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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헤이란, <0칼로리의 날들>

by Jaime Chung 202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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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헤이란, <0칼로리의 날들>

 

 

유쾌한 다이어터의 에세이. 분명 저자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는데 어째서인지 먹는 이야기만 왕창 하게 되는 그런 글인데 너무 재미있다. 프롤로그에 저자는 “원래는 다이어트 성공기를 쓰고 싶었다”며, 언젠가는 다이어트에 성공할 거라고 확신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비장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나의 다이어트는 매번 창대하게 시작했지만 끝은 늘 조용했다. 입으로 들어간 모든 것들의 칼로리를 적고 “어차피 다 먹어본 맛이다. 그만 먹어라” 같은 강력한 동기 부여 글귀들로 도배한 처음 몇 페이지와 달리, 어느 지점부터는 내가 왜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해명과 핑계, 잦은 회식과 툭하면 먹을 걸 주는 혹독한 직장 내 간식 문화와 그 안에서 느끼는 다이어터의 소외감,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식이 조절식의 진실과 음모론 따위로 얼룩진 찡그린 문장들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3분의 1 정도 채워진 다이어트 일기의 나머지 페이지는 늘 말끔한 여백이었고, 그것은 말 그대로, 말이 필요 없는 엔딩이었다. 그러다 또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펜 색깔이 밝아지고 문장이 활기를 찾더니 연말을 앞두고서는 다이어트 일기를 다시 쓰겠다는 다짐이 재등장하며 일기는 수미상관으로 마무리되었다.

 

벌써부터 공감되지 않는가. 저자는 그래서 프롤로그 말미에 이것은 “어느 무기(無期) 다이어터의 치팅데이에 대한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치팅데이에 관한 기록답게 먹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일단 첫 번째 꼭지는 이렇다. Y는 샐러드만 고집하는, 팀의 막내인데 그런 Y가 ‘치팅데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 준다. 일종의 “일시적 섭식 해방의 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치팅데이에 점심 메뉴로 즉석 떡볶이를 선택하고, 저자를 비롯한 직장 동료들은 이걸 같이 먹으러 간다.

즉석 떡볶이 냄비를 둥그렇게 둘러싼 Y와 사람들은 국물이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지처럼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전골 냄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곳을 같은 호흡으로 같은 바람을 담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일로 만난 우리가 이토록 솔직해지는 시간이 있었던가. 끓어오르는 국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빛은 사랑스러워졌고, 라면 사리를 넣기 전에 “괜찮으시다면 반으로 부술까요?”라고 묻는 Y의 섬세함에 깊이 고마워했다. 잊지 않고 볶음밥을 주문하는 Y를 보며 그가 온전히 그의 몸을 속이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치팅데이가 구글 캘린더에 기본 항목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다이어트 공휴일, 혹은 다이어트 해방의 날.

이분 먹잘알. 최소 쩝쩝박사. 와, 진짜 읽기만 해도 라볶이가 먹고 싶어진다… 그렇게 Y의 치팅데이는 식후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되었다. 저녁에는 수만 보를 걷겠다는 Y의 말에 저자는 ‘내가 걱정할 사람을 잘못 짚었구나’ 생각했다고.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썼다.

치팅데이. 나중에 좀 더 찾아보니 우리말로 다듬으면 ‘먹요일’이라고 했다. 왠지 기특하고 멋져 보이는 이 단어를 또박또박 적으며, 어쩌면 오랫동안 나를 설명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유래가 어떻든, ‘먹요일’은 나에게도 비책이었다. 사실, 이름만 생소했을 뿐, 나는 오래전부터 이미 이 방법으로 몸을 속이고 또 속여왔다. 신조어인 줄 알았던 이 단어는 사실 내가 가장 많이 해오던 짓의 과학적인 정의이자 뻔뻔한 변명이었다. 
풍부한 먹부림의 기억 속에서 내가 즐긴 음식은 종류와 형태, 그리고 이유마저 다양했다. 어떤 날엔 뭔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달콤한 음식을 찾아 먹었고, 또 어떤 날에는 극심하게 우울해져서 피로 회복을 위해 삼겹살 같은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상당한 죄책감에 빠지긴 했지만 나는 어김없이 다시 목표를 세웠고, 툭툭 털고 일어나 뛰었다. 한동안 어지럽거나 우울하다는 변명을 깊숙이 넣어둔 채.
‘먹요일’을 만든 사람은 아마도 절제와 자기반성을 반복하며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거쳐야 하는 고달픈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마라토너에게 물병을 던져주듯, 다이어터의 지루한 갈증과 결핍된 휴머니즘을 채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오늘의 고통을 이겨낼 무언가가 필요하다. 퇴근하고 다시 동네를 걷고 있을 Y의 산책 코스 끝에는 다음 먹요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만의 속도로 퇴근길을 걸으며 수많은 해방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일화는 나를 이 책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제목은 ‘슬기로운 금빵생활’이고 부제는 ‘빵을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이다(나는 이 독서 후기를 커피번을 먹은 후에 썼다. 존맛).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저자가 결혼식을 석 달쯤 앞둔 시점의 어느 날, 저자는 ‘개업 맞이 특가 할인. 특히 예비 신부 환영’이라 쓰인 PT 광고 전단지를 보게 된다. PT에 등록하자 트레이너는 저자를 열심히 트레이닝시키며 이제 앞으로 먹는 것은 모두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시킨다. 동시에 ‘빵 금지령’도 내린다.

