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Nandor Fodor and the Talking Mongoose(난도르 포도르와 말하는 몽구스)>(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Nandor Fodor and the Talking Mongoose(난도르 포도르와 말하는 몽구스)>(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난도르 포도르 박사는 초자연적인 현상의 전문가이다. 어느 날, 그는 맨섬(Isle of Man;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에 존재한다는 제프(Gef, 닐 게이먼 목소리 연기)라는 몽구스가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듣게 된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는 조수 앤(미니 드라이버 분)을 데리고 맨섬으로 향하는데…
네이버에 검색해 봤자 공식적인 영화 정보 또는 국내 개봉명조차 뜨지 않는 이 영화에 대해 왜 나는 굳이 영화평을 쓰는가. 그것은 혹시 모를 피해자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제가 봤으니 여러분은 안 보셔도 됩니다, 뭐 그런 의미로. 이 영화는 보시다시피 사이먼 페그와 미니 드라이버라는 잘 알려진 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있고, 닐 게이먼이라는 대단한 작가를 무려 ‘말하는 몽구스’, 제프의 목소리 연기자로 섭외했다. 이런 놀라운 캐스팅이라니. 많은 이들이 혹할 만하다. 하지만 캐스팅이 아까울 정도로 이 영화는 별로다.
이 영화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말하는 몽구스라는, 많은 이들이 흥미롭게 여길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을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알려 주는데(위키페디아 난도르 포도르 박사 항목), 여러분이 위키페디아에서 제프 항목을 잠깐만 봐도, 아니 그보다 더 쉽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몽구스가 (영어든 어떤 언어든) 인간의 언어를 할 수는 없다는 걸 아실 것이다(여기에서 말을 한다는 건 물론 앵무새처럼 단순히 몇 가지 단어를 뜻도 모르고 외워서 읊는다는 게 아니라,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이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줄 안다는 뜻이다).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판타지 영화도 아닌데 그렇다면 당연히 사실에 기반해서 영화를 만들어야지. 그러면 이 영화의 포인트는 ‘왜 사람들은 말하는 몽구스를 믿었을까?’ 또는 ‘왜 브아레(Voirrey, 어빙 가족의 딸)는 거짓말로 제프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호도했을까?’가 되어야 한다. 정말 간단하게만 생각해 봐도,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으로 ‘워낙에 이 섬이 작고 조용해서 딱히 재미있는 것도 없기에’, ‘딱히 뛰어나게 잘난 것 없는 브아레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리고 또 ‘사람들은 뭔가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고 싶어 하므로’ 등등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중에 하나 또는 두어 개를 골라잡아서 인간의 심리에 관한 연구로 만들면 충분히 의미 있고 포커스도 갖춘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분명히 이 영화는 브아레(제시카 발머 분)를 처음 소개할 때, 그러니까 포도르 박사가 어빙 박사네 집에 도착해 이 가족을 처음 만날 때부터 이미 브아레가 복화술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밝힌다. 영화 중반에는 앤이 브아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그녀에게 복화술하는 법을 배우는 장면까지 있다. 그것도 딱 제프가 말하는 곳이라고 여겨지는, 벽에 난 작은 구멍에 대고 소리를 내라는 말까지 (브아레가) 하면서. 여기에서 영화는 ‘사실 제프라는 존재는 가짜입니다. 다 브아레가 복화술로 만들어낸 거예요!’라고 진실을 말해 준다. 그렇다면 당연히 영화의 초점은 얘가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지, 외로워서인지 관심 받고 싶어서인지, 심심해서였는지, 아니면 누구를 골려 주려던 것인지,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어울려 준 건지, 아니면 진짜 속았는지 등등을 보여 주는 데로 옮겨 가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까지 닿지 못한다. 분명히 브아레가 범인(!)이라는 걸 보여 준 후에도 영화는 제프라는 존재가 실존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영화 마지막에 포도르 박사는 구치장에 갇혀 ‘제발 네 모습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보여 줘, 하다못해 나를 발톱으로 긁기라도 해 줘’라고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인 상태로 제프에게 말을 건다. 그는 정말로 제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에게 팔을 긁힌다. 여기에서 정말 난 이 영화가 뭘 하자는 건지 싶었다. 제프는 브아레가 만들어 낸 가짜인데 어떻게 팔을 긁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쥐새끼 한 마리조차 없었는데? 포도르 박사는 도대체 뭐에 긁힌 거지? 이런 식으로 신비하게 여지를 주면 안 되지. 바로 다음 컷에 구치장 어딘가에 브아레가 숨어서 제프인 척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이상, 지금까지 영화가 보여 준 걸 완전히 뒤집는 거 아닌가.
이 영화에서 할 수도 있었던 걸 보여 주는 인물이 딱 한 명 있는데, 에롤(게리 비들 분)이라는 사람이다. 어빙 가족의 일을 도와주는 잡부꾼인 에롤은 제프의 모습을 보겠다고 삽을 들고 취한 채로 나타난 포도르 박사를 막는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거짓말을 믿냐’고 동네 사람들을 비난하는 포도르 박사에게 ‘믿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데’라는 식으로 말하고, 결국 마굿간의 말 먹이통(제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을 부수려던 포도르 박사의 뒷통수를 때려갈겨서 진압한다. 이 인물에게 분명히 맡겨진 역할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이 인물의 비중이 크지도 않고, 또 이 인물 이외에 영화가 보여 줄 수도 있었던 점(말하자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착한 거짓말’ 내지는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을 드러내는 장치가 별로 없다. 결론적으로 에롤만이 정말 유난스럽게 포도르 박사를 대적하는 그림이 돼 버렸다. 차라리 포도르 박사를 ‘지식은 뛰어날지언정 사람의 심리에는 무지한 전문가’ 느낌으로 묘사하고, 동네 사람들이 동네에 활기 또는 재밋거리를 가져다주어서 브아레에게 (물론 간접적으로, 은근하게) 고마워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게 나았겠다. 내가 방금 말한 이게 최선의 시나리오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약에 그랬다면 최소한 통일된 느낌,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일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는 정말 이도 저도 아니다. 나는 이게 정말 너무 안타까운 것이다.
내가 비록 사이먼 페그, 미니 드라이버, 그리고 닐 게이먼을 사랑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이 영화는 정말… 아닌 걸로. 여러분, 제가 봤으니 여러분은 이 영화를 안 보셔도 됩니다. 그럼 ㅅㄱ
➕ ’말하는 몽구스’ 사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이 기사를 읽어 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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