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Big Time Adolescence(2019, 빅 타임 어덜레슨스) -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났어요
감독: 제이슨 오를리(Jason Orley)
이 영화는 16살 모(Mo, 먼로(Monroe)의 애칭, 그리핀 글럭 분)이 교실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앳된 얼굴의 소년이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그것은 다 지크(Zeke, 아이삭(Isaac)의 애칭, 피트 데이비스 분) 때문이다.
지크가 누구냐 하면,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모의 누나 케이트(Kate, 에밀리 아룩 분)와 한때 사귀었던 (현) 구남친이다.
케이트와 지크가 사귈 때 여친의 동생이니까 자주 봐서 잘 어울려 놀았는데, 헤어지고 나서도 모와 지크는 계속 '친구'로 지냈다.
사실 둘이 동등한 '친구'라기보단 모가 지크를 마치 형처럼 우러러보고, 지크는 모가 그러면 자기가 진짜 쿨하고 멋진 존재인 것 같아 그냥 놔둔 것에 더 가깝지만.
하문제는 모가 16살이고 지크가 23살인 지금도 여전히 지크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것. 고등학생 때에야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 없이 놀아도 그게 '쿨하다'라고 여겨졌지만, 이제 23살이나 됐으면 일도 꾸준히 나가고 그래야 하는데 지크는 일도 안 좋아하고, 너무 쉽게 관둔다.
다시 말해, 지크는 소위 '고등학교 때가 인생 리즈 시절'이었던 그런 종류의 사람이고, 애에게 적절한 '롤 모델'이 아니다.
예컨대 애(=모)가 같은 차에 타 있는데 중독자 친구랑 (차 창문 꼭 닫고) 마리화나를 피우다든가, 모를 상급생들이 여는 파티에 술을 가져갈 수 있도록 술을 사 주고, 겸사겸사 마리화나까지 팔게 공급해 준다든가.
당연히 모의 부모님(특히 아버지)과 케이트는 모에 대해 걱정할 수밖에 없다. 모와 지크, 이대로 친구로 남아도 괜찮을까?
이 영화 리뷰의 부제처럼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났어요"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다.
SNL 출신인 피트 데이비슨(Pete Davison)이 골 때리는 성인 친구 지크의 역을 맡았는데, 나는 SNL을 본 지가 한참 되어서 그가 코미디언인 줄도 몰랐다.
눈 밑의 짙은 다크 서클에다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오, 대마 좀 피워 본 힙합 가수인가? 힙합 가수 치고 연기 잘하네!'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던 <The King of Staten Island(2020, 더 킹 오브 스태튼 아일랜드)>의 주연이기도 했다. 그 배우가 이 배우였구나!
그건 그렇고, 피트 데이비슨은 생각도 없고 미래도 없이 대마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인생을 그저 '즐기기만' 하는 백수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런 지크와 얽힌 모가 좀 불쌍하긴 하지만, 애초에 모가 지크를 좋다고 따라다녔으니까.
지크가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애 앞에서 행동을 조심했어야 했는데, 사실 지크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거다.
그렇다고 지크가 본성이 나쁘냐 하면 또 그건 절대 아니다. 애는 착한데(영어로 하자면 정말 'his heart is in the right place'라는 표현이 딱인), 삶에서 뭘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도 없고, 그러니까 그걸 위해 하기 싫은 일이 있어도 꾹 참고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럴 생각도 없는 거다.
머리가 딱히 크게 나쁜 것도 아닌데, 배우는 것이나 지식에는 관심이 없고 고등학교 때 심하게 놀다 보니까 '쿨하다'라는 평판은 얻었는데 그 이후에 뭘 한 게 없는 사람.
대학은 당연히 안 갔고 집에서 자기 같은 친구들이랑 놀며 술 마시고, 대마 하고... 그렇게 시간은 가는데 성취한 건 없고.
모가 지크를 좋아하고 따르는 건, 그게 '쿨해' 보이기 때문이지만, 지크가 또 모를 잘 데리고 다니는 건, 그런 사람(모 같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백수로 지내도 괜찮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와 타인에게 말하고 진짜로 그렇게 믿는데, 그 '괜찮다'라는 게 지각이 있는 보통 사람이 보기엔 한숨 나오는 수준인 것.
스포일러를 하지는 않겠지만 결말에서도 지크는 그다지 성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긴, 자기 버릇 개 못 준다고, 모는 그래도 이제 정신 차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책임을 질 텐데 지크는 여전히 그 자리인 셈이다.
그래도 지크와 그 친구들이 참 귀엽고 웃기고 재미있고 약간 사랑스럽다는 점까지는 부인하지 않겠다.
대표적인 장면이, 모가 좋아하는 동갑내기 여자애 소피(Sophie, 우나 로렌스 분)를 지크네 집에 데려왔을 때의 장면(이건 영화 공식 트레일러에도 나오니까 스포일러는 아니겠지).
지크의 친구 닉(Nick, 머신 건 켈리 분)이 모를 부엌으로 따로 부르더니, "야, 부끄러운 줄 알아라. 저 여자애는 16살이라고!" 하고 모에게 호통을 친다.
모는 얼탱이가 없어서 "닉, 나 16살이거든!"이라고 대꾸하고 닉은 "그러니까 말이야. ...뭐?"라고 뒤늦게 놀란다.
도대체 여태까지 모를 몇 살이라고 생각한 거야 ㅋㅋㅋㅋㅋ 게다가 자기네들은 동네 백수로 대마나 피우고 술 마시고 노는 주제에 16살, 그러니까 미성년자 여자애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아청법 준수 정신은 또 뭔뎈ㅋㅋㅋㅋㅋㅋㅋ 법 무시하고 제 뜻대로 살 것같이 생겨서는 뜻밖의 준법 청년이냐며...
약간 골 때리고 약간 안타깝긴 하지만 (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귀엽고 재미있는 영화인 것은 틀림없다.
피트 데이비슨이 이렇게 괜찮은 배우였구나. <더 킹 오브 스태튼 아일랜드>도 얼른 봐야지. 내 영화 취향이 마이너한 쪽에 가깝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런 영화는 다른 사람들도 봐서 같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츄라이 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