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I Want You Back(2022, 아이 원트 유 백) - 이별 후 상부상조 로맨틱 코미디
감독: 제이슨 오를리(Jason Orley)
엠마(Emma, 제니 슬레이트)는 남친과 식사를 하다가 이별 통보를 당한다. 남친 노아(Noah, 스콧 이스트우드 분)에게 새 여자, 지니(Ginny, 클라크 배코 분)가 생긴 것이다.
그녀는 노아가 트레이너로 일하는 헬스장 근처에서 파이 가게를 하고 있다는데, 아니 자기 몸 만든다고 맨날 영양 어쩌고 하던 녀석이 무슨 파이? 엠마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기 오늘 방금 막 차인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그의 이름은 피터(Peter, 찰리 데이 분). 여친 앤(Anne, 지나 로드리게즈 분)의 조카 토비(Toby, 카이센 아세베도 분)의 생일 파티에 가서 조카랑 놀아 주다가 장렬하게 차였다.
이유인즉슨, 피터는 너무 안정 지향적이라고 할까, 나이스하긴 한데 과감하거나 도전적인 멋이 없다는 이유였다. 지금까지 둘이 6년이나 사귀면서 어디 멀리 여행 한 번 간 적 없을 정도로, 피터는 모험 정신이 없는 남자였다.
앤이 새로 만나는 남자 로건(Logan, 매니 자신토 분)은 앤과 같은 학교에서(참고로 앤은 영어 교사다) 일하는 연극 교사로, 앤이 바라던 모험 정신과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해 보이는 남자라고 한다.
어쨌든 엠마와 피터는 오늘 각자의 애인들에게 차였다.
이런 그 둘이 만나게 된 것은, 각자의 일터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 같기 때문이다. 엠마도, 피터도, 일하다가 슬픔에 눈물이 벅차올라 층계참에 가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그래서 최근 각자 애인과 헤어졌음을 밝히고 친구가 되었다.
동병상련의 슬픔을 가진 두 사람은 '슬픔을 나누는 자매(sadness sisters)'가 되어 노래방에서 같이 애인을 그리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같이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그런데 둘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다 떠오른 아이디어. 만약에 우리가 서로의 (구)애인들의 새 연애를 방해해서, 각자 원래 애인에게 돌아오게 하면 어떨까? 둘 다 각자 애인에게 차였으니까, 상부상조 하자는 거다. 오, 괜찮을 거 같은데?
과연 이들은 서로를 도와서 각자의 원래 애인과 재결합할 수 있을까?
아마존 프라임 단독 영화. 안 그래도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만한 영화가 뭐 없나 찾다가 발견한 건데 의외로 상당히 괜찮다.
일단 기본 설정 자체가 흥미롭다.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애인의 새 연애를 방해해서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해 볼까, 하는 생각은 솔직히 누구나 다 한 번쯤 해 보지 않나.
이제 거기에다가 'strangers on a train'('열차 안의 낯선 자들'이라는 뜻이고, 동명의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도 있다)' 트로프(trope, 쉽게 말해 극을 이끌어나가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를 끼얹었다.
이 트로프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서로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서로를 돕는 것이다. 히치콕 영화에서처럼 각자 상대방을 위해 살인을 대신 해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컨대 사는 곳도 다르고 평생 살면서 단 한 번도 스쳐 지나간 적 없던 철수와 영희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사연을 듣고 나서, 서로가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대신 죽여 주기로 합의한다 치자.
철수는 자기를 떠나간 전 애인이 미워서 그녀를 죽여 달라고 하고, 영희는 자기를 괴롭히는 상사가 미워서 그를 죽여 달라고 한다면, 철수 입장에서 영희의 상사는 자기와 완전 관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적 감정도 이입되지 않고, 또한 정말 관련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경찰 쪽에서도 살인 사건의 동기를 찾거나 범인을 프로파일링하기 힘들 것이다. 영희 입장에서 철수의 전 애인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상대를 도와 뭔가 한다는 게 흥미로운 트로프인데 그걸 이제 연애 훼방에 써먹으니 흥미도가 배가 되었다.
내가 넷플릭스를 참 열심히 봐서 그런가, 여기 나오는 주연 배우들을 거의 다 알겠더라.
일단 제니 슬레이트는 미드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Parks and Recreation)> 시리즈에서 톰과 장-랄피오조차 무서워하는 '또라이' 모나-리사(Mona-Lisa Saperstein)으로 확실히 기억하고 있고, 찰리 데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Horrible Bosses, 2011)>(속편은 2014)에서 데일(Dale) 역이었다.
