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Weird: The Al Yankovic Story(위어드)>(2022)
⚠️ 본 영화 리뷰는 영화 <Weird: The Al Yankovic Story(위어드)>(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피(다니엘 래드클리프 분)는 어릴 적부터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지어 부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알피는 아빠(토비 허스 분)와 엄마(줄리앤 니콜슨 분) 앞에서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Amazing Grace)’에 포도 먹는 이야기의 가사를 새로 지어 불렀다가 ‘그런 사악한 짓은 하지 말라’며 혼이 난다. 얼마 후, 집에 방문한 아코디언 세일즈맨을 아빠가 두들겨 패는데, 엄마는 그런 아빠 몰래 아무도 모르게 혼자 연주하라며 알피에게 아코디언을 사 준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된 알피. 친구들과 몰래 폴카 음악에 춤을 추는 파티에 갔다가 아코디언을 연주한 게 걸려서 다시 한 번 혼이 난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독립하자, 이제 더 이상 알피를 막는 것은 없다. 뭐든 부모님의 방해 없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 보라는 룸메이트들의 응원에 알피는, 그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더 낵(The Knack)의 ‘나의 샤로나(My Sharona)’에 새로운 가사를 지어 부른다. 이름하여 ‘나의 볼로냐(My Bologna)’. 볼로냐소시지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어쨌든 알피는 룸메이트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 힘입어 곧장 기숙사 화장실에서 이를 녹음하고, 이 녹음 테이프를 라디오 방송국에 보낸다. 정말 말 그대로 한순간에 큰 인기를 얻게 된 알피. 그는 과연 패러디 노래로 쇼 비즈니스에 입문할 수 있을까?
패러디 노래들도 유명한 ‘위어드’ 알 얀코빅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코미디 영화. ‘위어드’ 알 얀코빅은 실존 인물인데 왜 내가 이 영화를 그의 삶에 ‘기반한’ 영화 또는 ‘전기 영화’라고 말하지 않는가 궁금해하실지도 모른다. 그건 이 영화의 정체성과도 아주 큰 관련이 있는데, 결론만 먼저 말한다면 이건 알 얀코빅의 삶에 별로 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더 허풍선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설정과 상황을 보여 주며 실제 알 얀코빅의 삶을 보여 주는 데 관심이 없음을 확실히 한다. 예를 들어, 실제로 알 얀코빅의 부모님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알 얀코빅이 쇼 비즈니스에서 성공할지는 몰랐어도 최소한 그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음악을 하는 걸 언제나 지지해 주셨다고 한다. 알 얀코빅은 마돈나(극 중에서는 에반 레이첼 우드 분)와 데이트한 적이 없으며 (무대 뒤에서 45분 정도 이야기한 게 전부라고 한다), LSD 같은 마약엔 손댄 적도 없고, 이렇다 할 스캔들도 없이 그냥 조용하게 잘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그의 음악이 다른 이들의 음악의 ‘패러디’인 것처럼, 그의 삶의 ‘패러디’라 할 수 있다. 마약, 음주, 그리고 섹스 스캔들 등으로 무너지는 스타 이야기가 전기 또는 음악인을 다룬 영화엔 흔한 전개이다 보니 이 영화도 그런 류의 영화를 ‘패러디’한 것이다. 팩트 체크 따위 갖다 버리고 그냥 웃으면 된다.
