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데이비드 그레이버, <불쉿 잡>
제목의 ‘불쉿 잡’은 의미가 없고,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일자리를 말한다. 저자는 2013년, ‘어떤 직감’에 기초한 짧은 글 한 편을 썼다. 그 직감이란, ‘존재 가치가 없는 직업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 보자면 이렇다.
그 글은 어떤 직감에 기초한 글이었다. 다들 익히 알겠지만, 외부인이 보기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일자리가 있다. 인사관리 컨설턴트,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 홍보 조사원, 금융 전략가, 기업 법무팀 변호사, 또는 불필요한 위원회의 문제를 처리할 직원 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을 일상 업무로 하는(학계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해진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런 일자리의 목록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궁금해졌다. 이런 종류의 일자리가 정말로 쓸모가 없을까? 또는 이런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분명히 여러분이 아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이가 간혹 있다. 일주일에 닷새씩 내심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일을 하러 나가는 것보다 더 기운 빠지는 일이 또 있을까? 오로지 시간과 자원의 낭비일 뿐이고 세상을 더 악화시킬 때까지 있는데?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 전체에 새겨진 끔찍한 정신적 상처가 아닐까? 그런데도 지금껏 아무도 그 주제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이 일터에서 행복한지에 대한 조사는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자신들의 직업이 존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느끼는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는 한 건도 없었다.
100% 확신은 없었지만 ‘존재할 만한 필수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세상에 버젓이 존재하는 일자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노동의 고귀함이니, 인간의 존엄성이니(그런 일자리라면 그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도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하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가 쓴 짧은 글의 요지였다. 이 글은 발표된 이후 아주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된다.
저자가 책에서 예시로 드는, ‘불쉿 직업’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를 한번 보자. 쿠르트라는 사람은 독일 군대의 하청 업체의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데, 그의 업무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독일 군대는 IT 작업을 처리해 주는 어느 하청 업체와 계약했다. 그 IT 회사에는 물류를 처리해 주는 하청 업체가 있고, 그 물류 회사에는 인사 관리를 담당하는 하청 업체가 있다(여기가 쿠르트가 일하는 곳). 군인 A가 두 칸 떨어진 방으로 사무실을 옮기면, A 본인이 자기 컴퓨터를 직접 들어서 바로 새 사무실로 옮길 수 없다. A가 서류를 작성하면, IT 하청 업체가 이 서류를 수령해 물류 회사에 전달한다. 물류 회사는 새 사무실로 컴퓨터를 옮기는 걸 승인하고, 인사 관리를 담당하는 하청 업체가 쿠르트에게 업무를 맡긴다. 그 업무란 이런 것이다. 모월 모일 모시에 어디로 가서, 서식을 써내고, 컴퓨터 전원을 빼서 상자에 넣고 봉인한 다음, 물류 회사의 직원을 시켜 상자를 새 사무실로 운반하게 한다. 그러면 쿠르트는 또 상자를 열고 또 다른 서식을 써내고, 컴퓨터를 전원에 연결하고, 운송부에 또 다시 이런저런 서류를 보낸 후 보수를 받는다. 다시 말해, “군인 한 명이 자기 컴퓨터를 5미터 떨어진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여섯 시간 내지 열 시간 운전하고 열대여섯 페이지의 서류를 작성하고, 납세자의 돈을 400유로씩이나 소모하는 것이다.” 이게 불쉿 직업의 전형적 사례이다. 저자는 이 사례를 바탕으로 불쉿 직업의 첫 번째 잠정적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쿠르트의 업무는 단순한 하나의 이유만으로 불쉿 직업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자리를 지워 버려도 알아차릴 만큼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 어쩌면 상황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독일 군 기지들이 장비를 옮길 더 합리적인 방식을 구상해 낼 테니까.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쿠르트의 업무가 한심할 뿐만 아니라 쿠르트 본인도 그런 사실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올린 블로그에서 쿠르트는 결국 열성적인 자유 시장파에 맞서 자신의 업무가 아무런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옹호한다. 그러자 자유 시장파가 인터넷 포럼에서 흔히 보이는 성향 그대로 즉각 튀어나와, 그의 업무는 민간 부문에서 만든 것인 만큼 원래 규정대로 적절한 목적에 기여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것이 불쉿 직업을 규정하는 특징이라고 본다. 어찌나 철저하게 무의미한지 매일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조차도 그 일을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할 지경이다.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도 이 사실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는 자신의 업무가 무의미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니 이것을 불쉿 직업을 규정하는 잠정적 정의라고 해 두자.