(…) 엉금엉금 퇴장하는 내게 D는 이 순간부터 먹는 모든 음식을 적어서 문자로 보내라며 특별히 조심해야 할 음식 목록을 일러주었다.
“특히 빵 드시지 마세요. 알았죠?”
“왜 빵은 먹으면 안 되나요?”
“빵은 그냥 안 됩니다. 살 빼려면 빵 절대 드시면 안 됩니다.”
D는 글루텐이 어쩌고 하면서 빵이 살찌는 데 가장 강력한 원인 제공 식품 중 하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빵 말고도 먹을 게 많으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그의 말에 뭔가 대꾸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빵을 많이 먹긴 하니까.
‘빵빵’거리는 D의 잔소리에 실컷 얻어맞고 나오는데, 문득 화가 났다. 아니, 빵이 그렇게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면 애초에 팔지 못하게 했어야지. 드라마에서 빵 먹는 장면은 왜 그렇게 실감 나게 찍어서 내보내는 거냐고. 우리 동네만 해도 최근에 생긴 동네 카페가 몇 개인 데다 빵 굽는 솜씨들은 또 얼마나 좋은지. 빵 공화국에 살면서 빵 먹는 게 잘못이라 하니 억울했다. 인도에서 카레 먹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트레이너의 지시를 따라 운동하고 식이 조절을 하던 와중에, 퇴근 후 지하철역 빵집의 향긋한 냄새에 정신을 잃는다. 이것저것 담아 구매하고 집에 와서 밤샘 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섭식을 위해 빵 봉지를 열었으나…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봉지를 열어 보니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금빵 선언을 했으나 그 다짐은 주말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난다. 금빵을 선언한 후 맞는 첫 일요일이었다. 저자네 집안에는 독특한 루틴이 있는데, 일요일 아침은 할머니가 식사를 차리지 않는 유일한 날로, 토스트를 해 먹는 것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프라이팬에 버터를 바르고, 식빵을 전달하고, 그 식빵을 구워서 전달하는 식으로 분업이 착착 진행된다. 결과물은 빵-달걀-치즈-빵의 1인 1토스트 메뉴. 그러나 저자는 금빵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급하게 어머니께 이 사실을 전달한다.

난 재빨리 해야 할 말을 외쳤다.
“오늘부터 빵을 먹지 않기로 했어요.”
분명히 의사를 전달했으나 엄마는 토스트를 내 앞에 더 가까이 내밀었다. 이토록 고민되는 순간이 있었던가. 이걸 먹지 않으면 엄마가 민망하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자식이 입안 가득 탄단지(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조합을 오물오물거릴 때 극대화되는 엄마의 기쁨이 사라지면 어쩌지. 그러면 엄마는 정성스레 만든 토스트를 거절당한 기분에 마음이 상할 텐데. 어느 한인 타운의 가정처럼 웨스턴 드림을 꿈꾸며 토핑을 아끼지 않은 패스트푸드를 다 같이 먹는 이 모던하고 화목한 자리에서 “저는 안 먹어요”라고 말하는 게 과연 옳을까? 불현듯 그런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더 거절하지 않고 토스트를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입술에 케첩이 묻었다며 닦아주는 엄마의 표정은 무척이나 흐뭇해 보였다. 말없이 내 접시에 식빵을 하나 더 가져다 놓는 할머니의 움직임은 경쾌했다. 이토록 빵에 진심인 가족들이 내게 준 빵 터지는 미소에 나는 더 크게 입을 벌렸고, 마음을 열었으며, 금지된 빵의 문을 열었다. 더 활짝, 더 크게.

그렇게 토스트를 다 먹어갈 때쯤 트레이너에게 문자가 온다. 주말에도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식이 조절 잘하라는 내용. 저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트레이너에게 토스트를 먹었다고 고백한다. 트레이너는 어떤 토스트인지, 식빵에 버터를 발랐는지, 어떤 소스를 곁들였는지, 달걀물에 다른 채소를 넣었는지 등등 꽤 자세하게 질문을 이어갔고, 결국 저자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엄마가 해주시는 걸 그대로 먹었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마자 괜한 대답을 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낸 문자를 취소할 방법을 떠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 집 토스트 레시피까지 도마 위에 올린 건 명백한 실수였다. D는 단백질과 나트륨 함량까지 따져가며 우리 집 토스트를 잘근잘근 분해할 것이고 영양학적으로 형편없다는 쓴소리를 쏟을 게 분명했다.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함은 후회가 되고 후회는 미안함으로 번지더니, PT 등록을 왜 했을까, 결혼은 왜 하는 걸까, 라는 속절없는 원망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참 동안 연락이 없던 D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잘하셨어요. 결혼식 전까지 가족들과 좋은 시간 많이 보내세요.]
예상치 못한 D의 답장에 숨이 크게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내내 그를 미워하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더불어 심란한 속도 모르고 토스트를 권하는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토스트를 향한 미안함, 그리고 그것을 다 먹은 나를 미워하던 마음도 내려놓았다. D가 말한 ‘식이 조절’에 담긴 비결은 어쩌면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요일을 변함없이 엄마표 토스트 먹는 날로 새겨두었고, 그다음 주 화요일에 PT를 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이거 완전 탈룰라잖아! 하지만 남의 어머니께서 토스트를 해 주셨다는데 그걸 비난하기는 어렵지… 어쨌든 그렇게 저자는 일요일마다 ‘엄마표 토스트’를 먹었고, 12주차 PT를 완료하고 나서는 ‘인생에서 가장 마른 몸으로 사진을 남기며’ 결혼식도 무사히 마치고, 다시 평범한 점심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는 해피 엔딩이다. 그렇게 다들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것 외에도 음식, 먹는 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 와중에 감동도 있고 약간의 교훈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갖출 건 다 갖췄지? 다이어트가 고민이지만 쉽지 않은 분(그러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 가볍게 공감하며 읽을 만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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