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마이클 부스,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
여행과 음식에 대해 주로 쓰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인도에 여행 간 이야기. 제목은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먹는 얘기, 인도 음식 얘기보다는 종교적인 얘기가 더 많이 나온다. 저자가 종교인인 건 아니고 종교적인 것 또는 영성적인 것을 못 참는 사람인데, 아내 손에 끌려서 강제로 접하게 된 요가 수업을 통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저자는 걱정과 불안이 많고 술도 많이 마시는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어느 날 아내 리센이 그에게 ‘휴식’을 위한 인도 여행을 제안한다. 물론 저자는 애들을 데리고 “교통지옥, 식중독, 가난, 땡볕, 벌레들, 질병, 말라리아”가 넘치는 인도에 가자니 제정신이냐며 단칼에 거절한다. 아내는 저자가 여러 번 떠났던 ‘음식 투어’가 아닌, 영적으로 깨어나는 여행을 하자고, 자신이 계획을 세우겠다고 다시 제안한다. 저자는 인도에서 먹을 음식에 정신이 팔려 결국 이를 승낙한다.
저자가 걱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인지는, 저자네 가족이 인도로 여행하기 전 준비를 하는 대목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밤에는 잠 못 이루게 하며 낮에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인터넷을 서핑하게 만들었던 위험 요소들은 다음과 같았다. 이국적인 장염에 걸리는 것(내 친구 중 하나는 4년 전에 뭄바이에 갔다가 병에 걸렸는데 후속 치료로 위의 절반을 잘라냈고 그 여파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아주 끔찍한 교통사고로 죽는 것(인도에서는 매년 약 10만 명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러므로 ‘인도 교통사고’를 검색해보지 말 것), 테러리스트의 공격(170명 이상이 사망한 뭄바이 테러는 불과 1년 전의 일이었다), 말라리아(매년 4만 명이 말라리아로 죽는 것으로 추산된다), 어린이 유괴(인도가 다른 곳보다 더 위험하다고 확신할 만한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뭐 모르는 일이니까).
또 한 가지 미리 경고해두고 싶은 중년의 증상 하나는, 당신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백색 가전, 코털 깎는 가위, 자식들—을 축적한 순간 앞으로는 잃을 것만 남았다는 예리한 느낌에 시달리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불안감과 공포는 때로 실체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상상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법이다.
“여보, 나는 당신만큼 걱정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어느 저녁 내가 이름, 주소,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네임태그를 준비해서 애스거와 에밀의 옷 주머니에 나누어 넣고 있는데 리센이 말했다.“이건 걱정이 아니라 준비성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아이들의 피부 밑에 심는 추적 장치도 고려하고 있었어.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꽤 좋은 아이디어 같아.”
나는 시시때때로 리센이 짠 여행 일정을 캐내려고 시도했다. 도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 걸까? 영적 체험이랍시고 대체 어떤 허튼짓을 내게 시키려는 걸까?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어내겠다는 꿍꿍이일까? 하지만 리센은 입을 꾹 다문 채, 내가 눈을 뜰 수 있게 해주려 한다는 둥 내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둥 내가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라는 둥 모호한 소리만 했다. 그보다 더 불길한 얘기는 내가 술을 못 마시게 단속하며 ‘더 건강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인도를 여행하면서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예방 접종을 위해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우리 팔을 바늘꽂이로 만들고, 배낭에 뭐는 넣고 뭐는 넣지 않을지에 대해 숱한 언쟁을 벌이고 비자, 신발, 선크림, 알맞은 옷, 어떤 항생제와 배탈 약을 선택할지 치열하게 갈등한 끝에, 마침내 1월의 어느 날 오전 6시 우리는 스피커를 통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델리 공항의 입국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인도. 아무래도 본업이 여행과 음식 전문 저널리스트이다 보니 그는 인도에서도 여러 맛집을 다니며 인도 음식을 감상한다. 뒤로 갈수록 음식 이야기는 적어지지만, 음식 이야기가 언급되는 부분에서는 흥미롭고 배울 만한 부분이 많다. 예컨대 이런 것.
