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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윤명옥,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시>

by Jaime Chung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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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윤명옥,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시>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은 내 최애 시인이다. 한 낭만 하는 나는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남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사랑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 커플을 좋아한다(이 부부의 사랑 이야기는 잠시 후에 자세히 하겠다). 올해 독서 챌린지에 ‘시집 또는 서사시 읽기’가 포함돼 있어서 이걸 한번 격파해 볼까 싶어서 이 시집을 골랐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 자체는 좋지만 이 책의 번역은 직역투 느낌이 많이 난다. 예시를 하나 보여 드리겠다. 아무래도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소네트 43번)’나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소네트 14번)’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두 편이 제일 유명하니까.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엘리자베스가 쓴 <포르투갈어에서 옮긴 시>(실은 엘리자베스 본인이 쓴 것을, 포르투갈어로 쓰인 시를 영어로 옮긴 것처럼 꾸민 ‘콘셉트’이다) 중 소네트 23번이다. 한번 보시라. 원문 바로 옆의 번역은 내가 학부 시절 피천득 선생이 엮은 <내가 사랑하는 시>에서 보았던 번역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쓴 것이다. 이게 직역투도 훨씬 덜하고 더 자연스럽게 읽혀서 ‘초두 효과(가장 처음에 들어온 정보가 머리에 오래 남는 현상)’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 버전을 선호한다. 맨 오른쪽에 있는 번역이 내가 이번에 읽은, 이 시집을 엮은 이가 번역한 버전이다.

 

Sonnet 23 - Is it indeed so? If I lay here dead  소네트 23 - 참으로 그러하리까, 이 자리에 누워 내가 죽는다면  소네트 23 - 정말 그런지요? 만일 내가 여기 죽어 누워 있다면 
by Elizabeth Barrett Browning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Is it indeed so? If I lay here dead,
Wouldst thou miss any life in losing mine?
And would the sun for thee more coldly shine
Because of grave-damps falling round my head?
I marvelled, my Beloved, when I read
Thy thought so in the letter. I am thine-
But . . . so much to thee? Can I pour thy wine
While my hands tremble? Then my soul, instead
Of dreams of death, resumes life's lower range.
Then, love me, Love! look on me-breathe on me!
As brighter ladies do not count it strange,
For love, to give up acres and degree,
I yield the grave for thy sake, and exchange
My near sweet view of Heaven, for earth with thee!
참으로 그러하리까, 이 자리에 누워 내가 죽는다면
내가 없음으로 당신이 삶의 기쁨을 잃으리까
무덤의 습기가 내 머리를 적시운다고
햇빛이 당신에게 차라우리까
그러리라는 말씀을 편지로 읽을 때
나는, 임이여, 놀랐나이다, 나는 그대의 것이외다
그러나… 임께야 그리 끔찍하리까
나의 손이 떨리는 때라도 임의 술을 따를 수 있사오리까
그렇다면 나의 영혼은 죽음의 꿈을 버리옵고
삶의 낮은 경지를 다시 찾겠나이다
사랑! 나를 바라보소서, 나의 얼굴에 더운 숨결을 뿜어 주소서
사랑을 위하여 재산과 계급을 버리는 것을
지혜로운 여성들이 이상히 여기지 않듯
나는 임을 위하여 무덤을 버리오리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고운 하늘을
당신이 있는 이 땅과 바꾸오리다
정말 그런지요? 만일 내가 여기 죽어 누워 있다면, 그대는
잃어버린 내 생명 속에 있는 어느 생명도 그리워할는지요?
무덤의 이슬이 내 머리 주변에 떨어지기 때문에,
그대에게 태양은 더 차갑게 비칠는지요?
사랑하는 이여,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그대의 편지를 읽고서 나는 감탄했어요. 나는
그대의 것이에요. 하지만… 그대에게 나는 그렇게도 많이
소중한 존재인지요? 내 손을 떨면서 내가 그대의 포도주를
따라도 될는지요? 그러고 나면 내 영혼은 죽음을 꿈꾸는 대신
더 낮은 범주의 삶을 다시 시작하곘지요. 그러고 나면
나를 사랑해 주세요, 연인이여! 나를 바라보세요. 내게 숨을 쉬세요!
더 눈부신 숙녀들이, 내가 사랑을 위해 많은 땅과 지위를
포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대를 위해 무덤을 포기하고, 내 가까이에 있는 달콤한
천국의 광경을 그대와 함께 있는 지상과 바꾸겠어요.

 

두 가지 번역을 딱 놓고 보면 느끼시겠지만, 후자는 ‘~는지요?’ 하는 어색한 말투만 문제인 게 아니다. 2행 원문을 보면 ‘Wouldst thou miss any life in losing mine?’이라 되어 있는데 이건 말 그대로 내가 목숨을 잃으면 상대도 삶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냐고 묻는 것이다. 따라서 피천득 선생의 번역이 옳다(’잃어버린 내 생명 속에 있는 어느 생명도 그리워할는지요?’는 당최 무슨 뜻인지 감도 안 잡힌다). ‘breathe on me’는 말 그대로 나를 향해 숨을 쉬라는 뜻인데 ‘내게 숨을 쉬세요!’ 이것도 틀리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이 시는 죽음(화자가 연인을 만나기 전까지 바라던 것)과 삶과 사랑(화자가 연인을 만나고 난 이후 바라게 된 것)의 이미지를 대조하고 있으므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좀 더 강하게 드는 ‘나의 얼굴에 더운 숨결을 뿜어 주소서’가 더 생동감이 있다. 직역투도 물론 훨씬 덜하고. ‘bright’에는 ‘(빛이) 밝은, 눈부신, 빛나는’이란 뜻 외에도 ‘똑똑한’이라는 뜻도 있다(네이버 영어 사전에 검색해도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 뜻이다). 숙녀들의 외양이 눈이 부시다는 게 아니라, 사랑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 재산과 계급(지위)를 버리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지혜롭다’는 의미이다. 눈부신 숙녀들은 도대체 뭐냐고요… 이 시 한 편에도 이 정도의 오류와 어색한 표현이 넘치는데 시집 전체로 보면 어떨지, 굳이 길게 말하지 않겠다.

