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영화 후기는 <Dumb Money(덤 머니)>(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키스 길(폴 다노 분)은 ‘로어링 키티(Roaring Kitty)’라는 닉네임으로 유튜브에 투자 관련 영상을 올리는 ‘개미’, 즉 소액 투자자이다. 그가 다른 개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바로 월 스트리트가 주도한 공매도를 무효화하기 위해 ‘게임스탑(GameStop)’이라는 비디오게임 소매점의 주식을 사들이는 움직임을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것. 공매도란 ‘개인 혹은 단체가 주식, 채권 등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하는 행위’(위키페디아)로, 예를 들어 오늘 갑이 을에게 주식 1주를 빌려서 파는데, 내일 그 주식의 가격이 내리면 갑은 그 차익만큼 이익을 얻는다. 월 스트리트는 게임스탑의 주식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기업의 주식을 공매도했는데, ‘로어링 키티’가 “나는 그냥 이 주식이 좋다(I just like the stock!)”라며 이 기업의 주식을 잔뜩 매도하고 자신의 차트를 유튜브의 업로드했다.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라는 게시판 이용자들은 그런 그의 행동을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게임스탑)의 손해로 이익을 얻는 월 스트리트 ‘전문가’들의 행위(=공매도)에 공분하여 그를 따라 게임스탑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개미들의 단합에 따라 게임스탑의 주식은 점차 급등하고, 이에 ‘시타델 증권’의 켄 그리핀(닉 오퍼맨 분)을 비롯한 ‘월 스트리트 맨’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2021년에 있었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정확히는 논픽션 저자인 벤 메즈리히(Ben Mezrich)의 <The Antisocial Network(더 안티소셜 네트워크)>라는 책에 기반했다(참고로 이 저자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 <21>(2008)으로 만들어진 <Bringing Down the House>를 쓴 사람이다. MIT 학생 여섯 명이 블랙잭으로 카지노에서 대박을 낸 그 실화 말이다). 나도 그때쯤 로빈후드라는 앱과 이 사건에 대해 조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주식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도 어떻게 공매도라는 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그런 걸 누가 생각해 냈는지도. 하지만 이 사건을 간단히 설명할 수는 있다(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시다면 이 기사가 일련의 사건을 잘 정리해 놓았으니 참고하시라). ‘로어링 키티’가 주도하는 개미들이 월 스트리트의 전문가들과 맞서 싸운 얘기라고. 여기에서 로빈후드라는 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처음에 로빈후드는 누구나 수수료 없이 주식을 사고팔 수 있는 주식 앱으로 인기를 얻었다. 문제는 개미들이 주식을 사들이며 게임스탑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다시 말해 이 기업의 주식을 공매도했던 월 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이 막심한 손해를 보기 시작하자, 개미들이 주로 사용한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Robinhood)’는 헤지 펀드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게임스탑의 주식을 사지 못하게 앱의 사용을 제한했다(다른 앱은 다 사고팔 수 있었는데 딱 이 주식만 사들이지 못하게 ‘구입’ 버튼을 비활성화시킨 것). 물론 이 사건으로 로빈후드도 욕을 많이 먹었다. 결국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SEC)는 ‘로어링 키티’까지 불러들여 증언을 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 부분, 월 스트리트들의 내로라하는 헤지 펀드를 운영하는 이들과 ‘로어링 키티’가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는 부분까지 영화는 꽤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실제 청문회 영상을 조금 보여 주는데 진짜 ‘로어링 키티’인 키스 길과 폴 다노의 싱크로율이 상당하다(아래에 비교 사진을 첨부했으니 한번 보시라). 닉 오퍼맨은 대사도 많지 않은데 존재감이 상당하고, 이런 화이트 칼라 악역도 잘 어울렸다. 이전에 ‘트로프’를 설명하는 글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언급했는데 이 영화, 또는 이 영화의 기반이 된 사건이 실제로 그 트로프가 구현된 예라 할 수 있겠다. 애초에 영화 제목이 ‘덤 머니(dumb money, ‘멍청한 돈’)인 것도, 월 스트리트의 전문가들이 개미들을 보고 비웃을 때 쓰던 말인데 그 잘나신 전문가들이 개미들에게 당했으니 얼마나 통쾌한가! 나는 이 사건을 어렴풋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어서 영화를 볼 때 과연 이게 ‘해피 엔딩’일지 확신이 없어 긴장하며 봤다. 사건을 잘 아는 상태에서 봤다면 그렇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ㅎㅎ 물론, 실제 사건도 완전히 ‘정의 구현’이라 하기엔 맥이 빠지는 부분이 있지만 (청문회는 결국 ‘로어링 키티’는 물론이고 로빈후드에게 압박을 가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헤지펀드 등 아무도 고소하지 않고 끝이 난다) 그래도 오히려 그래서 현실감이 있달까. 현실에서 시적 정의(poetic justice)가 구현되는 일은 드무니까 말이다.
