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Kitchen(더 키친)>(2019)
⚠️ 아래 영화 후기는 <The Kitchen(더 키친)>(2019)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 뉴욕, ‘헬스 키친(Hell’s Kitchen)’을 주름잡던 아일랜드계 미국인들 마피아단인 ‘오캐롤(O’Carrol) 패밀리’. 이 마피아 패밀리에 속한 세 남자들, 지미(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 분), 롭(제레미 봅 분), 그리고 케빈(제임스 뱃지 데일 분)은 한 가게를 털어 보려다가 하필이면 FBI에게 발각돼 3년형에 처해진다. 이 세 남자들의 아내, 즉 지미의 아내 캐시(멜리사 맥카시 분), 롭의 아내 클레어(엘리자베스 모스 분), 그리고 케빈의 아내 루비(티파니 해디쉬 분)는 갑자기 남편들이 사라져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캐시는 그래도 나름대로 남편과 사이가 좋았지만, 클레어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며 지냈기에 남편이 수감된 이후 느껴 보는 자유가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 루비로 말할 것 같으면, 루비의 남편인 케빈이 이 ‘오캐롤 패밀리’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헬렌(마고 마틴데일 분)의 아들이라, 남편은 감옥에 갔어도 여전히 불편하고 무서운 시어머니 때문에 걱정이다. 헬렌 다음으로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재키’(윅 왓포드 분)는 이 세 여인들에게 매달 돈을 조금씩 주긴 하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어느 날, 세 여인은 ‘헬스 키친’에서 ‘오캐롤 패밀리’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바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제대로 된 보호도 안 해 준다며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들과 ‘오캐롤 패밀리’를 대신해 이들을 ‘보호’해 주고 보호비를 받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세 여인들은 남편들을 대신해 ‘헬스 키친’을 다스리게 되는데…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 대해 “우리 애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라고 변명하곤 한다. 나는 이 영화의 세 주연 배우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멜리사 맥카시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배우는 연기는 잘하는데 각본 보는 눈이 없어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멜리사 맥카시라는 배우를 참 좋아한 나머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다가 IMDB 별점이 6점도 안 되는 ‘구린’ 영화들을 다수 접한 불운한 팬이다. 나는 멜리사가 <Can You Ever Forgive Me?(날 용서해줄래요?)>(2018) 때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걸 알기에, 그리고 그만큼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 걸 알기에 이 배우에 대해 말할 때마다 ‘연기는 참 잘하는데 각본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시놉시스 사기를 당한 건지…’ 하는 식으로 쉴드를 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안타깝다. 아니, 멜리사가 정말 그지깽깽이 같은, 재미없는, 망한 영화들을 여럿 찍은 건 알지만 그래도 <날 용서해줄래요?>처럼 정극 연기도 너무 잘하고 <Spy(스파이)>(2015)나 <The Heat(히트)>(2013)처럼 코미디 연기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증거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IMDB에서 별점을 확인했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직접 보고 나니, 이건 진짜 각본 잘못이다. 내가 좋아하는 멜리사는 떼어 놓고 봐도, 다른 배우들은 정말 어쩌다가 이런 영화를 선택했단 말인가. 이 영화는 동명의 DC 코믹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 코믹스는 내가 직접 읽어 본 게 아니어서 원작과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탄탄하게 뒷받침이 되어 줄 원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본이 완전 형편없다. 멜리사의 캐릭터인 캐시가 ‘너는 똑똑하잖아’라는 말을 (주로 루비에게) 자주 듣는데 그래서 실제로 멜리사의 캐릭터가 똑똑함을 보이는 일화가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딱히 아니다. 영화 초반에 진행이 빠른 것은 좋은데, 세 여자가 ‘헬스 키친’을 주름잡게 되는 과정까지가 너무 후루룩이라 ‘일이 너무 쉽게 잘되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 이제 영화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조금만 더 공을 들여서 ‘잘되는’ 이야기를 풀고, 그다음에 ‘그런데 또 이런 갈등이 생겼습니다!’ 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영화 후반에는 나름대로 큰 반전인, 루비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정말 맥아리 없이 한번 뙇 보여 주고 끝이다. 결말은… 말을 말자.
나는 도널 글리슨이란 배우도 참 좋아하는데 그가 맡은 가브리엘이란 캐릭터도 좀 얼탱이 없다. 가브리엘 이야기를 하려면 클레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으니 약간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 클레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폭력적인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여성으로, 롭이 교도소로 간 이후 자유를 되찾았고 두 여인과 ‘헬스 키친’을 운영하며 당당한 여성으로 거듭난다. 이제는 총도 가지고 다니며 자신과 ‘헬스 키친’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총을 쏘는 그런 멋진 여자로. 그런 클레어가 재키에 의해 성추행을 당할 뻔하는데 (이 세 여자들이 ‘오캐롤 패밀리’를 대신해 ‘헬스 키친’을 보호하고 보호비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 분노했기 때문이다) 이때, 루비가 미리 호출해 둔 가브리엘이 등장해 재키를 쏘아 죽인다.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혀서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가브리엘과 클레어는 연인으로 거듭나는데, 가브리엘이 재키의 시체를 말 그대로 ‘토막 내는’ 걸 클레어만이 끝까지 지켜보며 그 과정을 직접 따라 해 보며 배운다(캐시와 루비는 차마 못 보겠어서 자리를 뜬다). 여기에서 클레어의 ‘조용한 또라이’스러움이 드러나는데, 이 일화 빼고 전반적으로 각본은 이 은은한 광기를 잘 살리지 못했다. 클레어만큼 악으로 깡으로 사는 여자가 또 없는데 이 좋은 캐릭터를 잘 쓰지 못하다니. 어쨌거나 클레어가 콜린(맷 헬름 분)이라는, 이제 막 미성년자를 벗어날랑 말랑 하는 ‘오캐롤 패밀리’의 꼬붕에게 총을 맞아 숨지자 캐시에게 복수심을 품는다. 캐시가 콜린은 너무 어려서 자기네들(세 여인들)을 죽일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옹호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까 가브리엘 캐릭터보다 클레어 캐릭터가 더 불쌍하네…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이렇게 낭비한다고? 엘리자베스 모스 눈 감아 😔
여배우들 셋이 주연을 맡고 소재와 줄거리도 잘만 쓰면 기가 막힌 여성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정말 형편없는 영화다. 이렇게 소재가 기가 막힌데 이걸 가지고 고작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원작 팬들은 엄청 실망했을 듯. 이게 만약 요리였다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과 각본가는 요리 요정에게 이 요리를 위해 희생된 재료들의 복수를 당해야 마땅하다(아래 짤 출처는 여기). 여성 영화가 아니라면, 어떤 의미로든 볼만한 재미가 있는 상업 영화로라도 좀 잘 만들든가. 이건 정말이지 각본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반면교사’라 할 수 있겠다. 별로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게 학계의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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