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ost Daughter(20212, 로스트 도터) - 모성의 신화, 그리고 '평범한 엄마'가 아닌 엄마

by Jaime Chung 2022. 2. 18.
반응형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ost Daughter(20212, 로스트 도터) - 모성의 신화, 그리고 '평범한 엄마'가 아닌 엄마

 

 

감독: 매기 질렌홀(Maggie Gyllenhaal)

 

레다 카루소(Leda Caruso, 올리비아 콜맨 분)는 현재 안식년을 즐기고 있는 영어 교수이다. 그녀는 그리스의 한 바닷가 마을에 쉬러 왔다.

그곳에서 그녀는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놀러 온 한 가족을 만나게 된다. 레다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 여인인 캘리(Callie, 다그마라 도민칙 분), 그녀의 남편, 남동생 토니(Toni, 올리버 잭슨-코헨 분), 토니의 아내 니나(Nina, 다코타 존슨 분), 토니와 니나의 딸인 엘레나(Elena, 아테나 마틴-앤더슨 분).

레다는 니나와 엘레나를 볼 때마다 자신의 두 딸, 비앙카(Bianca, 로빈 엘웰 분)와 마사(Martha, 엘리 메이 블레이크 분)의 기억에 사로잡힌다.

 

해변가에서 쉬며 작업 중인 레다
젊을 적 레다(제시 버클리 분)
젊을 적 레다와 두 딸들
니나

 

<나의 눈부신 친구>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매기 질렌홀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 작가는 "여성 감독이 이 작품을 맡아야 한다"라는 조건으로 영화화를 허가했다고 한다.

아마 이 작품의 주제 자체가 굉장히 여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오직 여성 감독만이 그걸 잘 이해하고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겨서 그런 듯하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레다가 끊임없이 자기가 버린 두 딸들의 기억에 휩싸이고 직면하게 되는데, 그걸 남성이 100%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레다는, 제목에도 쓰긴 했지만, '평범한 엄마'가 아니다. 여기에서 평범한 엄마라고 함은, 보통 흔히 떠올리는 '엄마'의 이미지에 걸맞는 그런 엄마를 말한다.

자기를 희생해서 자기 자식들을 보살피고, 자신이 좀 괴로워도 자식들이 행복하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같이 기뻐하는 엄마.

말 그대로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그런 엄마 말이다.

 

(아래 접은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립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 분들은 펼치지 말고 바로 내려가 주세요!)

더보기

하지만 레다는 그런 엄마가 아니다. 영화의 현재 시점에서 레다는 이미 영어 교수가 되었다.

그 말인즉슨, 젊은 시절 레다는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썼다는 뜻이다. 극 중 레다가 48세라고 하는데, 첫째 비앙카가 25살, 둘째 마사가 23살이라고 했으니까, 계산을 해 보면 레다는 첫 아이를 23살에, 둘째는 25살에 낳은 셈이 된다. 

물론 아이들은 어려서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데 교수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면서 애들까지 키우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거다.

학문적인 연구 해야지, 발표해야지(세미나, 학회 등 필수 참가), 법적인 뇌물이나 향응 제공까진 아니더라도 일단 다른 교수들과 어울려 줘야지(그래야 자기 편이 되어 주고 나중에 정교수 자리에도 꽂아 줄 것 아닌가)...

애를 돌봐주는 사람이 따로 있고 (일명 '아내') 자기는 교수 되는 일에만 집중해도 힘든 게 그 일인데, 둘 다 하려니 얼마나 미칠 노릇이겠는가.

그래서 젊을 적 레다(제시 버클리 분)는 아이들을 돌보며 짜증도 내고, 화도 낸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라 미성숙하게 구는 것도 당연하지만, 해야 할 일이 많고 바쁜 레다 입장에서 그럴 때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다 상냥하고 다정하게 '그러면 안 되지요~' 하는 식으로 예쁘게, 둥글게만 말이 나올 수 없는 것도 또 당연하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지금 내가 좀 힘들면 안 힘들 때마다 참을성도 줄어들고, 불평도 더 할 수 있고, 짜증도 날 수 있는 거다. 엄마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사회는 엄마가 '완벽한' 인간이길 바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애들에게는 다정하고 상냥해야 하고, 절대 화를 내거나 때리면 안 되고, 언제나 아이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고 등등. 게다가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그냥 그렇게 저절로 되는 줄 안다. 이게 바로 '모성의 신화'이다.

엄마는 언제나 숭고하고, 자애롭고, 늘 희생하며, 기타 등등.

 

그런 불가능한 이상에 레다가 들어맞지 않았기로서니, 레다가 형편없는 인간이라거나 못된 여자인 건 아니다.

