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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all Girl 2(2022, 톨 걸 2) - 물론 키가 큰 게 생사를 가르는 문제는 아니죠, 그렇지만...

by Jaime Chung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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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all Girl 2(2022, 톨 걸 2) - 물론 키가 큰 게 생사를 가르는 문제는 아니죠, 그렇지만...

 

 

감독: 에밀리 팅(Emily Ting)

 

전작에서 마침내 첫 키스를 하고 커플이 된 조디(Jodi, 에이바 미셸 분)와 덩클먼(Jack Dunkleman, 그리핀 글럭 분). 

이 속편의 시간적 배경은 전작으로부터 석 달쯤이 지난 시점. 조디와 덩클먼은 십 대답게 아주 귀엽게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늘 행복하기만 하면 이야기가 안 되지. 문제의 시작은 조디가 교내 뮤지컬 <바이 바이, 버디(Bye Bye, Birdie)>에 지원했고, 오디션을 봐서 여주인공 킴(Kim) 역할을 따낸 것이다.

물론 이것 자체는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이지만, 그 소식을 전하게 된 부모님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조디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언니 하퍼(Harper, 사브리나 카펜터 분)가 새로운 일자리(미인 대회 네트워크의 TV 쇼 진행자)를 얻어 LA로 떠날 것이라는 슬픈 소식도 듣게 된다.

언니가 없으면 누구에게 조언을 청해야 하나 싶고, 언니가 참 너무 보고 싶을 텐데 어떡하지.

이 상황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덜컥 여주인공 역할을 얻게 되니 이제는 부담감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머릿속에 있는 목소리가 계속 '넌 망할 거야. 너는 대사를 잊고 얼어붙을 거야. 망신당하지 말고 차라리 키미(Kimmy, 클라라 윌시 분)에게 주연 자리를 넘기지 그래?' 하며 조디를 비웃는다.

이 부담감에 덩클먼과의 로맨틱한 저녁 식사 자리도 편하게 즐기지 못하고 정신이 딴데 가 있었더니, 덩클먼은 '그렇게 공연이 걱정되면, 가서 연습하며 대사 한 번이라도 더 외워라. 나는 괜찮다' 하고 말한다.

진심인 줄 알고 진짜로 일어서서 나가려 했더니 '난 네가 괜찮다고 할 줄 알았지! 진짜로 우리 3개월 기념일 저녁 식사 중간에 가 보겠다고?'라며 화를 낸다. 아놔 미치겠네.

이것 때문에 남친과의 사이도 완전 냉전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이 상황을 더 꼬이게 하는 건, 교내 뮤지컬 오디션 때 만났던, 훈한한 남자애 토미(Tommy, 잔 루이스 카스텔라노스 분)도 교내 뮤지컬의 남자 주인공, 콘라드(Conrad) 역에 뽑혔다는 거다.

그리고 토미는 아무래도 조디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남친이 싫은 건 아니지만, 내가 공연에 부담감을 느끼고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다니 뭔가 억울하다, 내가 왜 여기에서 져 줘야 해? 일단 기싸움에서 지지 말고 계속 밀어붙이자!

 

이제는 자신감이 넘치게 된 조디
조디(오른쪽)에게 뮤지컬 연습 잘하고 오라고 이것저것 챙겨 준 덩클먼(왼쪽)
파리다(왼쪽)와 조디(오른쪽)
새로운 연애 대상으로 떠오른 토미

 

 

전작 <톨 걸>에 이은 속편. 영화와 영화 사이에는 햇수로 3년 정도의 시간이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고작 석 달이 흘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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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속편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미 행복하게 끝내 놓은 이야기를 다음 편의 처음으로 설정하려면, '사실 그렇게 기대한 것만큼 행복하지 않더라'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처럼. 조디와 덩클먼이 귀엽게 첫 키스를 하며 마침내 사귀게 된 모습을 보여 줘 놓고, 속편의 시작에서는 (이미 달콤한 연애 기간이 석 달이 지나) 처음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니, 약간 실망스럽다고 할까.

하지만 결혼식은 희극이어도 실제 결혼 생활은 비극일 수 있다. 그래서 희극이 결혼식 장면에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래도 삶은 이어지지만...

 

뭐,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어떻게서든 갈등을 만들어야 하니 그건 이해할 만하다.

그리고 사실 속편은 전작에 대한 비평(또는 비판?)을 많이 인식한 듯하다. 예컨대, 전편에서 조디는 홈커밍(homecoming) 때 남들 앞에 당당히 서서 '내 키가 큰 거 가지고 놀리려면 맘껏 놀려라, 나는 내 큰 키도 사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래서인지 조디가 오디션을 볼 때 한 심사 위원(인 선생님)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키가 큰 게 심각한 질병이나 살 집이 없다거나, 당장 내일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그런 일들만큼 중대한 문제도 아니고, 너도 잘 살고 있는데, 불평할 게 도대체 뭐가 있니?'