“그야, 당연합니다”라고 사우리시는 말했다. “선생님이 인도 요리라고 알고 있는 요리는 사실은 펀자브와 방글라데시 음식이 섞인 거예요. 국가 분단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인도를 떠났고, 그중에 운 좋은 사람들이 선생님 나라에 도착한 거죠.”
역사학자 리지 콜링엄은 『카레: 요리사와 정복자의 이야기』에 이 엄청나게 성공적인 문화-요리의 침투에 대해 썼다. 펀자브주가 분할된 이후 1940년과 1950년에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그리고 더 폭넓게는 동부 벵골인들까지—어떻게 카레를 영국으로 가지고 왔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19세기 초, 영국에는 이미 인도 레스토랑이 존재했다. 런던의 포트먼 스퀘어에서 제일 처음 통치자들에게 인도 음식을 제공한 이들은 인도에 거주하다 돌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영국 제도 전역에 카레를 전파한 이들은 20세기 중반의 이민자들이었다.
인도 여행 중 저자의 어린 아들 중 한 명은 터번을 해 보고 싶어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아들뿐 아니라 온 가족이 터번을 하게 된다(시크교도 여자들도 터번을 한다는 거 아셨는지? 난 몰랐다). 그 경험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리하여 그 뒤로 한 시간가량 우리는 모두 차례로 의자에 앉았고, 좋은 구경거리가 생겨 신난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모여든 가운데 점원은 다양한 색깔의 붕대를 우리 머리 위에 천천히, 기술적으로 감아주었다. 작업이 끝났을 때 우리의 터번 자문위원님께서는 본인의 수고에 대한 팁을 거절했다. “누군가의 첫 번째 터번을 감아주는 일은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랍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절하며 말했다.
터번을 두른 첫 느낌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우선 청력의 30퍼센트가 손실된다. 시크교도의 청각 장애에 대한 연구 같은 건 없나? 그리고 무지하게 꽉 쪼인다. 리센은 “즉각적인 페이스리프팅 효과”라며 아주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내 눈엔 그녀가 물고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날의 깨달음은 애스거의 입에서 나왔다. “우리가 이걸 머리에 하긴 했지만, 우린 원래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에요.” 우리가 그 유명하다는 와가 보더의 국기 하강식을 보러 가기 위해 차로 암리차르를 빠져나오는 길에 애스거는 완전히 마음을 놓은 듯 말했다.
터번을 두르고 지낸 며칠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준 시간이었다. 애스거가 지적했듯이 아무리 5미터짜리 천을 머리에 두르고, 귀도 절반은 들리지 않고, 얼굴은 가당치도 않게 젊은이처럼 팽팽해져서 조앤 리버스(미국 코미디언, 배우. 수없이 성형수술을 했고 대중에게 숨기지 않았다)처럼 보인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원래의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따라서—이런 얘기가 무지막지하게 진부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알지만, 사실이니까—나와 다르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 부르카나 터번을 착용했건, 청바지를 엉덩이의 절반이 드러나게 걸치고 돌아다니건, 핑크 코르덴 바지에 야상을 걸쳤건, 무얼 입었건 간에 그들은 그저 같은 사람들일 뿐이리라. 물론 머리로는 나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고, 만약 누군가가 나한테 이런 이론이 인간관계에 있어 엄청난 도약이라며(예를 들면 『화성에서 온 시크교도 그리고 금성에서 온 나머지 인간들』이란 책 같은 것으로) 설파했다면 나는 몹시 경멸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터번을 실제로 둘러보니 이런 이론이 조금 더 실감됐다. 내게는 이 경험이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아주 작은 발걸음이었지만 애스거와 에밀에게는 아주 깊은 깨달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책 후반으로 갈수록 저자가 직접 경험한 요가 수업이 얼마나 자신을 너덜너덜하게 만드는지, 또 동시에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지가 많이 나온다. 처음 요가를 시도했을 때만 해도 저자는 이랬다.
