고. 삭발하고서 화장하면 메시지가 왔다. 탈코하신 거 아니었냐고, 실망이라고. 자주 가는 바에서 말을 거는 ‘팬’을 자처하는 이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않으면 금세 소문이 돌았다. 그 사람은 싸가지가 없다고. 나를 아끼는 지인은 남자친구와 함께 다닐 땐 사람들이 너를 알아볼 수 없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어떻겠느냐며 조심스러운 조언을 건넸다. 혹시라도 ‘패션 레즈비언’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팔로워들은 모두 나의 페르소나가 ‘진짜’고 진짜 나는 가짜이길 바라는 것만 같았다. 나머지 절반의 솔직함을 조금이라도 꺼내려 하면, 그들은 재빠르게 언팔로우 버튼을 눌러 그들의 세상에서 나를 삭제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게 분명했는데도, 나의 노력은 노동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싶었다. 나의 노동을 인정해달라! 너네도 회사 갔다 집에 돌아가면 편하게 있지 않느냐! 나의 단면만 보고 나를 다 안다고 말하지 마라! 여행 소녀도 자살하고 싶다! 건강 섹시녀도 내향적일 수 있다! 삭발녀의 삭발은 4년 된 남자친구와 함께 민 것이다! 풍성한 공주 드레스가 입고 싶은 날이 있다! 사실 90퍼센트 레즈비언에 엉망진창이다! 모니터 너머로 소리가 샐 일은 없다. 나 역시 핸드폰을 끄면 없는 존재이기에.
사실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내가 공감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자신이 ‘평범하게’, 그러니까 한번 건들면 넘어올 것 같이 생겨서, 또는 뛰어나게 예쁘지는 않지만 반반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많은 남자들에게 무례한 접근을 당하고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여자들이랑 놀면 되지 않느냐”는 (당연히 누구나 할 법한) “질문을 던질 것 같아 변명을 해 보자면, 여자들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때는 방탕소년단의 주 활동지가 한국이었을 때다. 그들은 내가 말을 걸어도 친절하게 대답하기만 할 뿐 친구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라고 썼다. 엥, BTS를 위시한 K-팝 가수들이나 K-드라마, K-영화 등이 인기를 얻기 전이라고 해도, 대체로 동양인들끼리는 잘 어울려서 놀던데. 거기 현지인들이랑 친구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인이라도) 동성 여자 친구들을 사귀라는 건데 그게 어려운 일이라면… 자기 외모나 당시 국격이 아니라 자기 성격이 문제 아닐지… 말을 걸었을 때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는 데서 이미 가능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기가 지레짐작으로 친구 되기를 포기한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여성주의를 알게 된 후 자신도 거기에 참여했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고 쓰는 부분도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러나 레즈비언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혐오자다.”
어딘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자매들의 구호를 따를수록 감춰야 할 것이 많아졌다. 종종 야한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숨겨야 했고, 여자 가슴을 보고 욕정을 느끼는 걸 비밀로 해야 했고, 남성향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규칙 위반이었다. 마른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거나 가슴 사이즈에 대해 말해선 안 되었다. 그것 역시 자매들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외쳤다. “그런 몸은 정상적인 여자의 몸이 아니다!”, “여자를 욕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부끄러워해라!”, “너희는 이상하다!”. 잘 숨겨두었던 욕망이 삐져나올 때마다 비난이 쏟아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매들이 ‘이상하다’고 일컫는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 영은은 나와 마찬가지로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몸무게를 보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다. 이 감각은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은의 상황에서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나 자매들은 영은을 보며 말했다. “프로아나는 멍청해서 하는 선택이다.” 또 다른 친구 지원은 지방 소도시 출신이다.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자랐고 서울에 오기 위해서 많은 비용과 노력을 지불해야 했다. 지원의 동창생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지방에 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몇 있다. 자매들은 지원의 동창생들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결혼을 선택할 수 있냐. 앞으로 페미니즘에 편승할 생각 마라.” 자매들은 지치지 않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들은 수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트랜스젠더는 용인할 수 없다.” 그해 한 여대는 입학 예정이던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입학 취소를 통보했다. 이듬해, 변희수 하사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자매들은 지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자매들은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는 성노동자 여성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어느 페미니스트가 그런 말을? 프로아나인 개인을 보면 불쌍하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 ‘멍청하다’라고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나? 아무래도 여성에게 강요되는 특정한 미적 기준(어려야 한다, 말라야 한다 같은 것들)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까 그것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게 거식증 환자들이잖아.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런 미적 기준이 문제고 그걸 또 내재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사회나 미디어 등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할 텐데. 그리고 두 번째 포인트에 있어서는, 기혼이든 비혼이든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지. 결혼과 관련해 페미니스트가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여성 혐오적인 남편 또는 자녀를 그냥 방관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기혼이라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여자들이 결혼하기 싫어질 정도라는 게 문제지. 이 다음에 나오는 트랜스젠더나 성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찬반 여부가 확실히 갈리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언급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여자 친구들과 사랑했던 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 냄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한 이야기 등은 정말 감동적이고 진솔하다. 죽은 친구들이 밉고 자신도 죽고 싶지만, 자신이 죽으면 주위 사람들이 울 것이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눈물을 찔끔했다.
이 책의 첫 세 장(章)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되어 있고, 네 번째 장(章)이 되어서야 일반적인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전환된다. 이런 구성도 할 수 있구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어라 요약하기 어렵고, 읽어야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글이기에 혹 관심이 간다면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모든 이들의 취향에 맞을 것 같진 않지만, 한번 읽는다면 느끼는 바는 많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감상/책 추천] 정유리, <날것 그대로의 섭식장애> (4) | 2024.12.18 |
---|---|
[책 감상/책 추천] 박서련, <마르타의 일> (34) | 2024.12.13 |
[책 감상/책 추천] 황유미, <독립어른 연습> (43) | 2024.12.11 |
[책 감상/책 추천] 김해인,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 (43) | 2024.12.09 |
[월말 결산] 2024년 11월에 읽은 책 (50) | 2024.11.29 |
[책 감상/책 추천] e.e. 커밍스, <E. E. 커밍스 시 선집> (38) | 2024.11.25 |
[책 감상/책 추천] 백설희, 홍수민, <마법 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37) | 2024.11.22 |
[책 감상/책 추천] 곽미성, <언어의 위로> (19) | 2024.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