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Polite Society(폴라이트 소사이어티)>(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Polite Society(폴라이트 소사이어티)>(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십 대 소녀 리아 칸(프리야 칸사라 분)은 스턴트우먼이 꿈이다. 그녀가 요즘 제일 열광하는 것은 유튜브에 올리는 ‘무술 영상’ 찍기. 리아는 특히 언니 레나(리투 아리야 분)와 사이가 좋은, 언니 없이는 못 사는 껌딱지 동생이다(물론 레나도 리아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문제는 레나가 예술 학교에 갔다가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라며 절망해서 학교를 관두고 현재 집에서 거의 폐인처럼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는 것. 리아가 언니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노력해 봤는데 언니는 좀처럼 예술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리아와 레나의 엄마 파티마(쇼부 카푸어 분)가 속한 사교 모임의 리더격인 라힐라(님라 부차 분)가 파티마네 가족을 ‘이드 알피트르(라마단 금식 기간이 끝나는 날)’ 파티에 초대한다. 라힐라네 집은 으리으리하게 큰데, 그 큰 집이 다 라힐라의 유전학자 아들 살림(악셰이 칸나 분)에게 푹 빠진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리아는 저택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어떤 방에서 그곳에 모인 여자들과 레나의 사진을 발견한다. 사실 이 파티는 살림에게 알맞은 여자를 구해 주려는 꿍꿍이가 있는 모임이었던 것. 리아는 이 수상쩍은 상황을 레나에게 알리려고 하지만, 이미 레나는 살림과 어울려서 이야기도 하고 미소도 짓고 있었다. 심지어 며칠 후, 레나는 살림과 데이트를 하러 나가기까지 한다! 리아는 사랑하는 레나 언니가 살림이랑 결혼해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꿈을 다 버릴까 걱정되기 시작하고, 그 둘을 떼어 놓아야겠다고 결심하는데…
이 영화는 올해 초인가, BBC에서 이 영화에 관한 기사를 보고 꽤 흥미롭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도 들어와서 보게 됐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솔직히 영화 트레일러만 봤을 때는 ‘그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영화야?’ 싶고 감도 잡을 수 없었는데, 보고 나니까 다 말이 된다. 무술이 취미고 스턴트우먼이 되려고 하는 소녀라는 설정도 좋고, 여자들간의 끈끈한 자매애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소재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내가 파키스탄인들의 문화를 접할 일이 많지 않은데, 그걸 이 영화를 통해 접하게 되어 너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리아 역의 프리야 칸사라는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6-7주 전에 캐스팅되어서 짧은 기간 내에 바짝 무술 장면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전문가가 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스타일리시하고 멋졌다. 애초에 이국적인 전통 의상을 입고 무술하는 여성의 모습은커녕, 평상복 입고 무술하는 여성의 모습조차 드물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 점이 만족스러웠던 것도 있고.
이 영화는 베크델 테스트를 영화 시작 5분 만에 통과한다. 애초에 전면에 나선 남성 캐릭터는 살림 정도이고, 리아와 레나의 아빠조차 큰 비중은 없다(분명 존재하긴 하는데!). 여성의(감독이 여자다), 여성을 위한(여성들 이야기), 여성에 의한(여성 배우들이 많다)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레나에게 접근한 살림의 저의가 ‘레나의 자궁을 이용해 엄마(라힐라)의 클론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점은 섬뜩하고 황당하지만, 오히려 그게 여성들이 늘 처해 왔던 현실(=한 사람, 개인이 아니라 자궁으로, 도구로 여겨지는 것)을 잘 보여 준다고 하면 ‘꿈보다 해몽’인 걸까? 살림와 라힐라의 계획을 다 알아버린 레나가 나중에 살림을 패면서 “내 자궁은 최고로 우수할지 모르지만, 네 거시기는 엄청 보통이었거든!” 하고 외치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명장면이라 하겠다. 아, 자매애뿐 아니라 여자들간의 우정도 아주 멋지다. 리아에게는 알바(엘라 브루콜러리 분)와 클라라(세라피나 베 분)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두 소녀들은 스턴트우먼이 되겠다는 리아의 꿈을 지지해 줄 뿐만 아니라 살림과 레나의 사이를 훼방 놓겠다는 계획에도 참여한다. 모종의 이유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지만 결국엔 회복되고, 리아를 괴롭히던 코백스(쇼나 바바예미 분)까지 친구가 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인가!
이 영화의 감독은 무려 무슬림 여성으로 이루어진 펑크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 <We Are Lady Parts(위 아 레이디 파츠)>의 창작자이기도 하다(나도 <위 아 레이디 파츠>를 보려고 했는데 긴 호흡의 TV 드라마를 잘 못 보는 성격이라 아직까지 보진 못했다). 레나 역의 리투 아리야는 여기에도 등장했고. 무슬림 여성이라는, 말하자면 이중의 ‘다양성’을 지닌 독특한 시각의 미디어를 접해 보고 싶다면 이 영화와 <위 아 레이디 파츠>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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