위에 내가 브라우닝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는데, 그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의 처녀적 이름은 엘리자베스 배럿인데, 아버지가 자메이카에 사탕수수 농장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이미 여덟 살에 호메로스의 작품을 희랍어 원전으로 읽을 정도로 명석한 소녀였다. 그런데 열다섯 살 때 낙마 사고로 척추를 다치고 스무살에는 가슴 동맥이 터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당시로서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희귀병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허약하니 일을 할 수도 없고, 집안일을 돌볼 수도 없어 그저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쓴 시가 1844년, 엘리자베스가 서른여덟 살 때 출간되자 그녀는 인기 작가의 대열에 올랐고, 로버트 브라우닝도 이 시를 읽게 되고 그녀의 영혼과 사랑에 빠진다. 로버트는 엘리자베스에게 진심으로 구애했으나 자기보다 6살이나 어린 혈기왕성한 청년이 아픈 아내를 돌보느라 청춘을 즐길 수 없을까 우려해서,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 그를 계속 거절했다. 둘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로버트는 ‘나는 당신의 시를 나의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 그리고 사랑합니다, 당신을.’이라고 썼고, 엘리자베스는 ‘제가 쓴 시가 저의 꽃이라면 저의 나머지는 흙과 어둠에 어울리는 한낱 뿌리에 불과해요.’라며 겸손하게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힘은 피해갈 수 없는 것. 계속되는 로버트의 진심 어린 구애에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마음을 연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열한 명의 자식들 중 그 누구도 결혼하지 못하도록 독재자처럼 과보호하는 사람이었으로, 이 커플은 엘리자베스의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서 로버트의 친구와 엘리자베스의 하녀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 둘은 엘리자베스의 건강을 위해 날씨 좋은 이탈리아의 플로렌스로 떠났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사랑의 힘’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허약한 건강과 사랑하는 남동생의 죽음으로 본인이 오래 살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던 엘리자베스는 남편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네 번의 유산 끝에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이름을 따 ‘로버트’라 부른 아들까지 낳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사랑의 힘은 굉장한 것이다. 이제 왜 위의 시, 23번 소네트에서 죽음을 운운하는지 감이 오실 것이다. 이거야말로 병과 죽음을 극복한 강력한 사랑의 이야기 아닌가!! 세상에 이것보다 더 로맨틱한 이야기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1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마치고 1861년에 사망했다. 엘리자베스가 숨을 거둔 후에는 로버트는 재혼하지 않았고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향한 시를 쓰며 살았다. 그러다 1889년,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28년 후 로버트도 마침내 부인의 뒤를 따랐다. 여기까지가 진짜 완벽한 사랑 이야기의 완성이다. 아내가 먼저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녀를 그리워하며 시를 쓴 남편. 이게 만약 소설이나 TV 드라마, 영화였다면 설정 과다라고 욕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데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이었고 문학사의 일부라는 게 이 이야기를 완벽한 로맨스로 만들어 준다. 하, 이러니 내가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

진짜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실 하나만 더. 현재는 대체로 남편 로버트 브라우닝이 더 널리 알려져 있고 평도 좋은 것 같지만 사실 당대에는 엘리자베스가 더 유명한 시인이었고, 로버트는 ‘엘리자베스의 남편’ 정도로 여겨졌다. 예전엔 엘리자베스가 더 잘나갔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엘리자베스를 존중하고 존경하고 더 사랑했다는 거. 로버트는 인성까지 완벽했다. 하, 엘리자베스 너란 여자, 다 가진 여자…! 연상녀x연하남의 바람직한 본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태껏 시집보다 브라우닝 부부에 관해 더 길게 이야기했는데, 그건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는 시인을 이해하는 데 그녀의 삶을 아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번역본에 관해 평하자면, 몇 편만 뽑아서 옮긴 게 아니라 <포르투갈어에서 옮긴 시>의 소네트 대부분과 초기 시까지 거의 다 가져온 것은 좋다. 하지만 번역이 굉장히 직역투가 많고 우리가 흔히 ‘시적’이라고 생각하는 유려한 표현으로 옮겨지지 못한 부분이 많은 점은 무척 아쉽다. 가능하다면 다른 번역본을 참고해서 본인이 보기에 제일 자연스럽게, 그리고 정확하게 옮겨진 버전으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시를 한두 편 정도 추려서 (다른 시인들 시와 같이) 엮은 게 아니라 그래도 좀 상당수를 골라 괜찮게 잘 옮겼다 싶은 번역본을 발견한다면 여러분과 공유할 테니 걱정 마시라. 내가 시를 자주 읽지는 않으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알게 되면 꼭 알려 드리겠다고 약속 드린다. 그럼 여러분도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아름다운 시에 빠져 보시길!

  • EBS 지식e에서 이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링크된 EBS 공식 홈페이지에서 로그인하면 전체 영상을 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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