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20년 넘게 단행본 교정 교열을 해 온 저자가 전작 <동사의 맛>에 이어 이번에는 문장을 다듬는 법을 알려 준다(부제도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다).
저자는 뻣뻣하게 이런저런 '비문학적' 내용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전작처럼) 짧은 소설 이야기와 병행한다.
함인주라는 (가상의) 작가의 글을 고친 이야기 속 화자가 어느 날 작가로부터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하고 묻는 메일을 받는다.
화자는 다소 당황하지만 '모든 문장은 이상하고 '정상적인' 문장이란 없다. 나는 교열자로서 적어도 당신의 글에 있는 모든 문장이 일관성 있게 이상하도록 고칠 뿐이다.'라고 답장을 보낸다.
이 말에 작가는 다시 답장을 하고, 그들은 다소 철학적이기까지 한 토론에 이른다(한국어 글쓰기 책에서 철학이라니! 일거양득 아닌가!).
나는 그 말이 무척 흥미로웠다. 모든 문장은 이상하고 정상적인 문장이란 없다. 정확히 인용하자면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하죠. 제겐 그렇습니다. 20여 년간 남의 문장을 읽고 맞춤법에 맞게 고치고 어색하지 않도록 다듬는 일일 해 왔지만, 이제껏 이상하지 않은 문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일을 하는 한은 내내 그러리라 믿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이상하지 않은 문장, 요컨대 '정상적인 문장'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정상적인 문장은 과연 어떤 문장이며 누가 쓴 문장일까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상적인 내용'은 또 어떤 내용일까요? 상상하기 어렵군요.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략) 왜 이런 식으로 묻게 되었을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아, 이분은 자신의 문장이 표준이랄 만한 문장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궁금해하는구나 하고 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말장난 같은 답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표준적인 문장 같은 건 없노라고 말이죠.
정답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심지어 맞춤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이란 그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규칙일 뿐이죠. 게다가 지금처럼 국가 기관이 맞춤법을 통제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맞춤법에 그렇게 목을 맬 이유도 없지 싶습니다. 다만 책을 사서 읽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후략)
나는, 어제 메리 노리스의 <뉴욕은 교열 중> 독서 후기에서도 썼듯이, 교열자란 끊임없이 변하는 기준을 붙잡고 그것에 다른 글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기준이라는 게 얼마나 불안정하든 간에, 일정한 기준 없이는 글을 고칠 수 없다.
필연적으로 기준, 잣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것에 비춰서 다른 것을 살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화자는 모든 문장이 이상하다고, 정상적인 문장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는 일조차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일관적으로 이상하게 만드는 것뿐이라고.
그럼 내가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맞춤법이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라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정상적인' 문장이 없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것이 반드시 있다! 저자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정상적인 문장이 없다고 상정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어느 정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지 않나?
예를 들어서 '정상'이란 게 없다고 해서 다들 '연필'이라 부르는 물건을 나 혼자 '지우개'라고 부른다거나, 주어와 목적어, 동사의 순서를 제멋대로 바꾸고 조사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의사소통에 큰 혼란이 올 게 뻔하다.
다시 내가 한 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기준이란 게 아무리 애매하다고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거의 절대적인 기본 원칙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나는 그걸 좀 더 견고하게 생각하는 거고.
아니면 내가 너무나 '기준', '정상', '옳고 그름'에 목을 매는 걸까?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또 그중에서도 번역된 외서를 많이 읽은지라 내게는 내가 '바르고 정확한 우리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확신이 없다.
대학생 때는 "말투가 미드 번역투"라는 말을 듣기도 해서, 그 이후로 일부러 더 피해야 할 번역 어투라든지 한국어다운 표현 등을 공부해서 익숙해지고 노력했다.
지금은 적어도 내가 아는 것만큼은 잘 주의해서 의식적으로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르는 건? 여전히 틀릴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그렇게 '아름답고 정확한 한국어'에 집착하는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허상일 뿐이라고 해도.
책에서 가르쳐 주는 주의할 점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적·의를 보이는 것·들'(접미사 '~적',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은 습관적으로 쓰일 떄가 많으니 주의해서 잡아내야 한다는 점 등은 무척 유용하다.
고쳐야 할 문장들을 주루룩 보여 주고 고쳐 보는 연습도 하는데, 이건 어렵지 않지만 이걸 과연 내가 다 기억해서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든다.
말하자면 수학에서 어떤 개념을 배우고 나서 그와 관련된 연습 문제를 바로 풀어 보면 그때는 쉽게 느껴지지만, 좀 더 뒤로 가 그 단원에서 배운 개념이 몽땅 무작위로 나오는 연습 문제들을 보면 '여기에 어떤 개념 또는 공식을 사용해야 하더라?' 싶어서 헷갈리듯이 말이다.
이 책은 가까이 두고 수시로 들여다보며 외우듯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위에서 인용한 '이상한 문장' 이야기 말고도 글 속 작가가 카프카의 단편 소설 <유형지에서>를 인용하며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늘 치욕을 느껴야 하느냐고 묻는 부분도 있는데, 이건 도저히 무슨 말인지 내가 이해를 못해서 여기에서 다룰 수가 없다.
어쨌든 간에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바르고 정확한 우리말'을 추구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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