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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Being the Ricardos(2021, 비잉 더 리카르도스/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 현실이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쇼는 계속되어야 하기에

by Jaime Chung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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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Being the Ricardos(2021, 비잉 더 리카르도스/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 - 현실이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쇼는 계속되어야 하기에

 

 

감독: 아론 소킨(Aaron Sorkin)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였던 TV 쇼, <왈가닥 루시(I Love Lucy)>의 주인공인 두 스타, 루시 역의 루실 볼(Lucille, 니콜 키드먼 분)과 남편 데시 아녜스(Desi Arnaz, 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이야기.

루실이 공산주의자라는 억측을 당해 '빨갱이' 딱지가 붙을 위험에 처한 어느 일주일의 이야기가 주이다.

대본 리딩부터 시작해 실제 관객들 앞에서 녹화하는 날까지 시간상으로는 일주일이지만, 그동안 루실과 데시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쇼를 제작하는지, 루실과 데시의 아슬아슬한 사이 등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루실(왼쪽)과 데시(오른쪽)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물론 모든 일이 현실과 똑같이 묘사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화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 주었다.

루실 볼의 딸 루시 아녜즈는 이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말도 안 되게 멋지다(freaking amazing)"라며 찬사를 보냈다.

니콜 키드먼은 자신의 "어머니의 영혼(became my mother's soul)이 되었다"라고 그녀의 캐릭터 표현에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하비에르 바르뎀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닮지는 않았지만 그의 위트, 매력, 볼우물, 그리고 음악성 등을 빼다박았다고 칭찬했다. 

 

이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쓰자면, 일단 이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본 IMDB의 어느 리뷰에서 지적한 대로, 이 영화의 관객은 <왈가닥 루시>를 직접 봤고 기억하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 두 종류의 관객이 있을 거다.

나는 후자라서 솔직히 전자만큼 이 영화를 봤을 때 기쁘다거나 전자만큼 더 잘 감상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왈가닥 루시>를 보고, 70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정말 감개가 무량할 텐데.

 

루실 볼
데시 아녜즈

 

니콜 키드먼이 맡은 루실 볼이라는 인물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단 자신과 남편이 주인공인 TV 쇼의 퀄리티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빨갱이라는 잘못된 추측(루실은 어릴 적에 노동자들의 편이었던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동 조합에 가입하겠다는 조항에 체크했을 뿐이다)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거나 아니면 아예 쇼가 취소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을 때는 더욱더 쇼를 재미있게, 잘 만들어야 대중들에게 '그래도 그거 재밌었는데...' 같은 동정표라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본업을 잘해야 대중들이 자신의 편을 조금이라도 더 들어 줄 테니, 쇼를 늘 완벽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루실이 빨갱이라는 억측을 당한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맞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2년의 어떤 한 주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극본과 감독을 맡은 아론 소킨도 이것이 사실과 다른 점은 인정하지만, 사건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시간대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래서 루실은 대본 한 쪽 한 쪽을 꼼꼼이 읽으며 조금이라도 자연스럽지 않다, 또는 재미있지 않다 싶은 부분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데시(왼쪽), 윌리엄 프롤리와 비비안 밴스(가운데), 루시(오른쪽)

일례로, 극 중에서는 <왈가닥 루시>의 조연 부부, 프레드와 에델 메츠(Fred and Ethal Mertz, 극 중 캐릭터 이름. 이를 연기하는 배우는 윌리엄 프롤리(William Frawley)와 비비안 밴스(Vivian Vance)이고 각각 J.K. 시몬스와 니나 아리안다 분)가 서로에게 화가 나 있는데 좁은 피아노 의자에 같이 앉아 서로 팔꿈치로 밀쳐대다 동시에서 의자에서 넘어지는 장면을 위해 루실이 계속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하면 이걸 자연스럽게 웃기게 만든다? 결국 루실은 리허설 전날에 윌리엄과 비비안을 새벽 2시에 세트로 불러내어 이 장면을 어떻게 잘 합을 맞춰 연기할 것인지 자세히 지시한다. 그 정도로 그녀는 이 일에 진심이다.

 

루실 볼과 데시 아녜즈 커플 사진

두 번째, 남편이 혹시 바람피운 것은 아닌지 수상쩍게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

루실과 데시는 <Too Many Girls(1940)>라는 영화를 촬영하다가 만났는데, 처음 만날 촬영 둘째 날부터 스파크가 튀었고 그 해 말에 둘은 결혼했다.

극 중에서 루실은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CBS(<왈가닥 루시>를 제작 및 방영하던 방송국)에 이를 알린다. 루실과 데시가 아이를 가지는 에피소드를 촬영하고 싶다고.

CBS에서는 임신한 여자가 TV에 묘사된다니 말도 안 된다고(이유인즉슨, 임신을 했다는 건 성관계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시청자의 대부분인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단다), 부른 배를 이런저런 수로 가리고 임신 사실은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루실 볼은 TV에 '임신한' 상태로 등장한 첫 여성이었다. 부부의 둘째(첫째인 딸은 위에서 언급한 루시 아녜즈다)인 아들 데시 아녜즈 주니어(Desi Arnaz Jr.)가 태어나는 사건은 <Lucy Goes to Hospital>이라는 에피소드로 극화되어 촬영되었고, 이 에피소드는 당시 무려 71.7%(440만 명)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송국에 맞서서 루시의 임신 에피소드를 끼워 넣자고 밀고나가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일 뿐 아니라 일종의 동업자이기도 한 남편이 바람을 피운 건 아닌지 촉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도 슬프고 힘든 일이다.

