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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n Barbara Met Alan(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2022)

by Jaime Chung 2024.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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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n Barbara Met Alan(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2022)

 

 

바버라 리시키(루스 메들리 분)는 클럽에서 ‘완다 바버라’라는 무대용 이름으 로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코미디언이다. 그녀가 남들과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어릴 적에 앓은 소아 류마티스관절염(Stills disease)으로 인해 걷기가 조금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는 점뿐이다. 그녀는 공연을 하면서 ‘조니 크레센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앨런 홀즈워스(아서 휴즈 분)를 만나게 되는데, 그 역시 폴리오(소아 마비) 때문에 다리가 조금 불편하다. 앨런은 바버라에게 작업을 걸고,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입이 걸고 동정받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불같은 성정의 바버라는 뜻을 함께하는 앨런과 같이 ‘장애인들의 직접 행동 네트워크(Disabled People’s Direct Action Network, 줄여서 DAN이라고 함)’라는 단체를 만들고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데…

BBC 2 채널에서 제작한, 실존 인물 바버라 리시키와 앨런 홀즈워스의 삶에 기반한 TV용 영화. 네이버에 검색해 보면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몇 편 있다. 실제로 장애가 있는 두 주연 배우가 장애가 있는 실존 인물의 역할을 연기했을 뿐 아니라(두 실존 인물은 영화 끝날 때 잠시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다. 바버라 리시키가 앨런 홀즈워스보다 더 분량이 많은데, 아마 아직 영국에서 사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현재 미국에서 지내기 때문인 듯), 이 영화를 감독한 두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고, 장애인 프로듀서를 비롯해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인재들이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의 이야기이자 실제 사건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바버라와 앨런이 주축이 된 DAN은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그리던 TV 프로그램, 예컨대 ‘텔레톤(telethon)’에 저항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장애인을 ‘동정’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 비장애인들이 도와줘야 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깔고 그들을 ‘도와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바버라와 앨런이 누군가. 그 누구에게도 동정받고 싶지 않아 하는 강인한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동정 따위 개나 줘(Piss on Pity)’라는 구호를 내세워 장애인들을 동정하지 말고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하기 힘든 극장 같은 곳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도 했다.

또한 DAN은 1990년대에 비폭력적인 시민 불복종을 통해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가장 유명한 것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해 (장애인들이 타고 다니기 불편한) 버스 같은 대중교통에 체인으로 자신의 휠체어를 묶고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한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장애인이 되었든 노동자가 되었든 여성이 되었든간에,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데모나 파업 등을 한다 하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그러느냐”고 뭣 모르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데모나 파업 등, 시위의 핵심 아닌가. 불편을 끼쳐야 ‘그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데?’ 하고 관심이라도 줄 것 아닌가. 피해를 하나도 안 끼치면서 ‘예의 바르게’ 불만 사항을 말하라는 건, 그냥 불만을 아예 표현하지 말라는 거다. 기득권자들만이 그렇게 ‘논리’나 ‘예의’ 등을 내세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할 수 있다. 약자들이 좋게좋게 ‘이러이러한 점을 개선해 주시오’라고 말했을 때 안 들었으니까 소란을 일으키면서 관심과 권익 보호를 요구하는 거 아니겠냐며. 휠체어를 버스 등에 체인으로 묶고 못 움직이겠다 시위하는 것 정도는 양반이지. 화염병을 던지길 했어, 뭘 했어…

DAN이 장애인 권익을 위한 단체로서 정치인들과 로비스트들과 협력해 표를 얻고, 법안이 엎어지고, 다시 시도하고 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결국 법안이 통과된다(영화에서 묘사되듯이, DAN과 협력해 기업이 사람을 고용할 때 장애인을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키자고 제안한 변호사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기업에게 실질적으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부담을 지울 수 없다’며 훼방을 놓았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딸이 하는 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통수를 치다니!). 취업이나 서비스, 물품, 교육, 그리고 교통 제공 면에서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영국 최초의 법안 ‘장애 차별법 1995(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1995)’는 이렇게 탄생했다.

감동적인 이야기에 약간 초를 치는 것 같지만 두 가지 개인적 감상을 덧붙이고 싶다. 일단 첫 번째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바버라가 입이 걸어서 (캐릭터를 그렇게 만든 게 아니고 실존 인물인 바버라 본인이 원래 그런 듯. 카메오로 등장해 바버라를 연기한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 내내 욕과 거친 표현이 나온다는 것. 그래도 그게 누구를 비하하는 또는 모욕적인 언사는 아니고, 그냥 ‘bloody’, ‘fuck’, ‘piss’ 뭐 이런 무난한(?) 것들이기에 나는 그렇게 불쾌하지 않았다(현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널리 퍼져 있는 혐오의 언어에 비하면 이 정도는 정말 너무 순한 맛 아닌가). 하지만 조금의 욕도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불편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좀 여성주의적인 거라고 할까, 그런 건데 바버라가 앨런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애 아빠란 작자는 ‘활동가’로 활동한다고 집에 자주 안 있어서 바버라가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가며 애를 키워야 했던 것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운동권’ 인사들 내에서 요즘으로 치면 ‘#미투’ 운동이 일어날 만한 사건이 일어나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며 이를 쉬쉬했다고 하던데, 그게 떠올랐다. 아무리 대단한 업적이 있는 남자라도, 결국 자기 애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 같은 ‘소소한’ 일들은 싫어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회피한다는 게 참 씁쓸했다. 대단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도 좋은 아버지는 될 수 없었구나. 남자는 결국 남자고, 여자는 결국 여자라는 건지. 이래서 바버라가 앨런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하고 바버라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여자로 살긴 힘들어…

장애인 실존 인물을 장애를 가진 배우가 연기한 것도 그렇고, 장애인 인물의 업적을 보여 주는 것도 그렇고, 꽤나 교육적이고 진보적이다. 장애인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또는 이와 관련해 교육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여 주)는 것도 좋을 듯.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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