애초에 시작부터 영화는 진지할 생각이 없음을, 대놓고 우스꽝스러울 거란 점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알피의 엄마가 (알피가 <주님의 놀라운 은총>의 가사를 바꿔 불러 아빠에게 혼이 난 후) 알피에게 “우리는 네가 진정한 너의 모습을 버리고 네가 좋아하는 일도 다 관뒀으면 좋겠단다(stop being who you are and doing the things you love).” 아니, 애초에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어디 있다고 ㅋㅋㅋㅋ 게다가 알피의 아빠가 아코디언을 파는 세일즈맨을 때려눕혀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데 세일즈맨이 “저 무기폐(無氣肺)가 온 거 같아요(I have a collapsed lung).”라고 (죽어가는 와중에) 아주 예의바르게 말하니 “우리 이야기하고 있잖아요(we’re trying to have a conversation here).”라며 세일즈맨의 말을 탁 자른다. 이렇게 이 영화는 일부러 오버를 하며 오히려 이것이 농담이고 장난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알피가 <Eat It>(물론 다들 잘 아시다시피 마이클 잭슨의 <Beat It>를 패러디한 노래)을 마이클 잭슨보다 먼저 써서 대박이 났는데, 마이클 잭슨이 그 노래를 패러디했다는 이야기나 이 노래 때문에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가 ‘위어드’ 알 얀코빅의 팬이 되어 그를 거의 협박하면서까지 자기 생일 파티에 초대했다는 이야기처럼. 아예 이렇게 얼탱이가 없어야 ‘이 사람이 지금 웃기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거구나’ 하고 알고 그냥 웃어넘길 수 있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영화에 가진 불만은 딱 하나다. 아시다시피 ‘위어드’ 알 얀코빅은 마돈나의 <Like a Virgin>을 패러디한 <Like a Surgeon>을 발표했다. 그 노래를 써먹기 위함인지 마돈나도 영화에 등장하는데, 알 얀코빅이 기존 가수의 노래를 패러디하면 패러디의 대상이 된 원곡도 덩달아 판매량이 오른다는 ‘얀코빅 범프(Yankovic Bump, 실제로 이런 일이 있긴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것만큼 대단한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를 노리며 그를 유혹하고 또 그를 성적 매력으로 유혹해서 제멋대로 조종하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니, 위에 쓴 것처럼 파블로 에스코바가 얀코빅을 좋아해서 자기 생일 파티에 부르려고 한다는 ‘얼탱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야 농담인 줄 알지. 게다가 파블로 에스코바야 마약왕이니까 잃을 ‘이미지’란 것도 없고 딱히 생각해 주지 않아도 되지만, 마돈나는 같은 업계 사람이잖아요… 이 영화가 2022년작인데 여태까지 마돈나가 이 영화에 등장한 자기 캐릭터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는 기사는 없더라(얀코빅 측에서 ‘마돈나가 농담을 이해하길 바란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기사는 있다). 아무래도 좋다 싫다 말하면 그게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셈이니 아예 무시하기로 한 듯. 나 같아도 속상해서 차라리 무시하고 말 것 같다. 굳이 실존 인물, 그것도 같은 업계 사람, 그것도 이미지가 중요한 ‘여성’ 가수를 상대로 그래야 하나? 악당 비슷한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했던 거면 그냥 가상 인물,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서 시키면 안 됐던 걸까. 개인적으로 마돈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데 이건 마돈나가 보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처사다. 이런 점만 조금 신경 써 줬으면 진짜 아무도 피해입지 않는, 그냥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코미디가 되었을 텐데.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실제 알 얀코빅과 외모가 그렇게 닮지는 않았지만, 다니엘이 <그레이엄 노튼 쇼(The Graham Norton Show)>에서 <The Elements>를 부르는 게(유튜브 영상 참고) 인상적이어서 알 얀코빅은 그를 1순위로 캐스팅했다고. 다니엘은 이 영화를 위해 아코디언 연주법까지 배웠다. 잘하지는 못하는데 일단 ‘잘하는 척’ 연기할 정도는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위어드’ 알 얀코빅의 패러디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워낙에 유치한 걸 싫어하기도 하고 그가 새로 만든 가사가 원래 가사보다 낫다고 느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존 곡에 가사를 새로 붙이는 것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도 된다고 허용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원래 가사보다 예술성이라든지 스토리텔링이라든지 등등 그 어떤 기준으로도 낫지 않다면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는 건가 싶다.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은 싸우지 말고 그냥 피하라는 교훈이라도 있지, <Eat It>은 그냥 시리얼을 먹으란 얘기다. 어쩌라고…?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는 얀코빅에 의해 버스를 타는 일상적인 얘기로 전락한다. 그래서 그의 가사가 원곡보다 낫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무래도 패러디는 원곡의 라임을 비슷하게 이어가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제한돼 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적어도 원곡’보다’는 아니더라도 좀 나름대로 ‘깊은’ 또는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루려고 할 수는 없는 건가?
음, 이렇게 길게 불평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연기와 말도 안 될 정도로 어이없는 허풍과 과장이 이 영화를 코미디로 만든다. 가볍게 볼만한 기분 전환용 코미디를 찾는다면 이 영화가 적당할 듯. 아, 혹시나 내가 이 영화에 별 네 개를 줬다고 해서 오해는 하지 마시라. 별점을 주는 기준을 올해 (2024년) 바꿨는데, 별 네 개면 ‘괜찮다’라는 말보다 ‘좋다’가 먼저 나오는, IMDB로 치자면 6점은 넘는 영화라는 뜻이다. 진짜로 내 마음에 꼭 들고 잘 만든 영화였다면 별 다섯 개가 되었을 거다. 이 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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