명령에 따라 긴장을 푼다는 것 자체가 나라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인지라 나는 교회의 나무 의자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그의 볼모로 잡힌 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머리는 ‘이완’하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을 감자 2마일 반경 안의 모든 소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증폭됐다. 청력은 사방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초능력을 탑재한 것 같았다. 노동자가 시멘트를 담은 들통을 모래 위로 끌고 가는 소리, 까마귀가 과장되게 까악까악 우는 소리, 멀리서 울리는 기차의 기적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곧이어 파리가 다리털을 간질였고 나는 무도병 환자처럼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쫓아버렸다.
프라바카르는 호흡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자니 예전에 무슨 TV 프로그램에서 나를 인터뷰한 뒤 내레이션이 깔리는 동안 쓸 영상을 따기 위해 나더러 ‘거리를 자연스럽게 걸어 내려와 카메라를 지나쳐서 가라’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완전히 꽂힌 나머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걷고 말았다. 레이 해리하우젠시각효과 크리에이터, 스톱모션 모델 애니메이션의 대가 영화의 삐걱거리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피규어 그 자체였다.) 얼마 안 가 나는 기이하고 거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눈앞에는 작은 반점들이 떠다녔다. 결국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
그러다가 꾸준한 요가 수행의 결과로 저자는 늘 실패하던 요가 자세(아사나)에도 성공한다. 감사하는 마음도 커지고, 아래 인용문에는 안 나왔지만 알코올 중독 문제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정말 와인 한두 잔만 마시고 만족스러워하며 멈출 수 있는 자제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영성과 관련한 건 그렇게 극혐하고 비판적으로 보던 사람이 이렇게 바뀌다니! 인도가 저자의 인생을 바꿔 준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아사나를 하던 중 정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앉은 상태에서 한쪽 팔로 세워둔 무릎을 감싸 몸 뒤로 돌려 허리 뒤쪽에서 다른 쪽 손과 맞잡는 자세였다. 예전에 이 자세를 시도했을 때 내 손은 마치 물개가 어둠 속에서 전등 스위치를 찾는 것처럼 등 뒤에서 퍼덕거리기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나이가 내 뒤로 다가와 너무나 부드럽게 내 왼손과 오른손을, 전혀 잡아당기지도 않고 만나게 해주었다. 내 두 손이 맞잡았어! 나는 척추의 연골이 으드득 소리를 내고 응급실로 실려 가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몸을 뻗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손가락끼리도 맞물려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승리에 취해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보세요! 나도 여러분이 하는 걸 하고 있어요. 하! 나도 그렇게 형편없는 건 아니었어!” 그러나 내 장기들이 버려진 버블랩 포장재처럼 구겨져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도에 관한 얘기를 해보겠다. 이미 언급했듯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인도로 여행을 갈 필요는 없다(심지어 바람직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삶이 엉망이 된 외국인들이 잔뜩 몰려들어 보태지 않아도 인도에는 이미 그 나라만의 문제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인도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시야를 넓혀준다는 거다. 새스넘 상헤라가 『상투를 튼 소년The Boy with the Topknot』에 썼듯이 “인도에서는 창밖만 한번 내다봐도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인도에 가본 사람 중 집에 돌아왔을 때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는 것에, 그리고 사람들이 교통 규칙을 대체로 잘 지킨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이는 없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만약 인도에서의 경험 이후에도 이런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솔직히, 그 사람은 그런 걸 누릴 자격이 없다.
약간의 오타와 용어가 오락가락하는 오류(’호주’랬다가 ‘오스트레일리아’랬다가… 하나만 합시다), 그다지 적절한 것 같지 않은 유행어 사용(’1도 없는’) 등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책을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니다. 물론 다음 판에서는 수정해 주면 좋겠지만.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웃기고, 재미있는 인도 여행기였다. 나는 애초에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인도에 낭만도 없지만, 인도 음식을 즐기며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도 요리는 마일드한 버터치킨과 마늘 향을 진하게 풍기는 갈릭난인데, 실제로 동네 인도 커리 가게에서 이것들을 사다가 먹으면서 책을 읽으니 그야말로 최고였다. 여러분도 맛있는 인도 음식을 먹으며 이 책을 읽어 보시라. 아니면 요가를 하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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