영화는 단순히 ‘로어링 키티’와 월 스트리트의 증권맨들만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로어링 키티’를 지지하며 게임스탑의 주식을 매수한 개미들을 여럿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페레라의 캐릭터는 (앞에서 언급했듯, 이 영화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논픽션 책인) <더 안티소셜 네트워크>에 등장하는 킴 캠벨이란 개미 투자자를 적당히 각색한 버전이다. 킴이란 인물은 싱글맘으로, 자녀에게 교정기를 해 주고 싶어서 소액으로 게임스탑의 주식을 사들였는데, 로빈 후드 사태가 난 와중에도 ‘로어링 키티’를 따라 이를 팔지 않고 큰 손해를 봤다고. 또한 피트 데이비슨은 키스 길의 형제 케빈 길로 나온다. 케빈은 원래 한 스포츠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일했는데, 경제가 어려워져 그 가게가 문을 닫자 도어대시(DoorDash)라는 음식 배달 앱의 배달원을 하며 부모님과 같이 산다. 이 외에 대학생인 레즈비언 커플이나 게임스탑에서 일하며 거지 같은 상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년 등의 캐릭터들도 ‘개미’ 군단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각각의 캐릭터가 등장할 때 이름과 현재 총 자산이 자막으로 뜨는데 나중에 누구는 그래도 조금 돈을 만지고 누구는 손해를 본다. ‘로어링 키티’가 물론 주인공이지만 이렇게 자잘한 조연들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무엇보다 ‘왜 서민들, 개미 투자자들이 월 스트리트의 증권 전문가들에 맞서며 이 게임스탑의 주식을 사들이고 판을 바꿔 버렸는지’를 잘 드러낸다.
이건 실제 인물들과 영화 속 인물들의 싱크로율을 보여 주고 싶어서 가져온 사진들이다. 출처는 전부 여기. 왼쪽이 영화 속 폴 다노가 분한 모습이고 오른쪽이 실제 ‘로어링 키티’, 키스 길이다. 영화 끝에 청문회 영상을 보여 주면서 실제 키스 길이 유튜브에 올렸던 ‘오프닝 영상’(고양이가 눈뭉치를 잡으려고 뛰어오르는 영상)도 조금 보여 주는데, 이걸 보면 영화 속 ‘로어링 키티’의 라이브 영상도 꽤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왼쪽이 닉 오퍼맨이 연기한 켄 그리핀, 오른쪽이 실제로 ‘시타델(Citadel)’ 헤지 펀드의 CEO인 켄 그리핀이다. 음… 이건 닉 오퍼맨이랑 켄 그리핀이랑 별로 안 닮은 것 같다. 그건 인정.
왼쪽이 배우 루시 코타, 오른쪽이 실제 로빈후드의 앱의 공동 창립자 바이쥬 바트. 콧수염만 빼면 비슷한 느낌?
왼쪽이 세바스찬 스탠, 오른쪽이 실제 로밴후드 앱의 공동 창립자 블라드 테네브. 이거는 진짜 똑 닮게 잘 맞춘 듯.
주식을 잘 몰라도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며 볼 수 있다. 나도 주식은 정말 하나도 모르지만 재미있게, 통쾌하게 볼 수 있었다. 볼만한 영화.
➕ 참고로, 한국에서는 소규모 개인 투자자를 ‘개미’라고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흔히 ‘유인원(ape)’이라고 부른다. 월스트리트베츠 서브레딧이 사람들이 올리는 글을 보여 주는 장면들에서 <혹성 탈출(Planet of Apes)>(2001) 드립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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