실제로도 루실은 1944년에 데시가 바람을 피운 것 같다고 주장하며 데시와의 이혼을 신청했으나, 이에 대한 판결이 나기도 전에 그에게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딸과 아들을 출산.

영화 끝에 에필로그로 나오듯이, 루실은 데시가 술을 좋아하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는 것을 견디다 못해, 1960년에 다시 이혼한다. 이때는 물론, <왈가닥 루시>의 마지막 화가 방영된 이후였다(마지막 화는 1957년 5월 6일에 방영).

그러고 나서 그녀는 남편 몫이었던, 데실루 스튜디오스(Desilu Studios)의 주식까지 모두 사들인다. 마치 이 쇼의 권리는 모두 자신에게 있다는 듯이, 그와의 결혼 생활은 악몽이었어도 쇼만큼은 완벽하게 연기해 냈다는 듯이.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TV 쇼들도 이 스튜디오에서 여럿 나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타 트렉(Star Trek)>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톰 크루즈가 나온 그 영화가 원래는 TV 시리즈였다는 사실!).

루실 볼이라는 뛰어난 코미디언이자 배우, 그리고 CEO가 있었기에 TV 쇼의 세게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남편이 다른 여자들이랑 놀아나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래도 대중적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하는 그 괴로움, 그 답답함은 얼마나 클까. 

극 중 루실은 '야망이 뭐냐'라는 데시의 질문에 CEO가 되는 것도 아닌, 대배우가 되는 것도 아닌, '가정(home)'을 꾸리고 싶다고 대답하는데 , 그래서 정말 그녀는 단순한 '집(house)'이 아니라 가족간의 사랑이 있는 '가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보는 이가 가슴 아플 정도로.

 

세 번째, 남편에게 치우친 이 쇼의 권한을 찾아와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팩트 체크랑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다.

이 쇼의 퀄리티를 높게 유지하려면 자신이 '이건 아닌데'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의문을 제기하고 또 고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어야 하는데, 감독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대본 괜찮게 쓰인 거 같은데 왜 그걸 따지고 드냐며 루실이 의문을 제기하는 포인트에 공감하지 못한다.

게다가 대본 작가들 중 한 명인 매들린 퓨(Madelyn Pugh, 앨리아 쇼켓 분)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의 시각 운운하면서 루시의 캐릭터가 다소 어벙하고 멍청하게 그려진 것 같다고 불만이다.

루실은 이 쇼의 간판 캐릭터인 '루시'로서 이 쇼의 지휘권을 온전히 갖고 싶어 하는데, 감독에게 좀 부탁한다 했더니 오히려 남편에게 쪼로로 달려가서 '이 쇼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정확히 말하자면 <I Love Lucy>의 'I'는 너니까 네가 바로 주인공이다)' 하는 입발린 소리나 하고 앉았다.

감독이란 자가 두 주연 배우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갈라놓으려 해? 빡치지 않을 수가 없다.

위에서 말했듯, 후에 성공한 스튜디오의 수장이 될 정도로 기업가로서의 면모가 있었던 루실에게는 자기 능력을 못 믿는 것 같아 불쾌하기도 했을 테고, 어느 정도 자존심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극 중 데시가 부르는 "Cuban Pete". '칙치기붐 칙치기붐~' 하는 노래 아시는지? 그게 이거다. 하비에르 바르뎀은 노래도 잘 부르고 진짜 사기다...

아, 영화 제목이 <리카르도 가족으로 산다는 것>인 이유는 간단하다. 극 중 루시와 데시의 성이 '리카르도(Ricardo)'이기 때문이다.

루시에게 있어 이 캐릭터는 현실의 자신과 이름은 똑같지만 성은 다르고, 현실과 자신과 겉모습은 똑같지만 실제 삶은 다르다. 

극 중 루시는 언제나 유쾌하고 행복하고 남편과도 사랑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TV 쇼가 만들어 내는 환상을 당장 끝내고 없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다른 이들, 즉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어야 하니까. 

다른 이들을 웃게 하는데 본인은 행복하지 않은 그 씁쓸함이라니. 

 

는 루실 볼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고, 밑의 CC 버튼을 누르면 영어 자막을 볼 수 있다.

 

역시나, 내가 <왈가닥 루시>를 이전에 한 편이라도 보았다면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더 반갑고, 향수에 젖는 느낌이었겠지.

하지만 <왈가닥 루시>를 보고 자라지 않은 세대라도 충분히 이 영화를 즐기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감상 가능하다.

 

이 리뷰를 쓰면서 아래 기사들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https://decider.com/2021/12/21/being-the-ricardos-true-story-lucille-ball/

https://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being-the-ricardos/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the-true-history-behind-being-the-ricardos-180979194/

https://variety.com/2015/film/news/mission-impossible-i-love-lucy-ricardo-1201548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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