지나 로드리게스는 미드 <제인 더 버진(Jane the Virgin)>의 주인공 제인(Jane)(신기하게 이건 딱 1화만 봤는데도 얼굴이 기억나더라), 그리고 로건은 미드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에서 제이슨(Jason)이었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 작은 역할로 피트 데이비슨(Pete Davison)도 나온다. 이 영화 감독이 <빅 타임 어덜레슨스>의 그 감독이라 그렇다.
이 영화에 피트 데이비슨이 카메오로 나오는 줄은 상상도 못 하고 보기 시작한 건데, 여기에서도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마치 그가 내 동네 친구가 된 듯했다. 아니, 요즘 들어 영화만 틀면 나오니 동네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듯.
또한 이건 트리비아(trivia)지만, 이 영화에선 엠마가 로건에게 접근해 유혹하려고 로건이 감독을 맡은 (초등학생들의) <Little Shop of Horrors(1986, 흡혈 식물 대소동)> 뮤지컬 프로덕션에 봉사자로 참여하는데, 이때 만나게 되는 꼬맹이 트레버(Trevor, 루크 데이비드 블룸 분)가 <킹 오브 스태튼 아일랜드>의 그 해롤드(Harold)이다.
그건 그렇고,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영화 초반에 '올, 이러다가 엠마랑 피터랑 이어지는 거 아니야?'라고 궁예질을 했는데, 그럼 그렇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사실, 생각을 해 보면 이해가 된다. 애초에 엠마와 피터가 각자 애인에게 차였다고 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없을 정도로 아예 매력이 없는 구제불능인 게 아니었다.
그냥 헤어지고 나서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듯, '어떻게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안 돼, 나에게는 이 사람뿐이야' 하고 헤어진 전 애인을 그리워해서 서로를 도와주기로 한 거지, 엠마나 피터 둘 다 좋은 사람이다.
엠마는 (위에서 말한 그 꼬맹이) 트레버와 친구가 되고, 그 애의 게이 아빠가 바람피우는 걸로 심란해하는 일을 상담해 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피터는 자신의 조부모님을 대하듯 노인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이 나라(미국)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원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모험적인 면도 사실 있다.
게다가 엠마는 피터가 노인들에게 얼마나 상냥한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나서 그의 꿈을 응원해 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하다. 앤도 그렇게 못 했는데.
그들이 새로운 연애를 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던 건, '이 사람(구 애인)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이었다. 그게 엠마와 피터가 각자의 삶에서 정체된 듯한, 막힌 듯한 느낌을 받게 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들이 '이제 이 사람 아니어도 괜찮겠다'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삶에서 진짜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엠마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끝마칠 수 있도록 학비 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피터는 진짜 노인들을 편하게 해 드리고 자기 조부모님처럼 잘 대접할 수 있는 노인 요양 시설을 시작하기 위해 사업 계획을 짜고 대출을 받는 식으로.
각자가 (원래) 애인을 만나면서는 현실에 안주하느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드디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헤어짐은 오히려 '불행으로 가장한 축복'이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누구나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다들 한동안 빠져 있을 법한 그 상태, 즉 다시 말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그 상태는 사실 '변화 없음, 두려움, 자신의 처지에 안주함'의 비유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보자.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겠지만, 그렇게 다시 만난다고 해서 그 이후로 둘이 뭐 평생을 행복하게 살 확률이 몇이나 되겠나?
다시 만나는 커플은, 애초에 둘이 헤어져야 했던 이유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또 헤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거나, 상대에게 마음이 식었다는 것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커플이 사랑을 바탕으로 대화를 하고 노력을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도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애초에 엠마와 피터의 상대들은, 엠마와 피터가 노력을 한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상태였던 거다.
그런 상태에서 각자 애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보통 사람들이라면서 정말 딱 슬픔에 잠긴 상태에서 구 애인에게 전화 몇 번 하고 이불킥 좀 하면서 끝낼 수 있었던 생각이었는데, 어쩌다가 '서로 상부상조하자'라는 아이디어가 딱 떠올라 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흘러간 거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고, 이별은 반드시 불행이나 슬픔, 고통, 저주가 아니라 뭔가 좋은 일이자 전조일 수 있다. 어쨌든 그건 (무언가의 끝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니까. 엠마와 피터가 이별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처럼.
재미도 있는데 의미도 있고, 이별과 새 출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진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