그렇다면, 마피아 행동 대원은 불쉿 직업일까, 아닐까? 마피아가 하는 일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피아 대원은 적어도 “(외환 투자자나 브랜드 마케팅 조사원 같은 직업과는 달리)” 자신의 일이 사회에 유익하다는 핑계를 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악당이라는 걸 인정을 했으면 했지. 그래서 우리는 불쉿 직업의 정의를 더 다듬을 수 있다.
이로써 우리의 정의를 더 다듬을 수 있다. 불쉿 직업은 단지 쓸모없거나 해로운 데 그치는 직업이 아니다. 전형적으로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핑계와 사기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 직업에 종사하는 이는 실제로 자신의 직업이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척 꾸며 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설사 개인적으로는 그런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핑계와 실재 사이에는 일종의 간극이 있다.(이것은 어원적으로도 말이 된다. ‘불쉬팅(Bullshitting, 허튼소리하기 — 옮긴이)’은 어쨌든 부정직함의 형태니까.))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잠정적 정의 [2] 불쉿 직업이란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 형태다. 설사 그 종사자가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불쉿 직업의 정의는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변모해 간다. 저자는 불쉿 직업의 여러 유형도 제시하는데, 저자가 군데군데 제시하는 실제 사례(저자가 X(구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제보받은 사례들)에 여러분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적어도 주변에서 보거나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테니까. 예컨대 아웃바운드 콜센터 직원들. 직원들 자체를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렇게 대단한 제품이면 그 직원들이 그런 세일즈 제안을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가며 설득을 해야 할 필요는 없겠죠… 게다가 그 사람들 개인 정보는 도대체 어떻게 얻는 건지도 의문이고. 뭔가 ‘마케팅’ 또는 ‘세일즈’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이나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둘 다 피곤하고 힘들게 만드는 이런 일자리가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저자는 영상 편집, 그러니까 단순히 차가 날아다니거나 빌딩이 폭파되는 영상 등에 쓰이는 기술 말고 치아에 미백 효과를 넣거나 연예인들이 더 날씬해 보이도록 ‘미용적으로’ 손보는 CG 기술도 불쉿 직업에 포함시킨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일(방금 언급한 그 미용적 CG)을 불쉿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톰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
톰 내가 생각할 때 가치 있는 직업이란 기존의 필요를 충족시키거나 이제껏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어서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삶을 고양시키고 개선하는 직업이다. 나는 거의 모든 직업이 이런 유형의 직업이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고 본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공급이 수요를 한참 추월했기 때문에 지금은 수요가 만들어진다. 내 직업은 수요를 만들어 내고, 그런 다음 이 사태를 처리하기 위해 판매되는 제품의 쓸모를 과장하는 것의 복합물이다. 사실 광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이 모두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제품을 팔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도록 속이는 단계가 있다면, 이런 직업들이 불쉿 직업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맞다, 내가 바로 이러한 이유로 광고도 싫어한다. ‘이게 있으면 멋지겠죠?’ 정도가 아니라 ‘이게 없으면 너는 인간관계도 끝장날 거고, 직장에서도 잘릴 거고, 하여간 인생이 망할 거임’ 하는 수준으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니까 말이다. 치약처럼 단순한 물건도 ‘입에서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널 피할 거고, 그럼 너는 외톨이가 될 거야’ 하는 식으로 공포를 이용해 물건을 팔아 먹으려 하는 게 싫다는 거다. 특히나 그 광고의 타깃이 여성이면 더더욱 그러하고. 광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관련 책에서 하겠지만, 일단 이러한 이유로 나 역시 광고가 불쉿 직업이라는 데 동의한다.