그래서 조디는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일어난 나쁜 일들이 사실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흠, 둘 다 맞는 말이긴 하다. '키가 큰 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징징대냐?' 하는 쪽이나, '이게 삶에서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키가 커서 일어나는 겪는 일, 곤란함이 다 거짓말인 건 아니다' 하는 쪽이나 일리는 있다.

이 대사를 들으니 작가와 감독이 <톨 걸>에 대한 비평에 대해 그렇게 한마디 대꾸하고 싶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도 <톨 걸>이라는 영화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키가 큰 여자애라고? 그게 영화를 한 편 만들 소재씩이나 되나?' 했으니까.

 

그리고 속편은 이제 조디의 '큰 키'를 가지고 문제를 만들어 나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색다른 걸 보여 줘야겠다 생각한 거 같다.

그래서 이제는 교내 뮤지컬이라는 배경을 설정해서 노래와 춤이라는 볼거리를 제공하기로 한 듯. 뮤지컬 연습이나 공연 당일 장면 외에도 조디가 토미와 춤을 추며 감정을 나누는, 약간 <라라랜드(La La Land, 2016)> 같은 느낌의 장면도 있다.

그런데 조디(역의 배우)는 키가 커서 그런가, 같은 동작을 해도 약간 허수아비 같은 느낌이... 춤을 못 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고, 왜 '키가 작으면 춤을 잘 춘다'라고들 말하는지(그 말이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알겠더라.

키가 작으면 팔다리의 길이가 짧으니 더 통제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손끝, 발끝까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느낌인데 키가 크면 약간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내게는 들었다.

어쨌거나 춤과 노래라는 게 확실히 그냥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 볼거리가 되니까 집어넣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말이 안 된다 싶은 게, 이제 조디의 큰 키를 가지고 문제를 만들어 나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다시 강조) 뭔가로 갈등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의심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가기로 한 것 같다.

그래서 조디가 '내가 교내 뮤지컬의 여주인공인데,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을 품게 되고, 이제 그 두려움이 삶의 다른 분야에도 마수를 뻗치기 시작한다(영화에서는 뭐든지 영상으로, 시각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니까, '머릿속의 비평가, 자기 비난, 자기 의심' 등이 조디의 내면의 목소리, 즉 다시 말해 조디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된다).

조디의 언니 하퍼도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건만... 오고야 말았구나.' 운운하면서 그게 '내면의 비평가'라고 알려 주고.

그런데 잠시만. 이제야 조디가 그런 걸 겪게 되었다고요? 그럼 전작 때에는 큰 키 때문에 놀림을 당헀을지언정 자기 의심, 두려움, 불안 등이 하나도 없었다고?

이 소재를 이제야 가져와서 속편에 쓴다는 게 난 이해가 안 됐다. 얘 열여섯 살인데 여태까지 '내면의 비평가', 즉 자신을 비난하고 의심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한 번도 안 들어 본 게 말이 되냐고요?

주연 자리를 얻은 것에 대한 부담을 갖는 것도, 그걸 표현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데, 그걸 마치 이전에는 느껴 본 적 없다는 것처럼 말하니까 너무 웃겼다. 

 

'완벽한 남자애는 없다'라는 사실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전편에서는 조디에게 배신을 때려 조디의 마음을 아프게 한 스티그(Stig, 루크 아이스너 분)가 이제는 또 정신 차리고 엄청 미안해한다.

이제는 덩클먼의 완전한 아군이나 다름없고, 조디의 친구 파리다(Fareeda, 안젤리카 워싱턴 분)에게는 그렇게 면박을 당하면서도 화 한번 내지 않는다.

미운 정도 정이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스티그가 파리다에게 경멸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따라다니다 보니, 결국엔 스티그가 파리다랑 커플이 되는 일까지 생긴다.

하... 이건 뭐 2000년대 인터넷 소설에서 여주랑 남주 친구들끼리 이어지는 악습(?)을 보고 배운 건가...

도대체 왜 조연들을 커플로 엮어 대는지 모르겠다. 이미 연애 감정은 조디-덩클먼, 토미-조디, 전편에서 조디네랑 같이 방 탈출 게임 갔던 그 남자애(이름이 뭔지 기억이 안 난다)-조디, 이렇게 많이 있거든요... 굳이 조연들까지 그러지 맙시다 정말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IMDB에서 <톨 걸>과 <톨 걸 2>를 찾아보면 후자가 전자보다 별점이 낮은데(이 리뷰를 쓰는 시점 2022년 2월 26일 기준으로, 전자는 5.2점, 후자는 4.7점),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

유치뽕짝이라 못 봐주겠다는 <로열 트리트먼트(Royal Treatment, 2021)>가 역시 같은 시점에 5.2점인데 그것보다 못하면... (이마 짚)

나는 너무너무 바쁘다가 진짜 반나절 조금 숨 돌릴 틈이 났을 때, 진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비우고 볼 뭔가가 필요해서 이걸 봤는데, 과연 이걸 보기에 적절한 정신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그냥 정신을 놓고 볼 만한 게 필요하시다면 이것에 한번 도전해 보시라. 혹시 모르지 않는가. 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자양 강장제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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