그냥 레다는 평범한 사람이다. 레다가 연구를 하다가 필을 받았는지 슬그머니 자기 위로를 하며 잠시 즐거움, 기쁨을 맛보려 하는데 아이들이 와서 '엄마 전화 왔어요' 해서 분위기가 다 깨지는 장면에서 그걸 느꼈다. 레다는 그냥 사람이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워도 내가 힘들면 잠시 누워서 눈 붙이고 쉬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레다가 학회에서 하디(Professor Hardy, 피터 스카스가드 분)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엄마가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가진 매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끌렸던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불륜 얘기 나오면 극혐하는, 선비라고 하자면 선비인 사람인데(<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기차에 몸을 던져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칠 뻔했다), 이때 레다의 심정은 이해가 됐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딱히 나오지 않아 모르겠는데,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건 분명 아니다.

학회에서의 불륜 이후,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하디와 몇 년(2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이 살다가 그를 떠난 후, 다시 아이들을 잠시 만남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완전히 돌아가지 않은 것도,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레다 말대로, 아이들이 '짓누르는 듯한 책(crushing responsibility)'이기 때문에, 그걸 내려놓고 좀 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엘레나가 애지중지하는 인형 나니(Nani)를 레나가 슬쩍한 것도, 그녀가 그냥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 준다.

레다는 자신이 어릴 적 갖고 놀던, 미나(Mina)라는 인형을 두 딸아이들에게 주었는데, 어느 날 딸아이(마사였던 걸로 기억한다)가 그 인형에다 낙서를 해서 아주 망쳐 버렸다. 그래서 그 아이를 호되게 혼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나도 아끼는 인형이 있었는데...' 하고 그리운 마음에 나니를 슬쩍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뒤늦게라도 (이제는 다 커 버린) 딸아이에게 그 인형을 주면 조금은 보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도 있었을지 모르고.

어쨌거나, '엄마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에게 화내지 말아야 한다'라는 모성의 신화를 깨 버리고, 그냥 레다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인형이 망가졌을 때) 보통 인간답게 화를 낸다. 그래서 나는 레다가 좋았다.

 

더 좋은 건, 레다가 자신의 '잘못'(아이들을 버린 것)을 딱히 정당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 눈물로 참회하지도 않는다는 것.

니나와 엘레나를 볼 때마다 아이들의 기억에 휩싸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그녀는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나.

영화 마지막에 레다가 비앙카와 마사와 전화 통화 하는 걸 들어 보면 또 아이들과 그렇게 나쁜 사이인 것은 아닌 듯하다.

물론 상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도 안 하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라는 것. 레다가 한두 마디 할 때 비앙카와 마사는 뭐라뭐라 재잘재잘 이야기하기 바쁘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레다가 캘리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며 통성명을 할 때 캘리는 레다의 이름을 잘못 알아듣는다. '레나라고요?' 하면서.

그리고 레다가 자기가 소중히 아꼈던 인형 '미나' 이야기를 니나(잃어버린 엘레나를 찾아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에게 했을 때 이 인형 이름도 '니나요?' 하고 잘못 알아듣는다.

두 번 다 레다는 자기가 말하려던 바를 다시 말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뭔가 의미하지 않나 싶다.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틀리게 오해받고('애 엄마'에게 개인적 이름이 뭐가 중요해? 애 엄마는 그냥 엄마지!), 자신의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굳이 꺼내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비슷한 거라고 오해받는다('미나'라는 인형 이름을 자기 이름인 '니나'로 오해하는 니나처럼).

다시 말해, 사람들이 가진 '엄마'라는 구체적인 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개인(레다)보다 먼저 존재해서, 개인의 경험이 이해되는 것을 막는다. 뭐 그런 걸 나타내는 장치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원작 소설 커버

 

줄거리만 따라가서는 '뭐야, 그래서 뭐 어쨌다고?' 싶을 수 있는 영화이긴 하다. 그럴 게 아니라, 레다의 행동이 얼마나 평범한 인간인지를 보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레다가 한 일들은 평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는 행동들이고, 그래서 레다가 딱히 악하거나 천성이 못되어서 자식들을 버린 게 아니라는 것, 그걸 보고 이해하는 게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 같다.

 

 

참고로 레다가 머무는 바닷가 마을은 '쿄펠리(Kyopeli)'라는 이름의 그리스 마을로 나오는데, 허구의 지명이다. 원작 소설의 배경은 이탈리아이다.

https://thecinemaholic.com/where-does-the-lost-daughter-take-place-where-is-it-set/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아래 리뷰들도 참고하시길.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2/jan/05/the-lost-daughter-elena-ferrante-maggie-gyllenhaal-motherhood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front-row/maggie-gyllenhaals-the-lost-daughter-is-sluggish-spotty-and-a-major-achievement

https://theconversation.com/the-lost-daughter-portraying-the-darker-sides-of-motherhood-on-the-page-and-the-screen-17448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