어쨌거나,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불쉿 직업의 더 자세한 정의와 이에 관한 논의를 읽으실 수 있도록 설명은 이쯤 해 두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초반에 있는 이 말만큼은 꼭 나누고 싶다. 정말 저자 말대로, 실제로 가치가 있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큰 직업들이 더 많은 보수를 받고,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뿌리 깊은 정신적 폭력이다. 내심으로는 자기 직업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어떻게 노동의 존엄성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어찌 깊은 분노와 원망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사회의 특이한 속성 가운데 하나는 사회 지배층의 분노 조종 방법이다. 그들은 앞에서 생선 튀기는 사람들처럼 의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정조준되도록 방법을 궁리해 낸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에는 어떤 직업이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확실할수록 정당한 보수를 받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는 일반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도 객관적 척도는 찾기 힘들지만, 쉽게 알아내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하면 된다. 그 직업 계급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간호사, 쓰레기 수거 요원, 정비공 같은 직종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들이 만약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그 영향은 즉각적이고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세상에 교사나 항만 노동자가 없어지면 금방 난관에 봉착할 것이고, SF 소설가나 스카 음악가(ska music, 레게 음악의 영향으로 자메이카에서 시작되었지만 1980년대에 영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재탄생한 장르 — 옮긴이)가 없는 세상은 확실히 더 나쁜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 사모펀드 CEO나 광고 조사원, 보험 설계사, 텔레마케터, 집행관, 법률 컨설턴트 등이 몽땅 사라진다 해서 앞의 경우와 비슷하게 세상이 나빠질지는 분명치 않다.(훨씬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널리 알려진 몇 가지(의사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위의 법칙은 놀랄 만큼 잘 들어맞는다.
저자는 스스로도 “대개 책에서 정책을 추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데, 책 리뷰어들이 정책 제안처럼 보이는 것이 책의 핵심인 것처럼 구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문제를 만나면 이미 그 문제를 다루고 있고, 자체의 해결책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을 찾아내려는 방향으로 기운다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편적 기본 소득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쉿 직업과 보편적 기본 소득이 무슨 관계가 있나 싶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 기쁨도 의미도 느낄 수 없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면, 현재 불쉿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도 그 직업을 떠날 자유가 생긴다. 굳이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더 좋아하거나, 최소한 덜 싫어하는 일, 사회에 더욱 도움이 되는 일로 옮겨갈 수 있다. 또한 보편적 기본 소득에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따른다.
그래서 나는 인도에서 수행된 기본소득 시범 연구가 무척 신난다. 신나는 점은 많다. 가령 가정 폭력이 줄어든다.(나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가정 내 분쟁의 80퍼센트가 사실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해명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핵심은 기본소득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액수의 돈을 준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돈은 상징적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이며, 남녀노소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정확하게 똑같은 액수를 준다면 그런 차이들은 녹아 없어지기 시작한다. 인도의 시범 연구에서는 예전과 달리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와 같은 양의 식품을 받았고, 마을 활동에 장애인이 더 많이 받아들여졌으며, 젊은 여성들은 수줍어하고 겸손하라는 사회적 관습을 버리고 남자아이들처럼 대중 앞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소녀들도 공적 생활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것만으로 살아가기에 충분해야 할 것이며, 어떤 자격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그것을 획득해야 한다. 필요 없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사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에서 원리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받을 가치가 있고, 모두가 어떤 자격 요건도 없이 똑같이 받을 권리가 있다. 이로써 기본소득은 단순한 자선이나 다른 소득이 결여되었을 때의 임시변통이 아니라 ‘인간적 권리’가 된다. 그런 다음 그 이상이 필요하게 되면, 가령 누군가가 장애를 얻는다면 그것 역시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모든 인간의 물질적 존재 권리를 확립한 다음의 일이다.
좋은 책을 만나 이걸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 인용을 많이 하다 보니 글이 좀 길어진 감이 있다. 그래도 지루하다 생각 마시고 이 책에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노동, 고용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니까.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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