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Pain Hustlers(페인 허슬러)>(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Pain Hustlers(페인 허슬러)>(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이자 드레이크(에밀리 블런트 분)는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다가, 망해 가는 자나 제약이라는 제약회사의 영업 사원인 피트 브레너(크리스 에반스 분)를 만난다. 피트가 어떤 업계에서 일하는지 단번에 알아맞힌 걸 보고 피트가 감명을 받은 모양. 아니면 그냥 취해서 그녀에게 작업을 걸었던 것일지도. 어쨌거나 피트는 라이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그녀에게 기회를, 즉 일자리를 줘 보겠다고 말한다. 라이자는 언니네 집에서 얹혀 사는데, 설상가상으로 라이자에게 너무너무 소중한 딸 피비(클로이 콜먼 분)는 간질을 앓고 있다. 그런데 피트에게 일자리 제안을 받은 날 바로 다음 날, 라이자는 유일하게 비빌 언덕인 언니네 집에서 쫓겨난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음악 소리로 편하게 지낼 수도 없는 모텔에서 라이자는 결심한다. 본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 보겠다고. 게다가 피비에게 간질 치료를 위한 수술비도 마련해 줘야 하니까, 라이자는 피트에게 전화해 그 일을 해 보겠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자나 제약의 ‘로나펜(Lonafen)’이라는 약물을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하도록 영업을 뛰러 다닌다. 중독률이 1% 이하이고 암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무기 삼아, 자신이 하는 일은 ‘암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구하는’ 일이라고 믿고서. 하지만 그 약물은 강력한 오피오이드(opioid; 아편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마취제)인 ‘펜타닐(Fentanyl)’이나 다름없었고, 의사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로나펜이 필요 없는 환자들에게도 무분별하게 이를 처방한다. 점차 자신의 성공과 자나 제약의 이득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게 된 라이자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데…
놀랍게도 실화에 기반했다. 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화에서 뼈대를 빌려 왔다(내가 설명하는 다음 내용은 이 기사 참고했다). 2018년에 에반 휴즈라는 기자가 인시스(Insys)라는 제약 회사를 취재해 뉴욕타임스지에 기사를 썼는데(이 기사는 후에 <하드 셀(The Hard Sell>이라는 책으로 발간됐다), 이 기업은 존 카푸어(John Kapoor)라는 백만장자가 설립했고, ‘서브시스(Subsys)’라는 오피오이드 약품을 홍보했는데, 원래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암 환자들의 고통이나마 줄여 주기 위한 아주 강력한 진통제였다. 문제는, 영화나 현실에서나, 의사들이 이 정도의 진통제까지는 필요 없는 환자들에게도 무분별하게 이 약을 처방해 줬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 주면 그 양에 따라 의사가 일정 금액을 제약 회사로부터 입금받기 때문이다. 즉, 의사들의 탐욕과 이 오피오이드를 통한 쾌락에 중독된 환자들의 환장할 콜라보레이션이 오늘날 미국의 ‘오피오이드 위기’를 만들었다.
위의 시놉시스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 속에서 라이자가 진심으로 믿고 의사들에게 여러 번 말했던) 중독률이 1%에 불과하다는 연구는, 어떻게 보면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영화 마지막에 이 연구 논문을 쓴 저자(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 연구의 대상이 된 말기 암 환자들은 정말로 생의 말기에 이 약을 처방받았고, 대개는 이 약에 중독되기도 전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들의 의사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이 약을 처방했다. 다시 말해, 돈에 눈이 멀어 아무에게나 약을 처방해 준 게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렴,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 나는 애초에 의사가 자기 제약 회사가 만드는 약을 처방하면 일정 액수를 의사에게 주는 이 관행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아마 제약 회사들의 로비겠지. 이걸 내가 어떻게 뜯어고칠 방법은 없으니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 말고는 이 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듯하다.
등장인물들에 관해 말하자면, 에밀리 블런트가 맡은 라이자 드레이크라는 캐릭터는 사실 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여러 인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성공에 목말라서 성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 그래서 의사들에게 이 강력한 오피오이드를 로비한 제약 회사 영업 사원들들일 것이다. 앤디 가르시아가 맡은 잭 닐이라는, 자나 제약 회사(물론 가공의 회사다)를 설립한 CEO이자 의사는 위에서 언급한 실제 인물, 존 카푸어를 모델로 했다. 크리스 에반스의 피트 브레너는 알렉 벌라코프라는 실존 인물과 비슷한데, ‘스트립 댄서였던 사람(former exotic dancer)’을 고용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위에 언급한 에반 휴즈의 기사에도 실제로 이렇게 언급된다).
이 영화는 엄청 대단한 영화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볼 영화가 없어 😞’라며 방황했던 나에게 이 정도의 연출과 이 정도의 각본과 이 정도의 연기는 평타 이상으로 느껴져서 만족했다. 전 세계에 퍼지는 불법 마약 위기에 관한 의식도 고취할 겸, 볼만한 영화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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